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야. 정말 우리는 몰랐다고 말해도 될까. 바보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는 텔레비전의 쇼를 구경하고 싱거운 코미디를 구경하며 못나게 웃고 있었다…지금 이렇게 늦었지만 넌달래꽃 한 다발 꺾어 너의 가슴에 안겨 주면서 약속할게…이 땅의 거짓을 쓸어내고 다시는 피 흘리는 일 없이 살아갈 것을.” (권정생 작가의 편지 중)

오랜 시간 끝나지 않고 반복되는 비극. 국가 권력이란 거대한 횡포 아래 사라져 간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

고정순 작가는 반복되는 비극을 보며, 언젠가 그날들을 그려내리라 다짐했다. 어느 날, 고 작가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강아지똥’을 쓴 동화 작가 권정생 씨가 생전에 차마 부치지 못한, 5월 광주의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고 작가는 편지의 주인공인 조천호 군과 우리 모두에게 글과 그림으로 편지를 쓰고, 권 작가의 편지를 담아 그림책 ‘봄꿈’(길벗어린이刊)을 펴냈다.

1980년 5월18일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사진 속에는 아빠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다섯 살의 어린 조 군이 자리하고 있다. 당시 조 군의 아빠는 ‘학생들을 지켜야 한다’며 광주 금남로에서 시위를 하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져 가족 품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당시 다섯 살이었던 꼬마는 어느새 마흔 살이 넘은 어른으로 한 가정의 든든한 아빠가 됐다.

고 작가는 어른들을 대신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아이들에게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다짐했고, 그렇게 그림책 ‘봄꿈’이 완성됐다.

이 책은 잔인하고 아픈 역사적인 사실과 장면을 낱낱이 꺼내어 보여 주는 대신, 어느 작품보다 평화로운 글과 그림으로 그날을 표현했다.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한 개인의 일상이 깨지는 아픔을 보여 줌으로써 공감의 깊이를 더하고, 아이들 스스로가 ‘왜?’라고 질문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다.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이 책에 대해 “1980년 그날의 사건으로 아버지와 영영 이별해야 했던 한 어린이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다시는 이러한 아픔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 책이 당시 가족을 잃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