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인가 몹시 추운 겨울 어느 날, 길거리의 홈리스에게 그의 점퍼를 벗어주고 소리 없이 사라진 어느 신사의 선행이 화제가 되었다. 자신도 몹시 추웠을 텐데도 과감히 윗옷을 벗어주고 티만 입고 유유히 사라진 것이다. 그걸 지나가다 우연히 목격했던 시민들이 SNS에 동영상을 올리고 뉴스에 제보해 온 국민들이 알게 되었다. 근 1년간 코로나19로 인해 가뜩이나 삭막해진 현실에 많은 이들이 그로 인해 잠시 훈훈함을 맛보았다. 그는 마치 도둑으로 잡혀 온 장발장에게 은촛대마저 쥐어준 신부님처럼 눈부셔 보였다.

그 후 며칠이 지나 아픈 동물이 있나 잠시 동물원을 둘러보는데 새들이 차가운 흙바닥 어딘가에 배를 깔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최근 추위가 극심해서 아프리카에서 출신인 관학이나 펠리컨 그리고 흑따오기가 그렇지 않아도 추위에 시달려 기력이 몹시 쇠잔해져서 잘 움직이지 않은 판국이라, 어떡해야 하나 계속 고심 중 이었다. 다행히 햇빛이 비치면 다시 기운을 회복하였지만 관학 한 마리는 좀 증상이 심해서 영양제와 소염제를 주사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날 자세히 보니 그들이 앉아 있는 바닥에 두터운 짚단이 깔려 있었다. 사육사가 나처럼 어떡할까 고민하다가 정말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짚단을 바닥에 깔아 주었나 보다. 그전에 누구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목장에 있을 때 어린 송아지들 바닥에 늘 지푸라기를 깔아주었다. 그럼 송아지들이 거기 앉아서 편안히 지내곤 했다. 큰 소들은 지푸라기 대신 왕겨 같은 걸로 두껍게 깔집을 깔아주면 습기와 냉기도 막고 똥오줌으로부터 오염도 방지되었다. 그런 걸 목장에서 수없이 반복 해왔으면서도 그동안 새들에게 응용하는 법을 여직 몰랐다는 게 더 놀라웠다.

겨울철은 동물들에게 따듯한 배려를 자주 해주는 계절이다. 몽구스나 미어캣처럼 작은 포유동물들에게 춥지 말라고 머리 위에 열등을 달아주면 모두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다. 물론 그렇게 안 해도 겨울을 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해주면 꼭 따뜻한 그 아래를 선호한다. 사자들도 잘 견디지만 ‘핫 스팟’이라고 따듯한 온돌바닥을 조그맣게 만들어 주면 꼭 그 위에서 자고 쉰다. 이런 걸 요즘 핫한 말로 ‘넛지’라고 해도 될까? 넛지는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하게 어깨로 살짝 밀어주는 걸 뜻한다. 만일 길을 가다가 누가 정신없이 휴대폰을 보며 뚜껑 없는 맨홀 같은 곳으로 직진하면, 짐짓 모른 척 다가가 살짝 어깨를 부딪쳐서 위험을 모면하게 해 주는 것이다. 남자 변기 속의 넛지 디자인이 특히 유명하다. 오줌이 잘 튕겨나가는 남자 변기 위에 아주 작은 파리나 벌을 그려두면 대개는 그걸 맞추려고 거기에 대고 오줌을 집중한다. 굳이 튄다고 정조준 잘하라고 기분 나쁘게 언급할 필요가 없다. 태국 사육사들이 한국와서 코끼리에게 춥지 말라고 지붕 덮는 부직포로 커다란 옷을 만들어 주는 걸 보았다. 농가에서도 송아지에게 헌옷을 입혀주곤 한다.

예전에 우리 동물원 물새장에도 짚으로 엮은 지붕이 늘 있었다. 매년 벼 수확철이면 그곳에 새 지푸라기를 올리는 것이 동물원 겨울나기의 시작이었고 방송이나 신문에서도 그걸 사진 찍어 보도하곤 했다. 그런데 새로운 재료가 들어오고 젊은 사람들로 일할 사람들이 바뀌면서 그것이 반영구적인 플라스틱 인공 짚과 너와지붕으로 대처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새 짚을 올리면 유독 그 위에 올라가 있는 새들이 있었던 것 같다. 관학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땐 그냥 부드러운 짚을 좋아하고 자기 지위를 과시하고자 높은 곳에 올라가 있는 걸 꺼라 단순히 생각했었다.

오늘 그 바닥 짚단 위를 자세히 보니 전날 치료했던 관학과 흑따오기가 사이좋게 앉아있었다.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머리를 등에 살포시 묻은 체로 미동도 않고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정말 동물을 위한다는 건 너무나 간단한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었다. 좀 더 관찰하고 좀만 더 신경 썼으면 누구나 더 빨리 손쉽게 그들을 위할 수 있었다. 새들도 물론이겠지만 나 역시도 동물들에게 ‘넛지’가 더욱 필요함을 소리 없이 가르쳐 준 물새장사육사에게 정말 감사할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