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대면 바스러지는 저놈의 성깔에다
올올이 몸을 말고 곁마저 까칠하기는
앵돌아 등돌려버린 저 봉지 속 능구렁이
헛헛한 순간마다 마른 몸을 살라내면
은근히 여며주는 엄마의 괴춤처럼
뉘라도 외롭지 않다 살갑고 푸근하다
시름 타래 풀어내고 간을 맞춘 멀국에는
알싸한 밤도 오고 쌉싸름한 시름도 모여
백동전 몇 잎 앞에서 두 무릎을 꿇는다
(시집 ‘동두천 아카펠라’, 지우북스, 2021)

[시의 눈]

바람 불고 낙엽 날리면 속은 궁(窮)해집니다. ‘생라면’이라도 먹으려 봉지 째 뿌십니다. 허, 놈은 성깔조차 ‘까칠’합니다. 봉지 뚫고 튀는 조각을 줍습니다. 학교에서 돌이와 배가 ‘헛헛’할 때면 엄마를 조르곤 했더랬지요. 그럼 ‘괴춤’에서 무슨 돈이라도 되는 양 고무줄 동여맨 라면조각을 쥐어주었거든요. 라면 앞엔 평등합니다. 밥상이 따로 없지요. 냄비뚜껑 받치고 ‘두 무릎을 꿇’으면 금방 박 터지게 싸운 사이일지라도 화평해지고 맙니다. 마라토너 임춘애나 황영조의 힘이기도 했지만, 난 라면집에서 소주와 시국담을 섞어 마시기도 했지요. 집에 손님이 오면 어머니는 라면 한 봉지를 어렵사리 구해오곤 했습니다. 그걸 가마솥에 쌀과 함께 끓였어요. 식구가 많으니 ‘늘먹기’ 위해서였지요. 궁휼의 시대 ‘라면과자’나 ‘라면죽’이 생각나는 건 거스르고 싶지 않은 추억이 아닙니다. 머리 맞대던 라면의 정이 돌아오지 않아서지요. 헌데, 길에 누군가 다 먹지 않은 컵라면을 쏟아 버렸습니다. 보는 이가 욕을 던집니다. 마치 라면에게나 하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웬 횡재라도 한 듯 그걸 쓸어 먹던 옛 시대는 가고, 오늘은 아스팔트라는 진열대에 박제되어 이 잘난 우리를 그가 오래 쳐다봅니다 그려.

정용국 시인은 경기 양주에서 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고, 2001년 ‘시조세계’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명왕성은 있다’(2007), ‘난 네가 참 좋다’(2015) 등을 펴냈습니다. 그는 삶의 역경을 유연한 풍자로 극기하는 동두천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