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호 크기의 대형 화폭에 동그란 원이 수없이 그려져 있다. 붓으로 찍은 작은 점부터 지름이 40㎝가량 되는 원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이 원들은 때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가 하면, 선과 선이 맞닿아 있다. 때로는 이중 3중 4중으로 겹쳐져 있다. 또는 원안에 또 다른 원들이 존재한다. 원의 색상도 파랑, 빨강, 검정 등 다양하고, 선의 두께도 다르다. 붓과 연필로 한 점 한 점 찍어 점을 만들고 이 점은 선이 되고, 면이 된다. 화폭에는 원만 있는 게 아니다. 원과 원 사이, 또는 원의 밑바탕에는 농담이 다른 작은 나뭇가지(혹은 풀잎으로도 보임)들이 함께 존재한다. 형이상학적 정신세계를 추상화로 구현해 온 이강욱 작가의 ‘지오메트릭’ 작품이다.

국내 톱 갤러리인 아라리오 전속작가로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완판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이강욱 작가가 광주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연다.

광주 무각사 로터스 갤러리는 이강욱 초대전 ‘움직이는 상 변화하는 색’을 오는 10월31일까지 갖는다.

이 작가는 형이상학적 정신 세계와 자아의 문제를 회화를 중심으로 탐구해왔다. 그는 회화라는 매체가 아우르는 정신적 역할을 복합적인 조형성으로 전이하며, 자유로운 융합적 표현을 통한 회화의 추상성을 통해 구현한다.

이번 전시에서 이 작가는 공간에 대한 작가의 심화된 탐구를 엿볼 수 있는 ‘지오메트릭 폼’ 시리즈, 회화의 본질적 요소인 색과 작가의 행위성을 극대화한 ‘제스처’ 시리즈, 이와 더불어 미시와 거시의 세계를 대비하는 ‘보이지 않는 공간’ 시리즈를 망라한 89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강욱 作 ‘지오메트릭 폼 시리즈’

그는 고대 힌두 철학의 텍스트 ‘우파니샤드(Upanishads)’로부터 작업의 개념적 모티프를 찾았다. 우파니샤드의 ‘나는 누구인가’ ‘나의 의식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가’, ‘물질 이상의 것이 있는가’ 등과 같은 철학적 물음이 담고 있는 자아와 세상, 우주의 원리와 상호관계에 대한 깨달음의 순간을 회화적 조형성을 통해 찾고자 했다. 정적이고도 역동적인 이 작가의 작품세계는 겹쳐진 의미와 행위를 따뜻하고 섬세하게 드러내며 우리를 모호한 감각의 차원으로 인도한다. 회화에서 절대적인 요소인 점, 선, 면, 색채가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이 작가는 시각적으로는 섬세한 화면을 조성하고, 개념적으로는 구체적인 대상과 주제를 설정함으로써 기존 추상 회화와는 구별되는 자신만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왔다.

이강욱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내 작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사유할 수 있다면 그것이 회화가, 예술이 가진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많은 분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서 ‘내 안의 우주’와 ‘우주 속의 우리’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전시를 주최한 무각사 로터스 갤러리는 “이번 이강욱 작가의 전시를 통해 초유의 팬데믹 시대에 지친 모두에게 ‘범아일여’(梵我一如) 우파니샤드의 깨달음이 다가가길 바라며, 예술을 통한 치유의 여정을 경험하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박희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