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명산은 암만해도 금강이 제일이었던 것 같다. 봄에는 온 산이 새싹과 꽃에 뒤덮이므로 ‘금강’(金剛)이라, 여름에는 봉우리와 계곡에 녹음이 깔리므로 ‘봉래’(蓬萊)라 했다, 가을에는 일만 이천 봉이 단풍으로 곱게 물드니 ‘풍악’(風樂)이고, 겨울이 돼 나뭇잎이 지고 나면 암석만이 앙상한 뼈처럼 드러나므로 ‘개골’(皆骨)이란다. 정양사 찬비 속에 향을 사르는 기나 긴 밤에, 거원이 바야흐로 사십년의 잘못을 깨달았음을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遊楓嶽(유풍악) / 호음 정사룡

금강산 일만 이천 봉 대강 보고 오는데
떨어지는 노란 잎이 나그네 옷을 치고
정양사 찬비 속에서 잘못을 깨닫는다.
萬二千峰領略歸 紛紛落葉打征衣
만이천봉영략귀 분분황엽타정의
正陽寒雨燒香夜 蘧瑗方知四十非
정양한우소향야 거원방지사십비

분분한 노란 잎새들 나그네 옷을 스치며 치는구나(遊楓嶽)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호음(湖陰) 정사룡(鄭士龍:1491-1570)으로 조선 중기의 문인, 문신이다. 1507년(중종 2)에 진사가 됐고, 1509년 별시문과에 병과 4위로 급제했다. 1514년 사가독서했던 인물로 알려지며, 1516년 황해도 도사로서 문과중시에 장원했으며 사간을 거쳐 1523년 부제학에 올랐던 인물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대강 보고 돌아오는데 / 분분한 노란 잎새들 나그네 옷을 스치며 치는구나 // 정양사 찬비 속에 향을 사르는 저리 기나 긴 밤에 / 거원이 바야흐로 사십년의 잘못을 깨닫는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풍악산을 유람하며’로 번역된다.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는 “願生高麗國一見金剛山: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라 했고, 1926년 조선을 방문한 스웨덴의 국왕은 금강산을 보고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하신 여섯 날 중 하루는 금강산을 만드는데 보내셨을 것”이라 했다. 금강산의 ‘金剛’은 화엄경(華嚴經)에 ‘해동에 보살이 사는 금강산이 있다’고 기록된데 연유한단다.

금강산은 춘하추동 계절에 따라 봄에는 금강산(金剛山), 여름에는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개골산(皆骨山)이라 불린다. 시인은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대강 보고 돌아오는데, 분분한 노란 잎새들이 나그네의 옷을 친다고 했다. 웅장한 산세와 신기한 절경, 숭고함과 정기, 수림의 아름다움 등이 어우러지는 신비와 절제의 미는 더 이상의 필설(筆舌)로 표현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화자는 정양사 찬비 속에 향을 사르는 밤에, 거원이 바야흐로 사십년의 잘못을 깨닫는다고 했다. 우리 선현들은 「금강산을 보기 전엔 천하의 산수를 말하지 말라」했으니 이 한마디가 금강산에 대한 평가이렷다.

※한자와 어구
楓嶽: 가을 금강산(=楓岳). 萬二千峰: 금강산 일만 이천 봉. 領略: 대강 보고 듣고 짐작함. 歸: 돌아가다. 紛紛: 분분하다.黃葉: 누런 잎. 打: 치다. 征衣: 길 가는 사람의 옷. // 正陽: 내금강 내에 있는 정양사. 寒雨: 찬비. 燒香夜: 향을 사르는 밤. 蘧瑗: 거백옥. 方: 바야흐로. 知: 알다. 四十非: 사십년의 잘못.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