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인생의 아침 프로그램에 따라 인생의 오후를 살아갈 순 없다”라고 말했다. 인생의 오후엔 진정한 ‘나’를 찾아 온전히 내 앞에 마주서야 한다는 의미이다. 마치 우리 사회의 중년들에게 던지는 메시지 같다. 중년에 접어든 내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 사회는 청소년이나 청년, 노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고 지원책을 마련하지만, 중년층에 대한 고민이나 대책은 부족한 실정이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키우며 책임지는 위치에 있건만, 사회적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다. 한 사회의 핵심이자 운동력의 원천인 중년에 대한 범사회적 관심과 배려가 절실한 시점이다.

최근 우리 지역의 지성 성진기 교수(전남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중년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중년이 건강하고 도덕성과 의식이 있어야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삶에 대한 긍지를 가지며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목적이다.

이 시대를 사는 중년의 가방 속엔 무엇이 담겨야 할까? 리처드 J.라이더(Richard J. Leider)와 데이비드 A.샤피로(David A. Shapiro)는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이란 책에서 가방에 대한 일화를 소개한다. 주인공은 20kg나 되는 무거운 가방을 등에 지고 가던 중 마사이족 족장을 만난다. 이내 자기 배낭 속에 있는 신기한 물건들을 모두 꺼내 보여준다. 그 물건들을 빤히 쳐다보던 족장이 이렇게 묻는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줍니까?”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인생에서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채워야 할지 깊이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다. 품위 있는 인생을 위해서 중년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당부이기도 하다.

이번 프로젝트는 광주평생교육진흥원 당사자 연구 공모사업으로 김명준(아트디렉터), 정서연(푸르니보육지원재단) 연구원이 함께 기획하였다. 특히 광주의 대표 인문학 공동체인 카페 필로소피아(Cafe Philosophia)의 25주년에 진행되기에 더욱 특별하다. 카페 필로소피아는 ‘철학이 숨 쉬는 세상을 염원하며’라는 기치를 내걸고 우리 주변에 인문학의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지금껏 카페 필로소피아가 25년간 꾸려온 인문학적 논의가 제한적이었다면, 이제는 인간 삶의 일상 문제를 중심으로 실질적인 인문학적 접근을 하고자 한다. 7월부터 11월까지 매월 1회씩 총 다섯 차례 진행되며, 40-65세의 중년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1회차는 성진기 교수의 ‘중년은 위기인가 기회인가’라는 주제(7월)로, 2회차는 박광성 교수(전남대 의대 비뇨의학과)의 ‘백세인이 되기 위한 중년기 건강관리’ 주제(8월)로 진행했다. 9월에는 ‘인생, 열정과 냉정의 변주(3회차)’라는 주제로 성진기 교수의 인문학 강의가 이뤄졌다.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주제의 음악회가 어우러져 삶에 지친 중년들에게 따뜻한 공감과 위로를 선사했다. 다가오는 10월 마지막 토요일에는 나주 남파고택에서, 삶의 본보기가 되는 인생 선배들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지혜를 나누는 기회를 마련할 예정이다.

품위있는 중년 인생 프로젝트. 중년의 시민들이 함께 공감하면서 ‘내 인생의 오후 프로그램’을 계획해보는 건 어떨까. 많이 아는 것보다 스스로 사유하는 것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귀한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