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다채로운 사건과 매혹적인 인물들이 음식을 매개로 풀어가는 독특한 소설 ‘도문대작’. 이 작품은 조선시대 허균의 ‘도문대작’에 싱싱한 상상의 스토리를 접목해 현대와 연결시켰다. 53개에 달하는 음식을 에피소드로 풀어 우리 밥상의 원형에 관해 탐구한다.

조선의 천재 허균은 왕세자 광해의 사부였다. 그는 광해에게 ‘민위식천(民爲食天)’ 밥이 곧 하늘이라고 강조한다. 배가 고프면 나라와 임금도 소용없다면서 잠행을 통해 궁궐 바깥의 음식을 알려준다.

훗날 광해가 왕위에 등극했을 때 당파싸움에 휘말려 버림을 받게 되지만 그들은 음식을 통해 영혼의 친구가 된다.

궁중 요리사였던 한극은 허균의 수많은 저서 중에서 ‘도문대작’을 필사해 낙향한다. 그리고 음식을 통해 고을 백성들을 순화시키고 따뜻한 공동체로 묶는다.

한극의 후손인 소녀 한그루는 천부적인 절대미각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고 중국까지 진출해 능력을 발휘한다.

도문대작은 1611년 허균이 귀양지에서 집필한 책이다. 자신이 맛본 조선 팔도의 음식과 별미 등을 기록한 책으로 17세기 우리나라 식문화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김종서

이 세 명의 주인공들이 시공을 넘나들며 음식을 맛보고 베푼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혼란기에 먹을 것이 귀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국과 일본의 음식이 흘러들어오면서 조선의 밥상은 다채로워진다. 허균과 한극은 위민정신으로 기득권층에 저항한다.

마포의 소화 국밥집은 그들 영혼의 듀오가 꿈을 펼치는 무대가 된다. 소화는 한극과 힘을 합쳐 환상의 국밥을 만들어서 돈을 벌고 빈자들을 위해 국밥 보시를 한다. 그 국밥집에서 고추를 활용해 최초의 빨간 김치도 만든다. 우리 밥상에 혁명을 가져온 현장인 것이다.

광해가 왕세자였을 때 사부로 만났던 허균은 바깥세상 잠행을 통해 자신의 음식 철학을 공유한다. 왕위에 등극한 광해는 그 누구보다도 허균을 아끼고 신뢰하지만 당파 싸움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처형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허균을 체포하기 하루 전날 광해는 묵사동 허균의 집을 방문해 최후의 만찬을 나눈다. 이때 한극은 복어알 젓갈을 밥상 위에 올린다. 치명적인 맹독을 품은 젓갈을 광해는 기꺼이 맛본다. 허균과 한극을 믿기에 맛보았고, 또 그들이 독살의 의도를 가졌다면 죽어도 좋다는 심정이었다.

허균은 그 장면에서 빙그레 웃는다. 자신을 버린 군주였지만 그것은 상황에 따른 선택이었고, 광해는 인간적으로 허균을 사랑했음을 확인했으니까.

소설 ‘도문대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따뜻한 심성을 지녔다. 과거와 현재가 어지럽게 뒤엉켜도 스토리는 한결같이 생명의 본질이 밥임을 알린다.

조선의 미식가 허균과 요리사 한극의 생명 존중 정신을 이어받은 현대의 절대 미각 소녀 한그루의 행보는 독자들에게 따스한 위로를 전해준다. 속도감 넘치는 필치와 회화적인 문장, 통통 튀는 상상력으로 펼쳐지는 ‘도문대작’은 우리 소설의 지평을 또 다른 각도로 한 뼘 넓힌 문제작이다.

저자 김종서는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고 방송사에서 여행 프로그램 작가로 일했다.

그의 작품으로 ‘악동수첩’, ‘악동카페’, ‘네 비밀 하나만 빌려줄래?’, ‘비 개인 오후를 좋아하세요?’, ‘참 아름다운 슬픈 하나’, ‘승부사’, ‘드림보트’, ‘하우스’, ‘올 오어 낫씽’, ‘귀족’, ‘카지노 묵시록’, ‘전신 조훈현’, ‘상산고 아이들은 다른 길을 찾는다’, ‘바둑천국 마라도’ 등이 있다. 2020년 제1회 포천 38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김다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