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부셰 作 ‘퐁파두르 백작부인’ <위키피디아 검색>

르네 마그리트 作 ‘The Lovers’ <위키피디아 검색>

사랑이라는 단어에는 참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다. 연인 사이의 사랑, 부모님과 자식 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등 참 다양하다. 그중 이번에 나눌 이야기는 바로 연인 간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시콜콜하고 진부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감정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조차도 낯선 세계를 여행하듯 행복할 수 있기에 이런 감정은 기분 좋은 느낌 중 하나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을 활기차게 만들기도 하는 연애 감정에는 큰 단점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복잡 미묘하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삶의 배경과 경험치 등을 가진 채 만나야 하기에 서로 완벽하게 맞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사랑을 ‘눈물의 씨앗’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너는 대체 어느 별에서 왔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상대를 이해하기란 어렵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종이에 먹물이 번져가듯 막을 새도 없이 찾아든 감정에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이를 반복해가며 한층 더 성숙해 간다.

명화 속에도 화가들이 담아낸 다양한 ‘연애 이야기’가 존재한다. 미술사 속에서 연애의 감정이 자유롭고 적나라하게 표현되던 시기는 미술사라는 선박을 출항시켰던 이탈리아가 아니라, 지중해 세계가 종식되고서 강력한 국가로 성장한 프랑스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로코코(Rococo)에서였다.

바로 이전 시기 딱딱하고 경직돼있던 바로크에 반해 감미롭고 화려하며 장식성이 넘치던 로코코는 한마디로 ‘예쁜 것을 탐닉했던 시기’로 정의해 볼 수 있다. 강력했던 태양왕 루이 14세가 죽고 나자 그 기세에 눌려 힘을 쓰지 못하던 귀족세력이 어느 정도 힘을 되찾게 됐고, 그들 또한 왕실 못지않은 화려함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18세기 초 이렇듯 화려한 귀족 문화가 꽃피워 가던 상황에서 활동했던 주요 화가들로는 와토, 부셰, 프라고나르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그림은 모두 공통적으로 보기만 해도 달달한 연애 감정이 느껴지는 듯한 몽환적 이미지를 풍겨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중 와토(watteau)의 ‘키테라 섬으로의 출항’이라는 작품은 귀족들이 짝을 찾기 위해 떠나는 섬 여행을 그린 작품으로 일륜지 대사 일지도 모를 일들을 그저 가벼운 유흥 정도로 여기던 당시 귀족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림이다.

사랑의 신 큐피트가 여기저기서 날고 있는 그림 속에서는 사랑의 항해를 떠나기 위한 남녀 사이의 연애 과정을 화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묘사하듯 그려 넣었다. 이렇게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연회 모습을 적나라하게 반영해낸 작품들은 로코코 풍의 페트 갈랑트(fete galante, 우아한 연회)라고 불리며 당시 새로운 장르로서 다뤄지기도 했었다.

사교모임인 살롱 문화가 발달했던 이 시기에 유명했던 여성으로는 퐁파두르 백작부인을 들 수 있다. 비록 평민 출신이었지만 뛰어난 미모뿐만이 아니라 문화, 군사, 정치 등에 관한 책을 3천500여점이나 써낼 정도로 지식 전반에도 두루 식견을 갖췄던 그녀에게서 살롱문화가 시작됐고, 로코코의 문화는 그녀에게서 완성됐다고 볼 수가 있다.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그녀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아 프랑스 로코코의 대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부셰 또한 이시기 유명했던 화가였다. 자신의 후원자인 백작부인을 그린 그의 초상화에서도 화려한 로코코적 특징을 살필 수가 있다.

이처럼 연애가 단지 이성에 대한 에로틱한 욕망과 유희로 넘쳐나던 로코코 시대의 그림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조금 다른 어쩌면 훨씬 더 현실적일 수도 있는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작품 ‘연인들’(the lovers)을 살펴보자.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흰 천을 뒤집어 쓴 한 쌍의 연인들의 모습을 그려 넣은 이 그림을 처음 접하게 되면 약간 괴기스러운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연인에 대한 마그리트의 독특한 표현이 담겨있는 작품 ‘연인들’은 영화나 뮤직비디오 등에서 자주 오마쥬(homage) 될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는 그림이기도 하다. ‘사랑의 아픔’에 대한 내용을 노래에 담아낸 가수 ‘넬’의 뮤직비디오 ‘치유’에서는 이 그림을 본 딴 장면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노래의 의미가 무엇일지 저절로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마그리트는 초현실적인 화풍으로 그림을 그렸던 화가로, 그림 안에 다른 그림을 그려 넣거나 친숙한 일상의 사물을 예기치 않는 공간에 배치시키는 등 상식과 논리를 뒤집는 ‘이미지의 반란’을 일으켰던 장본인이다. 그는 이 장난기 가득하고 상상력이 돋보이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라는 기법을 활용해 보는 이로 해금 기존의 관습적 사고에서 일탈을 유도해 내고자 했다. 이를테면 담배 파이프를 화면에 그려놓고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배치해 기존에 그 대상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흐트러 놓으려 했던 그것 말이다.

작품 ‘연인들’에서는 상대를 알기 위해 가장 중요할 ‘얼굴을 온통 감싼 흰 천’이 인상적이다. 객관성을 잃은 눈으로 자신이 ‘보고 싶은 상대방의 모습만 보겠다’는 것 혹은 ‘단점까지도 모두 눈감아 버리겠다’는 두 가지 의미로 주로 해석이 되는 이 그림의 의미는 대략 ‘Love is blind’로 축약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독자들 각자가 어떤 식으로든 해석하고 읽어 봐도 무방하다. 독자들은 이 작품이 어떻게 읽히는가?

한편으로 마그리트의 이 작품은 정신분석가들과 평론가들에게 논란이 되는 그림이기도 하다.

마그리트의 어머니가 한밤중에 강에서 투신자살을 하게 되는 비극적인 사건과 당시 14살의 나이로 흰 치맛자락이 얼굴에 뒤덮힌 채 강에서 꺼내어지는 어머니의 시신을 본 그에게 이 사건이 커다란 트라우마가 됐을 것이란 추측 때문이다. 마그리트는 분명하게 ‘그 사건과는 그림이 연관이 없다’고 단정 지었지만 상반되는 의견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상적인 경험 속에서 발생하는 기억의 조각들을 작품에 투영시켜내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주로 사용하는 마그리트에게 있어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보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과연 그것이 존재할 수나 있는 것일까? 물론 그 전에 오직 너일 수밖에 없을 운명과도 같은 타이밍에 맞춰 나타난 상대가 있어야 이뤄질 수 있겠지만, 일단은 ‘성숙함’이라는 단어를 꺼내 볼 수 있겠다.

‘나이가 들어 어른스럽게 되다’라는 진부한 의미말고 ‘경험이나 습관을 쌓아 익숙해 진다’는 의미의 ‘성숙’ 말이다. 즉, 사랑에도 배타적이지 않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성숙한 사랑을 위해서는 그만큼의 경험치와 데이터를 쌓을 필요가 있다는 연애상담사의 조언과도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이현남 <전남대 미술이론 박사수료>

그렇다면 ‘사랑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사랑한다는 것을 ‘상대를 아낀다’는 의미로 바꾸어 보자. 상대를 염두에 둔다는 것은 나만 생각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아픔이 보인다고 늘 그 고통을 잊게 해줄 수 있을까? 우리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의 양은 ‘딱 한 공기’뿐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늘 균형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너무 과하게도 너무 적게도가 아닌 ‘유동적인 상황에 맞게 약간의 밸런스를 맞춰 상대를 아껴주면 그뿐’인 것이다. 어떤 것이든 극단에 치우치기보다 늘 은은히 비추는 불빛처럼 그저 그 자리에서 따뜻하게 밝혀준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을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세상 만물이 변하는 것처럼 사랑의 감정 또한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일어나는 ‘그 순간의 진심’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여길 줄 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지 않을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