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남해 바래길 4코스를 걷기 위해 남해 창선도로 향한다. 남해 바래길 4코스는 ‘고사리밭길’이라는 별칭이 말해주듯 주로 고사리밭을 따라 걷는 길이다. 요즘 한창 고사리를 채취하는 기간이라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예약한 자에 한해 안내인과 함께 고사리밭길을 통과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도 1주일 전에 예약을 했다.

창선면행정복지센터에 도착하니 우리를 안내할 문화관광해설사가 기다리고 있다. 창선면소재지를 빠져나와 동대만 가장 안쪽 해변 제방을 따라 걷는다. 동대만은 창선도를 동부와 서부로 나눈다. 동대만 북쪽으로 삼천포와 창선도를 잇는 네 개의 교량이 모습을 드러낸다. 동대만 제방 안쪽에는 지난 가을 꽃을 피운 갈대가 아직도 메마른 상태로 그대로 서 있다.

동대만 바닷물을 발아래 두고 걷다가 식포마을로 가는 도로를 만난다. 도로에는 이팝나무가 하얗게 꽃을 피워 우리의 마음을 풍성하게 해준다. 이어 고사리밭길로 통하는 임도로 접어든다. 경사지를 오르다가 뒤돌아보면 높지 않은 야산 사이에 섬치고는 꽤 넓은 농경지가 자리하고 있다. 창선도의 낮은 산 너머로 남해도의 여러 산봉우리들이 첩첩하게 다가온다.

창선도는 높지 않은 야산 사이에 섬치고는 꽤 넓은 농경지가 자리하고 있다. 창선도의 낮은 산 너머로 남해도의 여러 산봉우리들이 첩첩하게 다가온다.

점차 고사리밭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3월 하순부터 고사리 채취가 시작됐으니 벌써 몇 차례 수확을 했다. 고사리를 꺾고 나면 바로 옆에서 다른 고사리들이 땅을 뚫고 올라오기 때문에 보통 4-5일 간격으로 고사리를 채취한단다. 창선도 고사리밭에서는 6월말까지 고사리 수확을 한다.

창선도에서 고사리를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 식포마을 주민 한 분이 자신의 산비탈 밭에 고사리를 재배하면서부터다. 이후 고사리 재배가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한 주민들이 너도나도 산에 고사리를 재배하게 됐고, 오늘날에는 고사리가 창선도 주민의 주요소득원으로 자리 잡게 됐다. 창선도 고사리는 전국 고사리 생산량의 30%를 차지한다.

“고사리 재배로 1억 원 이상 소득을 올리는 가구가 많아요. 도회지로 나간 자녀들이 직장 생활하다가 다시 돌아와 부모님이 했던 고사리 재배를 물려받을 정도입니다. 도시에서 직장생활 할 때보다 훨씬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으니까요.”

문화관광해설사의 얘기에 모두가 깜짝 놀란다.

바래길은 고사리밭 사이를 굽이굽이 물 흐르듯 흘러간다. 고사리밭길은 낮은 산 하나를 넘어 식포마을로 이어진다. 옛날에는 초·중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이 지금의 고사리밭길을 따라 등·하교를 했단다.

식포마을은 걸인들이 와서 배불리 먹고 간다고 해서 불려진 이름이다. 마을 이름에서 주민들의 넉넉한 인심이 느껴진다. 식포마을을 지나 다시 고사리밭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산비탈은 드문드문 커다란 나무 한 그루씩 서 있을 뿐 전체가 고사리밭이다. 지난 늦가을 시들고 난 후 겨우내 말라비틀어져 땅에 처진 고사리 줄기 사이로 새순이 올라온다. 메마른 땅을 뚫고 불쑥불쑥 올라온 고사리순은 우리들에게 순환하는 자연의 질서를 느끼게 해준다.

식포마을 쪽에서 고사리밭길을 따라 산봉우리 하나를 넘자 천하절경이 나타난다.

붕긋붕긋 솟은 봉우리들은 모두가 고사리밭이고, ‘고사리 산’ 뒤로 다도해가 펼쳐진다. 멀리서 보면 목장 같기도 하고, 대형 고분 같아 보이기도 한다. 붕긋붕긋 솟은 고사리 산은 푸른 바다와 어울리고, 바다에 떠있는 사량도·수우도·신수도·아두섬·장구섬 같은 크고 작은 섬들이 아기자기하다. 푸른 하늘은 풍경화의 배경이 돼 채색미를 고조시킨다. 바다 건너 와룡산과 삼천포 시내, 삼천포-창선도를 연결하는 창선 삼천포대교도 아름다운 풍경화 대열에 합류한다. 경남 고성 땅과 통영까지도 화폭에 들어온다.

고사리밭에서는 삼천포와 창선도를 연결하는 네 개의 다리인 창선 삼천포대교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

고사리밭과 다도해 풍경이 아름다워 보이지만, 고사리밭은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가파른 고사리밭에서 고사리를 채취하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이 아찔해 보이기까지 한다. 가파른 고사리밭 중턱을 가로질러 길이 놓여 있고, 우리는 고사리밭길을 따라서 천천히 걷는다. 길 위쪽 고사리는 파란 하늘과 맞닿아 있고, 아래쪽 고사리는 푸른 바다와 마주친다.

경사지를 내려갈 때는 바다를 향하여 걸어가는 것 같다.

가인리 바닷가에 자리잡은 세심사라는 절이 내려보인다. 식포마을과 언포마을, 고두마을을 지나 가인마을로 가는 2차선 도로로 내려선다. 도로가에는 생 고사리를 살짝 데친 후 멍석에 말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경사지를 내려갈 때는 바다를 향하여 걸어가는 것 같다. 가인리 바닷가에 자리잡은 세심사라는 절도 내려보인다.

잠시 아스팔트도로를 걷다가 가인마을로 넘어가는 임도를 따른다. 역시 주변은 온통 고사리밭이다. 작은 고개를 넘자 가인마을이 포근하게 둥지를 틀고 있다. 가인마을 앞에는 작은 만을 이루고 있고, 건너편에 세심사가 자리하고 있다.

바래길은 가인리 천포마을까지 도로를 따른다. 2차선 도로지만 차량통행이 거의 없어 우리 일행이 독차지하며 걷는다. 바로 아래에서 바닷물이 출렁이고, 바다 건너에서 삼천포시내 건물과 와룡산이 반갑게 손짓을 한다. 삼천포대교와 초양대교도 손을 흔들어 존재감을 과시한다. 삼천포와 창선도 사이에 자리잡은 신수도는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해변의 작은 천포마을을 지나 다시 산비탈로 오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시멘트 포장된 임도를 따르다가 숲길로 들어선다. 오늘 처음으로 숲길을 걸으니 기분이 상쾌하다. 숲길은 종종 바다와 삼천포쪽 풍경을 보여주곤 한다. 가파른 경사지에 만들어진 고사리밭도 가끔 만난다.

천포마을에서 적량마을로 가는 길은 산허리를 돌고 돌아가는 임도다. 길은 동남쪽으로 이어지고, 시야에는 사량도와 수우도가 점점 가깝게 다가온다. 아기자기한 바위로 이뤄진 사량도 지리산은 등산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산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산 아래로 적량마을이 내려보인다. 적량마을은 북쪽에 국사봉을 등지고 남향으로 터를 잡았다. 과거 국사봉에서는 봉화를 올려 창선도 대방산, 삼천포 각산 봉수대와 연락을 취했다. 적량마을은 오늘 만난 마을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고, 포구도 발달되어 있다. 창선도 동쪽에 위치한 적량마을은 농사와 어업을 겸하는 반농반어마을이다.

“겨울에도 따뜻해서 살기 좋아요.”

마을에서 만난 할머니의 말씀처럼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으로만 바다가 펼쳐져 포근하고 따스해 보인다. 남해 바래길 4코스 걷기를 적량포구에서 마친다. 벌써부터 다음 구간이 기다려진다.

바래길 4코스 종점인 적량포구.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으로만 바다가 펼쳐져 포근하고 겨울철에도 따스하다.

※여행쪽지

▶남해 바래길 4코스는 창선도 동부지역을 걷는 구간으로, 온 산을 차지하고 있는 고사리밭을 따라 걷는 길이다. 고사리밭에서 보는 다도해 풍경이 아름답다.
▶코스 : 창선면행정복지센터→동대만간이역→고사리밭→식포마을→고사리밭→가인마을→천포마을→적량마을
※바래길 4코스는 고사리 채취기간인 3월에서 6월까지(2021년의 경우 3.23-6.30)는 사전예약자만 안내인 동반 하에 탐방이 가능하다.
※탐방안내센터 055-863-8778)
-거리, 소요시간 : 15㎞, 5시간 소요
-난이도 :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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