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여수 밤바다’가 울려 퍼질 여름이 돌아왔다. 뜨거운 여름을 알리는 듯 지겹게 울려대는 이 노래를 따라 다시 눈앞에 찾아온 여름은 우리의 발걸음을 어서 바다로 옮기라 말하는 듯하다.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늘 즐거움을 주는 공간이자 많은 것을 사유하도록 만드는 곳인 바다는 더위에 지친 이들에게 물놀이를 할 수 있게 시원함을 제공해 주기도 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는 이들에게 무언의 위로를 전달해주기도 하는 참 넉넉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은 이 바다를 그냥 지나치기는 정말 힘들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바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을런지 내심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런 독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이번에는 바다를 주제로 한 그림들을 준비해 봤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해변이 담긴 풍경화나 고즈넉한 해변의 일출 혹은 거대한 자연의 숭고함이 느껴지듯 웅장하게 묘사된 바다, 그리고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게 추상형식으로 표현된 바다까지, 똑같은 바다이지만 화가들이 느꼈던 바다는 각양각색이다.

고흐 作 ‘생트마리의 바다풍경’(1888) <위키피디아 검색>

바다가 등장하는 명화는 꽤 많이 존재한다. 그중에서 인상파 화가로 잘 알려진 고흐의 반짝이는 바다를 먼저 살펴보자. ‘생트마리의 바다풍경’이라는 제목을 가진 고흐의 바다는 1886년 지중해 해안을 처음 마주하고서 풍경에 매료된 그의 심상이 담긴 작품이다. “지중해의 물빛은 마치 고등어 같다. 초록인지 보랏빛인지, 또 푸른 빛인지 잘 알 수 없다. 불과 몇 초 사이 반짝이는 물결이 분홍 또는 회색의 색조를 흉내내기 때문이다.”

빛의 화가로 색채에 예민했던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봐도 그곳이 얼마나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던 공간이었는지를 알 수가 있다. 넘실대는 연초록 파도들이 주연인 듯 등장하는 이 바다 그림에는 고흐의 특징인 붓 터치들을 통해 반짝이는 파도의 모습이 아름답게 표현돼있다. 그리고 중간 만큼 떠 있는 어선 위로는 아마도 구름이 낀 듯 바다의 색이 앞쪽과는 사뭇 다르게 표현돼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후경에 위치한 또 다른 어선들은 그림의 원근감을 살려내고 있고, 고흐 그림의 여느 하늘처럼 배경 속 구름들은 연신 소용돌이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가 하면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소리를 지르고 있는 ‘절규’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뭉크에게도 바다 그림은 존재한다. 우울하고 칙칙하기만 할 것 같은 그의 바다는 의외의 모습이다. 여름밤 해변의 모습을 그린 그의 작품 속에는 보름달이 떠 있고 칠흑같은 바다 위로는 추욱 늘어진 달그림자가 밤바다 위에 드리워져 있다. 게다가 화면 앞쪽에 이끼 덮인 돌들을 향해 밀려오는 바닷물은 어딘지 모르게 고요하고 아름답다. 차분히 밀려오는 바닷물에 찰랑찰랑 소리가 들릴 듯한 바다는 감미롭기까지 하다.

뭉크 作 ‘해변의 여름밤’(1902) <위키피디아 검색>

다음으로 소개해 볼 작품은 흑인들에 대한 인종주의 철폐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한창인 현 시국과도 상통하는 조금 슬픈 바다에 관한 것이다. 특별한 무장이나 저항할 수 없는 상태의 시민을 경찰이 과잉진압해 질식사한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며, 코로나19 상황에도 반 차별을 외치며 미국 전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이 시위로 인해 원래는 공개가 되지 않았던 진압장면을 녹화한 테이프를 앞으로는 공개시키는 법이 통과됐다고 하니 조금은 다행스럽기도 하다.

영국의 낭만주의 풍경화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M.W. Turner·1775-1851)의 작품 ‘노예선’은 앞서 소개한 두 점의 바다와는 사뭇 다른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을 처음 마주하게 된다면 ‘바다가 어디 있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일반바다의 형상이 아닌 추상형식으로 표현된 터너만의 바다가 보인다. 석양으로 물든 바다와 하늘이 한데 섞여 마치 안개에 쌓인 듯 도무지 어디가 어디인지 알아볼 수가 없다.

현대미술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입장에서 작품을 접하게 되면 추상적 이미지와 함께 격정적인 노을을 표현한 현란한 색채가 먼저 다가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가까이서 작품을 들여다 본다면 마치 생지옥과도 같았던 ‘그날’의 끔찍함을 볼 수 있다. 그림의 전면부 중앙을 기준으로 좌우로 펼쳐진 바다 위에는 무언가 떠있는 것이 보인다. 자세히 보면 노예들을 묶었던 쇠사슬들, 그리고 살려달라 아우성치는 여러 개의 손들이 무섭도록 신랄하게 그려져 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우리에게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몇 해 전 세월호의 기억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터너의 작품 노예선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려갔던 흑인 노예들의 비참한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영국의 노예상이 아프리카에서 잡은 흑인 노예들을 싣고 자메이카로 가던 중 만난 폭풍에 의해 노예들이 계속 죽어가자 선장인 콜링우드는 잔인한 결정을 하고 만다. 당시 재산으로 취급됐던 노예들은 보험에 가입됐었고 자연사가 아닌 실종 신고를 하면 보험금을 받을 수가 있었다. 이에 이미 죽은 노예, 여자, 아이 가리지 않고 둘씩 쇠사슬에 엮여 산채로 바다에 던져버렸고 터너는 그림 속에 이런 장면들을 속속들이 묘사해 넣었다.

17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반까지 납치돼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려간 흑인들의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서로의 목이 나무 걸개로 엮인 채, 최소한의 공간을 차지하도록 눕거나 혹은 앉은 채로 촘촘히 배에 실린 모습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들은 마치 짐짝처럼 켜켜히 쌓인 채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다섯 달까지 바다를 항해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 노예들은 하나, 둘 죽어갔고 누구 하나 그들을 귀중히 여기지 않았기에 죽은 노예들은 무참히 바닷 속에 던져지기 바빴다.

노예제도가 합법적이던 1781년 이와같이 처참했던 영국선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토마스 클랙슨의 역사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터너는 1840년에 이 그림을 완성한다. 그림이 가져온 여파는 너무 컸고 대중의 반응에 힘입어 노예제 반대 시위가 일게 됐으며, 1840년 노예제 개편을 위한 국제회담이 런던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그러나 평론가들은 이런 터너를 비난하기에 바빴고 그는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 윌리엄 터너는 생전에 다양하고 방대한 양의 작품들을 남겼다. 또한 출세도 빨라 21세에 왕립 아카데미전에 출품하며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렸고, 23세 때는 작품 주문에 제작이 따르지 못할 상황이었으며, 27세에는 왕립미술원의 정회원이 70세에는 원장이 될 정도로 성공 가도를 달렸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작품 이후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이름을 바꿔가며 생활해야 했고, 어느 곳에서 죽었는지도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은둔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현남 <전남대 미술이론 박사 수료>

하지만 터너는 마땅히 감내했고 자신의 소신과 의견을 두루 펼쳐내는 데 있어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또한 후세를 위해 자신의 작품을 팔지 않고 영국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에 모두 기증했으며 이 뜻을 받아 ‘터너프라이즈’라는 상이 만들어지게 된다. 혁신적인 작품 활동을 한 이에게 ‘한 해 동안 주목해야 할 작가’라는 의미로서 수여되는 상이기에 작가들에게 의미 있는 상이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윌리엄 터너, 그가 존경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배려 그리고 용기에서 비롯됐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