遊奉巖寺(유봉암사)
직재 최유청

봄이 가니 산의 꽃 떨어져 없어지고
푸른 숲 위아래에 새들이 부르짖는데
양류의 가지 날아와 자리를 맴도누나.
春盡山花掃地無 綠林高下鳥相呼
춘진산화소지무 록림고하조상호
故知楊柳風流在 飛絮時來繞座隅
고지양류풍류재 비서시래요좌우


봄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준다. 자연스러운 자연의 현상이라고 하기보다는 어쩌면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의한 규칙적인 자연의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산꽃의 흔적이랄지 새들의 노래랄지 무감각 무원칙이랄 것도 없이 하나도 어김없는 규칙이 우리를 새로움으로 각인해 인식시킨다. ‘슬쩍 왔다가 어느덧 봄이 가니 산꽃들도 다 떨어져서 흔적 없고, 푸른 숲 위아래에서는 새들이 서로 부르짖는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버들가지가 날아와 이 자리를 맴돌고 있구나’(遊奉巖寺)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최유청(崔惟淸·1095-1174)으로 고려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1144년 동지공거로서 지공거 한유충과 함께 김돈중 등 26인에게 급제를 사하게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1147년(의종 1) 한림학사로 ‘서경’의 ‘열명’ 3편을 의종에게 강설했던 인물이다. 어사대부 동지추밀원사가 됐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어느덧 봄이 가니 산꽃들도 다 떨어져서 흔적 없고 / 푸른 숲 위아래에서는 새들이 서로 부르짖네 // 버들이 이렇게 멋있는 줄 새삼 알겠거늘 / 버들가지가 날아와 이 자리를 맴돌고 있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봉암사를 거닐면서]로 번역된다. 봉암사는 경북 문경 희양산 자락에 자리 잡은 고찰이다. 지금도 일 년 내내 수행도량이 진행돼 사찰의 내부가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미공개의 절이란다. 신라 헌강왕 5년(879) 도헌 지증 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진다. 당시 심충거사가 대사의 명성을 듣고 희양산 일대를 희사하면서 수행도량으로 만들 것을 간청했는데 대사는 처음에 거절하다가 이곳을 둘러보고 지었다 한다.

시인은 이런 사찰의 역사적인 사실을 잘 알고나 있는지, 아니면 모르고 있는지 봄 길에 가로놓인 사찰을 찾는 발길은 가벼웠던 모양이다. 봄이 가니 산꽃도 다 떨어져서 없고, 푸른 숲 위아래에선 새만 서로 부르짖는다는 선경을 그렸다. 봄이 서서히 가니 산새만이 서로 부르짖었을 것이라는 밑그림이다.

화자는 봄의 전령이나 되는 것처럼 축 늘어진 버들가지에 관심을 갖는다. 양류가 멋있는 줄을 새삼 알겠구나, 버들가지가 날아와 봄의 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후정의 시상이다. 양류에 관심을 갖고 멋있게 베를 짜는 새들도 생각했음이 시상의 그물 속에 촘촘하게 박혀 있음을 알게 한다.

※한자와 어구

春盡: 봄이 다하다. 山花: 산 꽃. 掃地無: 땅을 쓸어도 흔적이 없다. 綠林: 푸른 숲. 高下: 위아래. 鳥相呼: 새가 서로 부르짖다. // 故知: 그런 연고로 알겠다. 楊柳: 버들. 風流在: (거기엔) 풍류가 있다. 飛絮: 버들가지 (멀리) 날다. 時來: 올 때에는. 繞座隅: 자리 한 구석에 맴돌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