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손주는 세월로 쳐서 몇 년쯤의 격차가 날까. 동시 <밥 먹는 손>은 밥 먹이는 일을 통해 안 먹겠다고 도리질하던 유아적 모습을 할머니에게로 이동해 혈연적 풍경을 데칼코마니처럼 절묘하게 구성했다. 필자는 평소 우리 문학의 미래는 아동문학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는데 여기에는 성공한 작품들이 많다는 얘기이다. 먹고 먹이는 일이 고스란히 ‘손’이라는 매개물에서 이루어지고 이를 조손관계로 표현한 시인의 솜씨가 비상하다.


▲연극무대의 전경처럼 “앙상한 가지를 붙들고/빈 바람에도 흔들리고 있는 산야” 같은 어머니가 상상 중에 그려진다. 이제는 중심마저 잃어가는 시린 세월의 어머니에다 아린 마음을 불판에 얹어 허겁지겁 불고기를 드시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딸의 모습에서 울컥한 뜨거움이 강하게 일어난다. 그간의 세월은 덥혀지지 않는 측은지심으로 이어져서 “작은 어깨 하나 감싸지 못한” 자식의 오지랖을 새삼 후회의 심정으로 돌이키고 있다. 어머니는 그 어떤 수식으로도 다다르기 어려운 우리 모두의 ‘전설’인데 겨울산야 같은 위태로움 위에 어머니를 노래한 딸의 눈물은 자못 간절하다.


▲어미와 자식 간에는 본능 이상의 힘이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조건 없는 사랑이고 헌신이 아닐까. 홍수가 나서 온 마을이 흙탕물에 뒤덮인 채 떠 내린 곳에 생사를 돌보지 않고 강물을 헤엄쳐가며 새끼 셋을 물어 나르는 어미 개의 숨김없는 새끼 사랑을 인간의 눈으로도 노래하고 있다. 지상의 뭇 생명체들은 저마다 어미와 자식 간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 있다. 그 사랑과 헌신을 그린 전학춘 시인은 ‘부부와 새끼 셋’의 사랑을 시조 <생명사랑>에 담아 부박한 인정세태를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찐찐찐이야. 완전 찐이야.’ 노래 가사로 시작하는 수필 <光과 꽝 사이>는 서두부터가 뒤틀린 얘기와 강한 반전을 예비한 느낌이다. 복달임을 하려고 “촌닭을 즉석에서 잡아 주는 양동시장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선 화자가 노선버스에서 잠시 멍 때리는 생각을 하다가 코스가 한참 달라져 있었다. 웬걸 이런 저런 생각과 풍경의 숲을 지나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 양동시장에 도착하였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시장이 쉬는 날이라니. 다시 걸어서 다다른 남광주 시장에도 생닭 사는 일은 역시 꽝이다. 탈진에 가깝게 ‘꽝’만 거듭하던 그쯤에서 ‘앞으로 넘어져도 꽃방석에 앉는다.’는 말처럼 의외의 소득으로 ‘光’을 얻는다. 광주는 찐찐찐 ‘꽝’보다는 ‘光’의 도시가 적이 마땅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