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의 슈바이처로, 우리나라 한센병(나병) 환자들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신정식 박사의 장례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국립 소록도병원장으로 십이 년, 대한나관리협회 이사로 십 년 등 반평생을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온 힘을 쏟았던 신 박사는 죽음을 앞두고 가족들에게 유언을 한다. ‘(자신의) 장례식 때에 부의금이 들어오면 전액을 소록도 나환자들의 복지기금으로 내어놓고, 노제는 녹동항에서 지내달라’고.

그리고 며칠 뒤, 신 박사는 모교인 서울의 세브란스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빈소는 당연히 세브란스병원에 차려지고, 조문객의 안내와 접수는 소록도 나환자들의 복지회에서 맡았다. 유족 측에서 따로 부고는 내지 않았지만, 빈소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장지는 고향인 전남 고흥읍 부근의 선영. 하지만 영구행렬은 고흥읍에서도 오십 리 남쪽에 있는 녹동항으로 향하였다. 고인의 유언대로 소록도가 바라보이는 녹동항에서 노제를 지내기 위해서였다.

노제가 치러지는 녹동항에는 평소에 고인을 존경하고 아끼는 고흥의 지인들과 빈소를 찾지 못한 광주와 전남 지역의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곳에서도 조문객의 안내와 접수는 나환자들의 복지회에서 맡고 있었고, 노제가 진행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고인과의 마지막 이별을 아쉬워하며 손수건을 적셨다.

이윽고 노제가 끝이 나고, 주변을 정리하려 할 때에 접수대 앞에 검은 상복 차림의 두 사람이 나타나서 접수원에게 말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쪽에서 상주분들이 조위금 접수 현황을 알고 싶으시다며 방명록과 접수함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아, 그래요? 가져가세요.”

접수를 보던 사람들은 그들에게 방명록과 접수함을 그대로 주었고, 상복 차림의 두 사람은 접수함을 차에 싣고 사라진 채 종적을 감추었다. 유족들에게 전해질 방문록과 나환자 복지회로 돌아갈 부의금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물론 금액도 모른다. 유족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장례식이 끝난 뒤였다. 당연히 조문객의 수나 부의금의 액수도 알 수가 없었다. 녹동항에서 조문을 했던 어떤 사람은 자기의 접수번호가 일천오백 번을 넘었다고 하였으니 조위금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생명을 존중하는 사냥꾼은 필요 이상의 짐승을 잡지 않고,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은 잡은 물고기를 놓아준다. 양심 있는 도둑들은 불우한 사람들을 울리지 않고, 훔쳤더라도 안타까운 사연을 들으면 돌려준다.

그런데, 나환자들의 아버지 신정식 박사의 장례식에서 부의금을 가지고 달아난 사람들은 소문을 통해 그 돈이 나환자들의 복지기금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터. 그들은 나환자들의 똥보다 더러운 사람들이 아닐까?

<조동희 약력>
▲1989, 90년 광주일보 자매지 ‘월간 예향’에서 현상 공모한 ‘쓰고 싶은 이야기’에 당선되면서 작품활동 시작.
▲1994년 문학춘추로 수필 등단
▲광주문인협회 회원, 무등문학회 동인
▲저서/수필집 : ‘어머니의 유산’,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