아직도 생생하다. 기억 저편에서 스멀스멀 떠오른다. 장구 장단에 맞춰 어른들이 흥에 겨워 춤을 추었던 모습이 선연하다. 그들은 한결같이 한복을 입었었다. 마을 행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수 십년 전이건만 바로 엊그제 같다. 그 시절 뼈가 녹도록 일하고 마을에 좋은 일이라도 있을라치면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잔치를 벌였었다. 그러곤 춤을 덩실덩실 추곤 했었다. 그 후 우리는 세계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래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세계의 중심으로 나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은 반면 또 많은 잃어버렸다. 아니 잊어버렸다. 그 중의 하나가 한복이 아닌가 싶다.

요즘이야 생소할 수 있지만 거리엔 한복입은 이들이 적잖게 지나갔다. 외출을 하거나 특별한 날엔 꼭 한복을 입었기 때문이다. 명절은 물론 집안의 대소사에도 꼭 한복을 입는 게 당연했다. 어디 그 뿐이랴, 소풍날에도 운동회에도 어머니는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나섰었다. 어린 우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설엔 알록달록 색동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고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곤 했다. 그렇게 한복을 차려 입고 나들이를 가야만 설다웠고 추석다웠다. 한복은 그렇게 생활 속에서 우리와 가깝게 있었다.

그러나 웬걸, 언젠가부터 한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무슨 일만 있으면 한복을 차려입었던 우리들의 풍습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젠 박물관에서 보거나 아니면 겨우 결혼식장에서나 잠깐 볼 수 있을 정도다. 결혼식장에서도 한복입는 이가 한정적이다. 예전에 가족되는 이들은 모두 한복을 입었으나 요사인 달라졌다. 신랑과 신부의 어머니들만 한복을 갖춰 입을 뿐 나머지 가족들은 자유롭게 입는다. 한복을 입는 경우가 결혼식장에서도 보기 힘들게 되었다.

얼마 전 광주문화재단 전통문화관에서 무등울림축제가 있었다. 무대에서는 연주자들은 물론 객석의 관람객들도 한복을 입었다. 한복을 입을 수 있도록 체험코너를 둔 것이다. 참석자들은 전통문화관에서 마련해 둔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관람객들은 한복을 입고서 연주회가 벌어지는 서석당에 들어섰다. 대부분 한복 차림새였다. 집에서 갖춰 입고 온 이들도 있었지만 전통문화관에서 한복으로 갈아입은 것이다. 무대의 연주자들도 객석의 관람객들도 한복을 입은 채 행사가 진행되었다. 문명자, 이영애, 황승옥 가야금 병창 명인들이 연이어 나와서 제자들과 함께 가야금 병창을 했다. 단순한 국악공연이 아니었다. 전통의 숨결을 한껏 들이마신 흐뭇한 순간이었다.

며칠 전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김연아 전 피겨스케이스트 선수가 세계에 한복을 알리겠다고 나섰다. 우리도 잊고 지낸 한복을 되살리고 세계에 우리의 아름다운 한복을 퍼뜨릴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이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한복과 한류 연계 협업 콘텐츠 기획·개발’에 다름 아니다. 한복 업체 10곳과 함께 한복을 직접 기획하고 홍보와 마케팅에 김연아가 참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디자이너와 한류 문화예술인들이 협업해 한복의 매력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취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다음달 1일까지 한복 상품을 기획·개발할 한복업체를 공모 중이다. 공모 대상은 한류 연계 한복 상품을 기획하고 제작할 수 있는 한복 분야 중소기업이다. 모두 10개 업체를 선정해 이들이 만든 한복을 김연아를 통해 세계에 홍보할 예정인가 보다.

광주에도 충장로 5가에 가면 한복가게들이 많다. 70-80년대만 해도 성업을 이루던 한복상가가 이제 파리를 날릴 정도로 한가한 모습이다. 한복 관련 자원은 많은데 비해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너무 아쉽다. 한류가 세계적으로 뜨는데 좋은 한류 자원을 썩히는 게 안타깝다. 광주 한복축제를 여는 것은 어떨까 싶다. 한복명인들의 설 자리도 마련하고 생활 속에서 한복을 입는 계기점을 마련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