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光과 꽝 사이 / 수필 김정옥
- 재생 준비중
2021. 02. 01(월) 19:27 가+가-
‘찐찐찐이야. 완전 찐이야.’ 버스 안에 노래가 울려 퍼진다.
아니야, ‘꽝꽝 꽝이야. 완전 꽝이야.’ 오늘은 버스도 꽝이고 시장도 꽝이다.
복날 즈음이다. 촌닭을 즉석에서 잡아 주는 양동시장을 가기 위해 집 앞에서 98번 버스를 탔다. 조대 앞을 지나면서 숨겨진 조대 뒷산 길을 생각하고 멍때리다 흑석동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98번이 어느 코스로 가는지를 몰랐다. 송정리를 가는 버스이니까 당연히 양동시장 앞을 지나서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흑석동 사거리라고 한다. 아무리 봐도 내가 아는 허허벌판의 흑석동 사거리가 아니다. 사거리에 아파트와 빌딩이 즐비하다. 상전벽해이다. 다음 정류장은 풍영정이라 한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디에 내려서 환승해야 할까. 이왕에 잘 못 된 거니까 내려서 풍영정에나 가 볼까.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아련한 그리움이 확 밀려왔다.
언젠가 그리움의 거리만큼 시간이 지나가 버린 시절 한석봉이 쓴 현판이 있다는 곳을 찾아갔다. 긴 샛강을 따라서 산동교 쪽에서 들어간 것 같았는데…….
풍영정, 임진왜란 때 불길에 휩싸이자 현판 글자 가운데 ‘풍’자가 오리로 변하여 극락강 위로 날아갔다고 한다. 왜장이 기이하게 여겨 즉시 불을 끄라고 하자 극락강의 오리가 현판에 다시 날아들어 글씨가 또렷이 되살아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 하여 풍(風)자 가운데에 특이하게 오리 비슷한 모양이 들어가 앉아 있는 극락강변에 있는 정자이다.
순간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버스는 생각만 하고 있는 사람은 무시한다. 그대로 달린다. 갈수록 산이다. 우산이란다. 귀에도 생경한 소천을 지나 아리랑고개를 넘었다.
“다음 역은 송정공원입니다” 라는 말을 듣는 순간 광송간 도로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람들 뒤를 따라서 얼른 내렸다. 내가 타고 갈 버스를 찾기 위해 버스 승강장 표지판을 외울 듯이 샅샅이 훑었다. 모르는 번호뿐이다. 또 꽝인가. 맨 위를 보니 한 번도 보지 못한 기차 비슷한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넘어져도 꽃방석에 앉는다.’고 전철을 환승할 수 있는 곳인가 보다. 글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모자이크와 스테인 글라스에 그림을 넣어서 알게 했다는 중세의 사회 소통 방법, 내가 활용하고 있다는 것에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동질감을 느낀다. 남구에서 시작해 동구. 북구를 지나서 광산구를 거쳐서 서구인 양동시장에 내렸다. 광주의 다섯 구를 빙 돈 셈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던가. 오늘이 쉬는 날이란다. 광주를 한 바퀴 돌아서 이곳까지 왔는데……. 썰렁하고 고요하기까지 한 시장의 분위기에 묘한 괴리감을 느끼며 그냥 끝까지 걸었다. 혹시나 저 끝에 있는 닭집이 문을 열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꽝이다.
“엄니 손잡이 좀 잡으쇼. 잉. 아따, 아부지 기대지 좀 마랑께요” 라는 양동시장의 구수한 지하철 멘트를 들으며 또다시 남광주 시장에서 내렸다. 여기도 꽝이다. 순간 번 아웃이 된 듯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터덜터덜 고픈 배를 위로하며 돌아오는 발걸음이 질질 끌린다. 오늘은 버스도 꽝이고 시장도 꽝이다. 하지만 마음만은 光光光이라고 애써 바잡는다.
생각지도 못하고 잊혔던 광주의 대표 문화재인 풍영정을 건진 것이다. 역시 광주는 빛날 광이다.
때로는 멍 때림이 득이 되고 이렇게도 예상치도 못한 일이 슬며시 다가와 젊은 날을 추억할 수 있어서 좋다. 극락강 변에 있는 한석봉이 쓴 ‘제일 호산’이라는 편액도 꼭 또 찾아가 보리라.
삶의 여유는 순간순간 자기가 만들어 가는 것.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나에게 기운 내라고 속삭이듯 스쳐 지나간다. 시간이 훔쳐 간 아스라한 그 여름의 날들이 푸르게 지나간다. 한 줌 바람 같은 시간이 감미롭게 속삭이며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 깊숙이 보관된 기억에 촉촉한 미소를 날리며 맑은 숨 한 모금과 풍광 좋은 극락강 자락에 있는 풍영정의 추억을 덤으로 얻은 멍 때린 날. 오늘은 꽝꽝 꽝이라 쓰고 光光光으로 읽고 싶다.
이렇게 光과 꽝 사이를 넘나드는 것 또한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김정옥 약력>
▲2018년 대한문학등단
▲목요 수필 문학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이사
▲대한문학작가회 이사
아니야, ‘꽝꽝 꽝이야. 완전 꽝이야.’ 오늘은 버스도 꽝이고 시장도 꽝이다.
복날 즈음이다. 촌닭을 즉석에서 잡아 주는 양동시장을 가기 위해 집 앞에서 98번 버스를 탔다. 조대 앞을 지나면서 숨겨진 조대 뒷산 길을 생각하고 멍때리다 흑석동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98번이 어느 코스로 가는지를 몰랐다. 송정리를 가는 버스이니까 당연히 양동시장 앞을 지나서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흑석동 사거리라고 한다. 아무리 봐도 내가 아는 허허벌판의 흑석동 사거리가 아니다. 사거리에 아파트와 빌딩이 즐비하다. 상전벽해이다. 다음 정류장은 풍영정이라 한다.
언젠가 그리움의 거리만큼 시간이 지나가 버린 시절 한석봉이 쓴 현판이 있다는 곳을 찾아갔다. 긴 샛강을 따라서 산동교 쪽에서 들어간 것 같았는데…….
풍영정, 임진왜란 때 불길에 휩싸이자 현판 글자 가운데 ‘풍’자가 오리로 변하여 극락강 위로 날아갔다고 한다. 왜장이 기이하게 여겨 즉시 불을 끄라고 하자 극락강의 오리가 현판에 다시 날아들어 글씨가 또렷이 되살아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 하여 풍(風)자 가운데에 특이하게 오리 비슷한 모양이 들어가 앉아 있는 극락강변에 있는 정자이다.
순간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버스는 생각만 하고 있는 사람은 무시한다. 그대로 달린다. 갈수록 산이다. 우산이란다. 귀에도 생경한 소천을 지나 아리랑고개를 넘었다.
“다음 역은 송정공원입니다” 라는 말을 듣는 순간 광송간 도로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람들 뒤를 따라서 얼른 내렸다. 내가 타고 갈 버스를 찾기 위해 버스 승강장 표지판을 외울 듯이 샅샅이 훑었다. 모르는 번호뿐이다. 또 꽝인가. 맨 위를 보니 한 번도 보지 못한 기차 비슷한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넘어져도 꽃방석에 앉는다.’고 전철을 환승할 수 있는 곳인가 보다. 글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모자이크와 스테인 글라스에 그림을 넣어서 알게 했다는 중세의 사회 소통 방법, 내가 활용하고 있다는 것에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동질감을 느낀다. 남구에서 시작해 동구. 북구를 지나서 광산구를 거쳐서 서구인 양동시장에 내렸다. 광주의 다섯 구를 빙 돈 셈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던가. 오늘이 쉬는 날이란다. 광주를 한 바퀴 돌아서 이곳까지 왔는데……. 썰렁하고 고요하기까지 한 시장의 분위기에 묘한 괴리감을 느끼며 그냥 끝까지 걸었다. 혹시나 저 끝에 있는 닭집이 문을 열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꽝이다.
“엄니 손잡이 좀 잡으쇼. 잉. 아따, 아부지 기대지 좀 마랑께요” 라는 양동시장의 구수한 지하철 멘트를 들으며 또다시 남광주 시장에서 내렸다. 여기도 꽝이다. 순간 번 아웃이 된 듯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터덜터덜 고픈 배를 위로하며 돌아오는 발걸음이 질질 끌린다. 오늘은 버스도 꽝이고 시장도 꽝이다. 하지만 마음만은 光光光이라고 애써 바잡는다.
생각지도 못하고 잊혔던 광주의 대표 문화재인 풍영정을 건진 것이다. 역시 광주는 빛날 광이다.
때로는 멍 때림이 득이 되고 이렇게도 예상치도 못한 일이 슬며시 다가와 젊은 날을 추억할 수 있어서 좋다. 극락강 변에 있는 한석봉이 쓴 ‘제일 호산’이라는 편액도 꼭 또 찾아가 보리라.
삶의 여유는 순간순간 자기가 만들어 가는 것.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나에게 기운 내라고 속삭이듯 스쳐 지나간다. 시간이 훔쳐 간 아스라한 그 여름의 날들이 푸르게 지나간다. 한 줌 바람 같은 시간이 감미롭게 속삭이며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 깊숙이 보관된 기억에 촉촉한 미소를 날리며 맑은 숨 한 모금과 풍광 좋은 극락강 자락에 있는 풍영정의 추억을 덤으로 얻은 멍 때린 날. 오늘은 꽝꽝 꽝이라 쓰고 光光光으로 읽고 싶다.
이렇게 光과 꽝 사이를 넘나드는 것 또한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김정옥 약력>
▲2018년 대한문학등단
▲목요 수필 문학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이사
▲대한문학작가회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