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91세의 노시인은 매일 아침 식사를 하고 나면 컴퓨터 앞에 앉는다. 젊은 시절보다 자판을 두드리는 속도는 더딜지 모르나, 90평생 살아온 연륜과 삶의 지혜는 그 누구보다 농익어 있다. 살면서 느낀 생각과 자연의 아름다움,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 등을 시어로 옮긴다. 그렇게 그의 두 번째 시집이 나왔다.

광주에서 시 창작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가헌(嘉軒) 신극주(90) 시인의 이야기다. 신 시인은 최근 제2시집 ‘어둠과 밝음의 포옹’을 발간했다.

이 시집에는 인생사에 대한 이야기, 사람 사는 자세, 자연의 아름다움, 일상의 행복 등을 담은 시 87수가 수록돼 있다.

질곡의 현대사 속에서 살아 온 신 시인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 장성에서 태어난 신 시인은 1942년 일본 규슈 후쿠오카 초등학교에 전학을 간 적 있었는데, 동급생들과 담임교사에게 민족 차별과 압박을 받았다.

1956년부터는 중등교사로 발령받아 이때부터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41년간 교편을 잡고 문학작품을 연구하면서 문학 창작활동에 대한 관심을 키워 왔다.

하지만 옳지 않은 방식으로 문학계에 입문하는 당시의 일부 부정적인 등단 문화에 반기를 들고, 젊은 시절 등단의 기회를 여러 차례 포기했다.

마침내 꿈을 이룬 때가 2007년이다. 여수 여천고에서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한 후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에 임한 신 시인은 2007년 ‘아시아서석문학’에 시 등단, 2008년 ‘월간수필문학’에 수필로 등단했다.

2015년에는 생애 첫 시집 ‘뜸들이기’과 수필집 ‘도둑술 이야기’를 냈고, 5년이 지난 현재 제2시집을 발간한 것. 작품성을 인정받아 아시아서석문학작품상·광주시문학상을 받았으며, 지난해 광주문인협회의 ‘제12회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다.

신극주 제2시집(左)과 광주 동구 운림동 무등산 자락에 설치된 ‘동적골을 산책하다’ 시비.

그의 시는 광주 동구 운림동 무등산 자락 동적골 산책로에 나무로 된 ‘시비’로도 만나볼 수 있다. ‘동적골을 산책하다’란 제목의 시가 등산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신 시인의 시에 대해 백수인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미수(米壽)를 건너 구순에 선 신극주 시인은 오랜시간 동안 축적한 삶에 대한 체험의 눈으로 세상을 읽고 이를 시의 형식으로 치환해 낸다”며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만큼 넓고 깊은 사유와 세상을 관조하는 시적 시선을 지니고 있다. 그가 지금가지 체험한 다양한 시간과 공간은 시적 사유의 시간과 공간으로 재현돼 나름의 독특한 시적 세계를 구축한다”고 평했다.

두 번째 시집 출간 소감에 대해 신 시인은 “상황에 맞는 단어를 찾고 이를 조합해 시를 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특히 90세 늙은이가 작품활동을 하는 것은 의지와 끈기, 집중과 기억을 통해 이뤄진다고 생각한다”며 “아흔을 살았으니 이제 여한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제2시집을 냈으니 이왕 제3시집까지 내는 것이 마지막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어 신 시인은 “마지막 시집은 살아온 날들을 정리한다는 의미의 시들을 담아내고 싶다”며 “평생을 살아오면서 겪은 것, 느낀 것들을 시로 풀어낼 것”이라고 말했다./정겨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