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당산 오솔길에서 버려진 나뭇가지들과 억새와 파랗게 서 있는 풀잎을 모아 풍암동에 있는 싸목싸목 카페에 가지고 왔다. 이곳은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운영하고 있는 운리마을의 꿈 터이다. 공연도 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들이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마치 어느 위성의 외계인들이 사는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을 한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영화감독 G씨와 사진작가 K씨가 와 있었기에 우리는 서로 반가워하며 차를 마셨다. 조금 지나자 두루마기를 입은 화가와 미국에서 며칠 전에 왔다는 성악가 진이, 평소에 잘 아는 플루트 선생님과 피아니스트도 한자리에 앉게 되었다. “오늘은 대박 났네! 이렇게 모이기도 힘든데 우리 좋은 시간 만들어봅시다.” 박수 치며 모두 환호했다.

장르가 다른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속내를 내보이고 들여다보며 자신들 삶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예술가들은 자기들만의 아집이 있다. 창의적인 작품을 연출해내기 위해 새로운 소재를 찾아 고민한다. 맑은 혜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거기에는 가늠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것들, 하늘과 바다, 땅과 우주공간에 무한한 비밀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에 꿈틀거리는 실체들을 보고, 듣고, 느끼며 그것들에 대하여 흥미를 가진다는 것은 예술가들에게 필수적인 일이다. 그 실체들은 서서히 다가와 어느 한 순간 ‘아! 바로 이거였구나!’ 하늘이 열리는 것 같은 환희의 기쁨을 느끼게 한다.

유리 상자에 들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전쟁, 집념과 인내, 자연의 아름다움, 인류역사, 전시, 등등 헤아릴 수 없는 소재들이 널려 있다.

내가 왜 이 작업을 하는가? 생각해내야만 하고 그에 뒤따르는 시행착오의 과정을 무수히 겪어가는 일이라고들 한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병들고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면서도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영혼이 맑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맑은 정신, 디엔에이, 아니 그 이상의 무엇이 있을 거다. 어떤 것이든 정신수행이 없이는 자기 예술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예술가가 되려면 고달픈 과정을 거처야만 한다. 자기가 무엇을 하려는지, 찾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고민해야만 자신의 예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생각하기에 따라 물고기와 벌레 또는 나비와 꽃이 되기도 한다. 그래야 사물을 인식하게 되고 작품을 창작해낼 수 있다.

만물은 준비되어 있는데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여 발견할 수 없지만 그것들이 지닌 이유에 대하여 진한 향수 같은 연민이 들어올 때 비로소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영화감독이 말한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모습으로 동감한다.

사진작가는 어렸을 때 섬에서 살면서 무한한 바다를 보고 자랐다. 그는 신비로운 자연을 바라보며 사진 찍는 일에 전념하며 생각했던 것을 끊임없이 채우고 비워 사물과 대화함으로 살아 있는 것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전문적인 지식과 현실체험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신과 싸워 이길 수 있었을 때, 새로운 구상이 환하게 밀려왔다고 마음속에 있는 것을 진지하게 털어놓았다.

이어서 화가가 말한다. 유일한 것을 파고드는 것, 신비주의에 빠지기도 하며 책을 읽고 사색하는 삶이다. 미친 듯이 한 곳에 몰입하고 자신과 싸우다 보면 마음의 눈이 열리고 새로운 작품세계가 보이기 시작하면 세상을 다 얻은 듯 기쁘다고 했다.

플루트 선생님은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언어가 통하지 않아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며 외롭고 힘든 시간을 견디고서야 어느 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으며 내 나라 내 고향이 얼마나 따뜻하고 평안한지 새삼 알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성악가 진이는 생각해도 앞이 안 보여 어느 순간 좌절감에 지치기도 하고 허탈감에 맥이 빠질 때도 있었는데 선배님들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바가 크다며 앞으로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고 고마워했다.

피아니스트 성희도 한마디 하라는 말에 무대 위에 오를 때마다 긴장되기도 하지만 관객들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 어려움을 잘 이겨 냈구나 하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하는 그가 예뻤다.

차마 꺼내 보지 못한 비밀스런 말들이 오랜 세월 동안 머리 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 그들은 새로운 창작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예술가들의 생각이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긴장된 시간이었다.


<김형미 약력>
▲광주문인협회 이사, 현대문예작가회 회장, 광주시인협회 편집이사, 전여고문인회 부회장 역임
▲현대문예문학상, 여성돋을별상
▲꽃예술시작품집 ‘초록잎사이’, 수필집 ‘빛의 파도를 즐기는 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