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일제 수탈의 현장으로 지역 산업화를 견인한 전남방직·일신방직 광주공장의 역사·근대 건축물 훼손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개발과 보존의 갈림길에 선 전남방직·일신방직의 기존 보존 건축물 이외에 공장 부지 전반에 대한 관계 당국의 추가 조사가 이뤄질 예정인 가운데 현재 별도 관리 대책 없이 방치되고 있다.

광주시가 전남방직·일신방직 공장 부지 개발 계획을 구상하고 있는 만큼 이곳 근대 건축물에 대한 조속한 역사·문화적 가치 판단과 함께 사전 안전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공장 관계자의 통제에 따라 현장 취재가 이뤄진 일신방직 내부. 공장 부지에 진입하자 1934년 공장 건설 당시 철골 구조로 지은 화력발전소와 물 저장시설(고가수조), 보일러실 등 근대 산업 유산 상징성을 가진 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공장 가동이 멈추면서 공장 내부에 남은 시설물과 오래된 폐기물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일신방직의 상징적 건물 격인 화력발전소는 망가진 창문과 벽면의 모습을 드러내 흉물로 방치되고 있었다.

기능을 상실한 고가수조와 제1·2 보일러실 건물들은 이끼가 끼었고 낡은 철골 구조물은 언제 쓰러져도 모를 듯 위태롭게 서 있었다.

이들 건축물은 광주시와 전남방직·일신방직 모두 역사적 의미를 보유한 근대 건축물로 가치가 인정돼 보존 대상이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후 1950년 6·25 폭격이 빗겨가 원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낡은 모습은 세월의 흔적을 짐작케 했다.

1966년 설립됐다가 1990년 화재로 소실된 직포공장도 화재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다.

문제는 근대 건축물로 가치를 재평가 받고 있음에도 지자체의 무관심 속에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공장이 아직 가동 중이어서 산업 설비 이동 과정에서 추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보존이나 개발 여부를 떠나 주요 건축물에 대한 별도 관리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전남방직·일신방직은 광주에 마지막으로 남은 근대산업 유산으로 역사·문화·건축적 가치가 크다. 도시 재생을 통해 문화전략 거점을 형성해야 한다는 게 보존을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의 입장이다.

또 공장 부지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역사 교육공간 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도 적지 않다.

지역 내 유일한 산업화 장소인 만큼 산업 역사와 일제 수탈의 역사를 한 곳에 선보일 수 있도록 건축물 보존 방법과 활용 방안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선 이곳은 조선인 여성 노동자 착취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여성근로자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대표적인 근대산업 문화유산으로 일부 단체를 중심으로 보존 범위를 공장과 기숙사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노성태 남도역사연구원장은 “광주·전남 지역에 일제 강제노역 관련 역사·교육공간이 없는 만큼 향후 리모델링을 거쳐 근대역사의 산실로 시민의 품에 돌려줘야 한다”며 “이를 위해 역사적 가치 판단과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슬럼화를 우려하고 있는 임동 주민들은 공장 측과 협의를 통해 ‘전면 개발’을 위한 도시 개발계획 확정에 속도를 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남방직·일신방직 이전 대책 주민 협의체 측은 “임동 주민 4천200여명은 오래된 건물에서 비롯된 소음 분진과 1급 발암물질인 슬레이트 가루가 있는 환경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며 “공장 측이 최소한의 주민 안전을 위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만큼 광주시는 전면 개발 방식으로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광주시는 부동산 개발업체에 매각된 일신·전남방직 부지 관련 협상을 위한 전문가 합동 전담 조직(TF)을 꾸려 중간 용역 결과를 공유하고 보완책 등을 논의하고 있지만 사유지에 대해 행정적으로 개입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결국 공장 부지 내 건축물 방치는 당분간 지속될 공산이 크다.

시 관계자는 “공장 부지 내 보존이 유력한 화력발전소와 고가수조 등은 안전과 미관상 문제에서도 보호와 리모델링이 필요하지만 개인 사유지인 만큼 보조 안전물 설치 등에 개입하기는 힘들다”며 “전반적인 가치 판단과 평가는 객관성을 바탕으로 차차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승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