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운주사 연가’는 ‘천불천탑’의 전설이 깃든 운주사를 돌아보며 혁명의 쓸쓸함을 노래한 절창이다. 운주사는 사찰의 기존 형식을 과감히 탈피한 파격적 사찰로도 유명하다. 경내에 들어서면 수십 기의 탑과 불상은 여전히 고달픈 민초들의 삶을 웅변하는 듯하다. 어떤 작가는 운주사를 실패한 자들의 임시망명정부라고 불렀다. 화자는 ‘돌탑 흐린 그림자’와 돌부처의 ‘그늘’에서 천 개의 불상과 천 개의 탑을 세우던 민중의 염원이 꽃잎으로 떨어지는 것을 굴곡진 세월을 통해 바라본다. “멈추고, 체념, 삭아가는, 슬픈, 절망, 설움” 등의 시어를 통해 화자는 성공하지 못한 혁명을 애도하고 있다. 마지막 행 “낭자한 설움만 뭇별로 떠오른다”에서 혁명의 뒤란에 부는 바람 같은 쓸쓸함의 극치를 엿본다.

▲시 ‘일기예보’는 첫서리와 얼음이 얼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듣고 화자의 무릎 틈 사이로 서릿발과 얼음 같은 통증이 몰려오자 그리움과 추억에 잠긴다. “바지락 한 다라이 잡아오시는 날이면/ 어머니의 뼈마디마디에는/갯내음 대신 통점들이 스며들었”던 아픈 기억 때문이다. 그 밤, 어머니가 “남겨 놓고 가신 가락지”를 꺼내 보며 “뼈마디마디가 시리도록 저려온다”시던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며 자신도 “그리움의 뼈가 저려”오기 시작한다. 우리 모두에게 어머니는 언제나 고향이며 공유했던 유품이나 시간들은 갈피갈피 그리움의 창고다. 손을 내밀면 추억이 밀물져 오고 그리움의 파도가 남실거린다. 그렇듯이 부모님들의 통점이 일기예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무릎 만지시며 ‘빨래 걷어라’ 하시던 광고카피처럼…

▲시 ‘금안동 한글마을’은 화자의 고향마을이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고/비아냥 받으며” 살아온 할머니들이 마을회관에서 한글공부를 하신다. “글 쓰다 틀리면/지우개 불나고/공책이 닳도록 배”우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콧방울이 매콤해진다. 그럼에도 화자는 마음을 숨기고 할머니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그림 그리듯이 이끌어간다. 나주시 금안동은 조선조 최고의 석학인 신숙주 선생이 나고 자란 곳이다. 그런 신숙주처럼 학생들도 영의정 벼슬까지 해야 할 텐데 글 쓰는 연필은 속절없이 부러지기만 한다는 대목에서는 소리 내어 웃고 만다. 그 옛날 서당에서 책씻이하듯이 한글공부를 뗀 할머니들이 “그림 그리고 졸업장 받고/시루떡 먹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 이르면 절로 박수가 처지는 걸 어쩌랴.

▲수필 ‘선유가’는 지인들과 함께 여름 여행을 가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말미에 이르러 나무 그늘에서 들려오는 매미 소리에서 화자의 사유가 선유가처럼 펼쳐진다. “그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이리라. 태어나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기르고, 직업을 가지고,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召命)’이라고 부른다.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라 여기며 칩거하는 요즈음, 나무 그늘에서 들리는 선유가(船遊歌)에 옛 생각이 간절하다. 목청껏 부르는 그 노래에 하늘도 마음을 돌리시기를 두 손 모아 바라본다.”며 매미의 울음이 하늘에 닿아 코로나19 상황이 빨리 끝나기를 기원한다. ‘선유가’에서 화자의 바람처럼 하늘이 마음을 돌려 하루빨리 일상에 복귀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