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김장철이다. 김장은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에서 눈발이 날리는 초겨울에 담가야 제맛이다. 김장하는 날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달려들어 힘을 보탰다. 지금은 그러한 풍경을 볼 수 없지만, 예전엔 동네의 잔치였고 축제였다.

김장김치는 가난한 집이나 부잣집이나 할 것 없이 봄이 올 때까지 겨우내 밥상에 올랐던 주요 식품이다. 또한 김치는 나누고 베푸는 ‘사랑의 식품’이기도 하다. 요즘 ‘사랑의 김장 나눔’이 그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하여 김장김치가 떨어진 집에 마을 사람들이 순서를 정해서 한 포기씩 전달하였고, 초상을 치르는 가난한 집에도 십시일반으로 모은 김장김치가 보시(報施)되었다.

따라서 김치는 한국인의 혼이고 한이었으며 삶 자체였다. 김치가 식품 중에 드물게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은 이유도 한국인의 독특한 ‘김치 문화’ 때문이다.

정부는 2020년 매년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제정했다. 이른바 법정기념일이다. 김치산업의 진흥과 김치 문화를 계승·발전하고 국민에게 김치의 영양적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취지다. 김치의 날을 11월22일로 정한 것도, 하나(1) 하나(1)의 소재가 모여 다양한(22) 효능을 이룬다는 숭고한 의미에서다.

이제 김치는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한국 문화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의회에서 ‘김치의 날’ 제정이 결의된 데 이어 뉴욕에서도, 아르헨티나에서도 잇따라 공식 기념일로 제정된게 그 예다. 또 영국에서는 ‘김치의 날’을 맞아 22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44개의 영국 레스토랑과 함께 ‘코리안 김치 페스티벌 2021(Korean Kimchi Festival London 2021)’을 열고 있다.

이처럼 김치가 세계인의 기호식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270만 달러에 불과했던 대미 김치 수출은 지난해 2천306만 달러로 나타났다. 그러니까 10년 만에 약 9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올해는 10월 말 현재 25% 증가한 2천345만 달러를 기록했다니 경이적이다.

국내에서도 김치산업에 눈을 돌려 재미를 보고 있는 지자체가 있다. 바로 강진군이다. 지난해 30여 농가를 모집해 ‘강진묵은지사업단’를 꾸리고, 본격 상품화에 뛰어들었다. 김영랑 시인을 배출한 고장답게 ‘묵은김치’를 전라도 방언인 ‘묵은지’로 명명, 남도의 미감과 정감을 한껏 담아냈다. 정말 기발한 발상이다.

강진군은 지역 대표 농산물을 활용한 주민 소득증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6차 산업의 수익모델을 ‘강진 묵은지’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나 강진 묵은지가 상품화 시작되기까진 고민도 적잖았을 것이다. 김치의 맛 보존을 위한 김치냉장고의 기능과 성능의 다양화는 물론 산업화에 대한 시장성 고려 등이 그것이었겠다. 하지만 도전 의식을 갖고 밀어붙인 결과 생각지 못한 성과를 끌어냈다. 올해 10월 말 기준 16개 농가가 묵은지를 팔아 2억4천300만 원의 소득을 올렸단다. 더욱이 묵은지가 동이 나서 못 판다고 하니, 그야말로 대박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김치 담그는 일은 한국 문화의 특성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행위다. 채소를 절여 먹는 문화는 세계 어느 문화권에도 있다. 하지만 김치는 현존하는 채소 절임 문화 중 가장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다. 김치는 전 세계 채소 절임 문화의 최고봉이자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 매년 11월22일 ‘김치의 날’이 모든 국가의 법정기념일로 제정되길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