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 진상역 망덕포구 진상역은 두개의 풍경을 가지고 있다. 2020년 현재의 역사(上)와 1960년대의 역사(下)가 나란히 공존하고 있다. 폐역된 역사는 한국철도공사가 임대를 내줘 진상영농한우촌 식당(대표 양승래)으로 운영되고 있다.

경전선 열차는 전남 구간의 마지막 역인 광양 진상역에 이르렀다. 진상역은 1930년에 건설된 광주-여수간 광려선에 비해 30여년 늦게 건설됐다. 1968년 순천-진주간 선로가 연결되면서 그해 2월8일 개통했다. 따라서 이 때에야 비로소 경전선(慶全線)이란 이름에 걸맞은 철길이 완성된 것이다.

진상역은 최근 5년새 큰 변화가 있었다.

복선 고속전철화가 되면서 옛 선로와 역이 사라지고 새롭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래서 진상역은 두개의 풍경을 가지고 있다. 1960년대의 시간과 2020년 현재의 시간이 나란히 공존하고 있다.

이는 또한 경전선의 현주소를 말해주기도 한다.

경전선은 순천을 기점으로 크게 경상도의 동부선과 전라도의 서부선으로 나뉜다. 순천에서 삼랑진까지 동부지역은 산업의 발달로 일찍이 고속전철화가 이뤄진 반면 순천에서 광주송정까지 서부권은 1960년대 그대로 디젤기관차가 단선 철길을 달리고 있다. 더욱이 서부권은 한때 하루 2회 왕복하던 무궁화호 열차운행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가 올해에야 비로소 단선 고속전철화가 확정돼 기본설계가 진행 중이다.

진상역은 1968년 2월7일 옥곡역과 동시에 개통해 같은 해 3월2일 역사가 신축되고 보통역으로 이용되다 이용객 수가 줄어들어 1984년 간이역으로 격하됐다. 반세기 동안 최상의 교통수단이자 서민과 함께 했던 진상역은 한때 1만1천898명(2002년 기준)에 달할 정도로 이용객이 많았으나 교통수단의 증가와 변화 등으로 하루 평균 이용객 수가 20여명 내외로 현저하게 줄어들어 2016년 폐역의 운명을 맞았다.

진상역은 폐역되기 전 2년간 해랑 관광열차가 운행되기도 했다. 서울에서 출발해 구례구역에서 하차하면 버스가 관광객들을 태우고 화엄사와 천은사, 사성암 등 지리산 일대 관광지를 순례했다. 그리고 역 인근 식당에서 국밥으로 허기를 달래고 대기하는 열차를 타고 마산을 거쳐 상경하는 일정이었다.

현재 폐역된 역사는 한국철도공사가 임대를 내줘 진상영농한우촌 식당(대표 양승래)으로 운영되고 있다. 옛 경전선 선로는 복선화가 이뤄지면서 철거되고 바로 옆에 새로운 철길이 생겼다. 식당주인 양승래씨는 “식당 건물 뒤편에 철로가 있었으나 복선선로가 새로 생기면서 구 철로는 철거됐다”고 말했다.

섬진강과 바다가 만나는 망덕포구는 영호남의 교차점이자 길목이다. 그 옛날 사람들이 나룻배를 타고 구례나 하동을 오가는 포구였다.

광양 진상역은 경전선 서부선과 동부선을 잇는 가교이면서 윤동주의 시혼이 깃든 망덕포구와 가깝다. 진상역으로부터 진원면 방향으로 승용차로 10여분을 달려가면 전어잡이로 유명한 망덕포구가 나타난다. 망덕포구는 섬진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고기가 몰려들 뿐 아니라 나룻배를 타고 하동으로 오가는 길목이었다.

그런데 이 포구 앞에는 윤동주 시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고가 보관됐다가 세상에 빛을 볼 수 있게 된 역사적 장소가 있다. 바로 윤동주 시인과 연희전문 시절 함께 하숙했던 고 정병욱 서울대교수(1922-1982)의 옛집 ‘정병욱 가옥’이다. 진월면 망덕길 249(외망마을 23번지)에 자리한 정병욱 가옥은 1925년 지어진 일본식 건물로 양조장과 주택을 겸한 형태이다.

윤동주 시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고는 정병욱 가옥 마루바닥에 보관됐다가 세상에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윤동주 시인의 유고가 어떻게 이곳 머나 먼 남쪽 바닷가에까지 오게 됐을까. 윤동주는 졸업기념으로 자선 시집을 만들어 출판하기 위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육필원고 세부를 만들었다. 한 부는 윤동주 자신이 갖고 한 부는 지도교수였던 이양하 선생에게 드리고, 남은 한 부는 정병욱에게 맡겼다. 하지만 시 원고를 받아본 이양하 선생이 출판을 보류하도록 권유했다. ‘십자가’, ‘슬픈족속’, ‘또 다른 고향’과 같은 작품들이 일본 관헌의 검열에 통과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신변에 위험이 따를 수 있으니 때를 기다리라고 한 것이다.

이후 윤동주는 1942년 2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정병욱도 1944년 1월 말 학병으로 징집된다. 그는 떠나기 전 윤동주의 육필원고를 어머니께 전하며 소중히 보관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정병욱의 어머니는 원고를 항아리에 담아 고향집 마룻바닥을 뜯고 숨겨놓았다.

일본 유학중인 윤동주는 1943년 7월 교토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된다. “한국어로 시를 써 민족의식을 고취시킴으로써 한국독립을 도모했다”는 이유다. 그리고 1945년 2월16일 후쿠오카 감옥에서 29살의 짧은 생을 마친다.

해방이 돼 보니 남아 있는 윤동주의 육필원고는 정병욱 보관본 오직 한 부뿐이었다. 정병욱 고향집에 보관된 윤동주 육필원고는 당시 경향신문 기자였던 강처중이 가진 원고와 합쳐져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발표된다. 만일 일제 탄압을 피해 정병욱과 그 가족에 의해 유고가 보존되지 못했다면 불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영영 묻혀버렸을지 모른다.

정병욱 회고록 ‘잊지 못할 윤동주 형’에서 “죽고 돌아오지 않더라도 조국이 독립되면 유고시집을 연희전문학교에 보내어 세상에 알리도록 해달라고 유언처럼 남겨놓고 떠났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바람대로 윤동주 시인의 육필원고와 유고 유품 일체가 유족에 의해 연세대에 기증됐다.

필자가 망덕포구 앞 ‘정병욱 가옥’에 와보니 개보수를 위한 공사를 하느라 사방에 울타리가 둘러쳐 있다. 광양시가 윤동주와 정병욱과의 아름다운 우정이 깃든 이 건물을 1920년대 당시 원형으로 복원하기 위한 해체 공사가 진행중이다.

눈을 돌려 망덕포구를 바라보니 망덕산 아래 섬진강물이 바닷물과 어우러져 넘실대고 있다. 망덕포구는 영호남의 교차점이자 길목이다. 그 옛날 사람들이 나룻배를 타고 구례나 하동을 오가는 포구였다. 정병욱 교수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났으나 부친이 망덕포구로 사업근거지를 옮기면서 30년간 광양과 인연을 맺게 됐다. 그런 점에서 정병욱 가옥은 영호남 화합의 상징적 의미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준수 기자(시인)


■정병욱 가옥 내력과 활용방안

“불멸의 詩魂 깃든 판타지의 공간” 광양시, 양조장집 원형 복원·문학관 건립 추진

진월면 망덕길 249(외망마을 23번지)에 자리한 정병욱 가옥은 1925년에 지어진 일본식 건물로 양조장과 주택을 겸한 형태이다. 현재는 정병욱 교수와 인척간인 박춘식 선생의 소유이다.

‘불멸의 시인’ 윤동주는 29년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도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중국 용정에서 성장한 윤동주는 서울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릿교대학과 도시샤대학에서 수학했다. 그리고 1943년 독립운동을 도모했다는 이유로 일본경찰에 체포돼 2년 형을 언도받고 수감중 1945년 2월16일 후쿠오카 감옥에서 생을 마쳤다.

현재 윤동주에 관한 공간은 탄생지인 중국 용정 명동마을-서울 연세대 캠퍼스·종로 윤동주 문학박물관-교토 도시샤대·후쿠오카로 연결된다.

특히 일본에서 윤동주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시가 수록돼 있고, 후쿠오카에는 윤동주 시 읽기회가 열리고 있다. 일본 각지에 윤동주 시를 토론하는 모임과 윤동주 문학기행 모임이 있을 만큼 일본인에게 사랑받고 있다. 또한 도시샤대학과 그가 머물렀던 하숙집터, 그리고 우토로공원에 각각 시비가 세워져 있다. 필자는 2010년 한일병합 100주년을 맞아 우토로공원에 윤동주 시비건립 운동을 벌이고 있던 곤따니 노부꼬씨(‘윤동주를 생각하는 모임’ 대표)를 만나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다. 곤따니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우리가 윤동주 시인을 기억하는 한 그는 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서울 종로구에 윤동주 문학박물관이 건립돼 시 낭송회, 백일장, 문학둘레길 걷기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오고 있다.

광양시 역시 윤동주와 관련, 정병욱 가옥과 연계해 문화콘텐츠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시는 지난 2013년 심포지엄을 열고 ‘정병욱 가옥의 문화사적 가치와 활용방안’을 모색한 바 있다. 당시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과거 양조장이었던 허름한 집이 거대한 민족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환타지의 공간이 됐다”며 “윤동주와 정병욱의 한글사랑과 시혼을 기리는 ‘윤동주+정병욱’ 문화콘텐츠를 담아내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공간의 구성을 크게 4가지로 제시했다. 첫째, 윤동주와 정병욱을 회상하는 공간 둘째, 장소애(場所愛)를 일으키는 고향의 공간 셋째, 민족정신을 향한 친근한 공간 넷째, 한류를 향한 국제적 공간이다.

광양시는 기존 정병욱 가옥 개보수와 별도로 뒤편에 부지를 확보해 문학관을 건립, 그 안에 윤동주와 정병욱의 이야기를 문화콘텐츠로 담아낼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을 꾸밀 계획이다.

이에 따라 광양시는 기존 정병욱 가옥을 개보수하는 한편 이와는 별도로 뒤편에 부지를 확보해 문학관을 건립, 그 안에 윤동주와 정병욱의 이야기를 문화콘텐츠로 담아낼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을 꾸밀 계획이다.

현재는 산자락을 절개해 부지 조성공사를 진행중이며 내년 중에 완공될 예정이다. 시는 내년에 ‘섬진강권 인문학’ 사업의 일환으로 예산을 확보해 문학관 건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광양=허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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