開樽愛月(개준애월) / 물재 손순효

동산에 달 올라 단상에 밝게 비춰
술 단지에 가득히 달빛이 잠겼는데
작은 잔 맑은 빛들이 잔 못 들게 하누나.
月白東巒便照堂 一樽涵得幾多光
월백동만변조당 일준함득기다광
只憐些子淸輝發 不許庸人取次嘗
지련사자청휘발 부허용인취차상

뱃놀이 하다가 달이 강물 속에 들어 있음을 발견한 시인은 달을 건지려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달은 강물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접시물 속에도, 술 단지 속에도 한 움큼 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네. “이 사람아 우리는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달을 마시고 있는 걸세. 달 맛이 그저 그만이군 그래”라고 하며 권하면서 술을 마신다. 동산에 달이 올라 단상 위를 밝게 비추고 있으니, 술 단지 속에는 온통 가득히 달빛이 잠겼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함부로 나로 하여금 그 잔을 못 들게 하구나!(開樽愛月)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물재(勿齋) 손순효(孫舜孝:1429-1497)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1480년 중추부지사 때 정조사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좌참찬에 이르렀던 인물이다. 1485년 임사홍을 두둔하다 경상도관찰사로 좌천됐다가 다시 우찬성이 되기도 했다. 1487년 ‘식료찬요’를 찬진했다고 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동산에 달이 올라 단상 위를 밝게 비추고 있으니 / 술 단지 속에는 온통 가득이 달빛이 잠겼구나 // 어여뻐라 작은 잔에 발하는 저리 고운 맑은 빛은 / 함부로 나로 하여금 그 잔을 못 들게 하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술 단지 열고서 달을 사랑하다]로 번역된다. 한 잔 술을 기울면서 썼던 시문도 많다. 주색이라고도 했지만, 청풍명월과 막걸리를 연상한다면, 시흥이 저절로 덩실덩실 춤을 추듯이 했을 것은 뻔하다. 친구가 곁에 있으면 좋겠지만, 달빛 황홀한 야밤에 달빛에 취하면서 막걸리를 기울였다면, 그 술동이 속으로 달빛이 스며있어 달빛을 마셨다는 그 맛은 이미 주선(酒仙)의 경지에 들었을 것은 뻔해 보인다.

시인의 시낭(詩囊)도 이보다는 결코 못하지 않았을 것이다. 넉넉한 술동이 속에 달빛이 한 순배 들어 이를 안주 삼았으려니…. 동산에 달 올라 단상 위를 밝게 비추니, 술 단지에 가득히 달빛이 잠겼다는 시상을 결단코 꺼내 들었다. 평자가 그 곁에 있어 한 잔의 술을 따라 드렸다는 어찌 그 맛이 달 안주보다 못하였으랴.

화자의 시흥은 후정으로 가득 채워져 달빛이 없었다면 어느 시상도 금단의 문으로 채웠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으리라. [어여뻐라 작은 잔에 발하는 맑은 빛은, 함부로 나로 하여금 잔 못 들게 하구나!]라고 했다. 달빛을 안주 삼아 술동이 비우는 시인의 모습이 비춰 보인다.

※한자와 어구

月白: 달빛이 희다. 東巒: 동쪽 뫼. 便: 문득. 照堂: 단상을 비추다. 一樽: 한 술동이.. 涵得: 가득 차다. 幾多光: 얼마나 많은 달빛. // 只憐: 가련하구나! 些子: 작은 잔. 淸輝發: 맑고 곱게 발하다. 不許: 허락하지 않다. 곧 못 들게 하다. 庸人: ～하여금. 取次嘗: 다음 맛을 보다. 다음 맛에 취하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