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젖을 팔며 여성운동에 매진


마쓰다 도키코는 남편 오누마 와타루와 결혼 후 22세의 나이로 아이를 출산했다. 하지만 남편은 일정한 직업이 없었다. 게다가 감옥에 자주 들락거리는 상황이라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여인예술’ 창간호(1923년)

마쓰다는 생활을 위해 자신의 젖을 짜서 타인의 자식에게 먹이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큰 시계가게를 운영하는 관리가 병을 앓는 애를 돌볼 유모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관리의 자택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애가 있는데도 그 애에게 먹이기 위해 젖을 짜야만 했다. 23세에 맛본 참으로 굴욕적인 체험이었다.

다행히 지인의 소개로 이듬해(1929년) 마쓰다는 이즈오시마(伊豆大島) 소재 사시키치초등학교에 1년 동안 대리 교원 생활을 한다. 일본프롤레타리아 작가동맹에도 창립과 동시에 가입한다. 그녀는 가까스로 문필활동에 몰두할 수 있었다. 유모 체험을 살려 ‘젖을 팔다’라는 소설을 집필한 뒤 ‘여인예술’에 발표했다. 초기 대표작 ‘젖을 팔다’는 이런 배경 하에 햇빛을 보았다.

한편, 마쓰다는 같은 해 가을 ‘여인예술’이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을 지원할 목적으로 ‘전여성진출행진곡’의 가사를 모집하자 응모한다. 그리고 2등으로 입선해 상금 100엔을 받는다(1등은 없었고 2등 1명). 생활에 보탬이 됐음은 당연하다. 가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닫힌 구름 찢어지는 태양/ 날뛰는 폭풍우여 / 산더미처럼 물결치는 노도여/ 일어나라! 불타올라라!/ 양손을 치켜 올려/ 우리의 횃불을 드높이자/ 낳은 자 우리들/ 기르는 자 우리들.



족쇄의 그날/ 힘주어 깨부수자/ 피로 물들이자/ 일어나라! 불타올라라!/ 투쟁의 그날/ 새로운 세상을 낳는다/ 세계의 어머니 우리들/ 세계의 어머니 우리들.



남편이 노동운동으로 투옥된 지난한 일상 속에서 애를 키우면서 자립해야 하는 마쓰다의 애환과 고뇌가 읽힌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녀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참여하는 여성으로서 기개를 드높이며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얼마나 그녀가 사회참여와 앙가쥬망의 자세를 견지했는지를 알 수 있는 표현이다.

당시 여성의 지위향상 운동을 이끌던 작가 하세가와 시구레(長谷川時雨)는 이 가사를 접하고 “그녀의 생활은 투쟁, 출산, 양육, 기개 넘치는 활동,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꾸민 시가 아니다. 심호흡과 함께 격정적으로 내뱉는 진실한 목소리”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우리 이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르며 나약한 우리를 극복하자”라고 외쳤다(‘마쓰다 도키코 사진집’ 41p). 　

행동하는 여성 마쓰다 도키코는 사회적 관심을 품으면서도 한편 작가로서 주변을 돌아보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혁명작가 고바야시 다키지의 ‘1928년 3월15일’을 읽고 그가 동향출신 작가임에 애정을 드러냈다. “집요하게 착취망을 확장하기 위해 자본의 마수가 조성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무수한 불행, 비참함이 그 작품을 읽음으로써 느껴졌다. 자신이 생생히 겪어온 체험을 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다키지의 대표작 ‘게 가공선’에 대해서는 “(노동자들의) 고통과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의지를 읽었다”, “그 정도로 깊고 넒은 표현에 더욱 확실함을 부여하기 위해 작가에게 한숨 돌려 차분함을 유지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는 당부의 언어도 잊지 않았다.

혁명작가 고바야시 다키지(1931년)

“쌀 내놔라” 외치며 한일 여성과 데모

그러던 와중에 1932년 상해사변이 발발했다. 일본제국주의 정부는 ‘만주국’ 건설을 선언했다. 그해 여름 마쓰다 도키코는 여성의 현실참여 목소리를 드높이며 조선의 부인들과 함께 ‘쌀 내놔라(米よこせ)’ 운동에 참여했다.

이러한 단편적 사실에 대해서는 연보를 통해 알려진 바 있으나 최근 그 구체적 기록이 공개되었다. 기록은 다름 아닌 1932년 7월 하순 도쿄의 거리에서 일본 엄마들과 조선인 부인들이 어린애를 등에 업고 연대 데모행진을 벌인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단편 체험기.

마쓰다 도키코의 체험 고백인데, 그녀가 1974년 7월29일 신문 아카하타의 ‘수상(隨想)’이라는 지면란에 ‘데모행진’(제목이 일본어로 ‘조로 데모’이므로 슬로 데모로 봐도 무난’)이라는 제목으로 회고문을 게재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대적 배경을 살피면 당시 대규모의 경제공황은 세계 각 곳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일본에도 심각할 정도로 경제 불황이 찾아와 1930년도 초반 동북지방의 흉작과 함께 사회적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묵은 쌀을 새로운 쌀로 대체하는 시기를 앞두고 쌀값이 상승했다. 가격하락과 실업으로 고통 받던 농민과 도시 빈민층 노동자들의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무산자 소비조합연맹’은 국제협동조합의 날을 기점으로 정부 보유미의 획득투쟁을 제창했다.

1932년 도쿄의 각 지역에서 실업자와 그 가족은 관청 및 경찰서에 ‘쌀을 내놔라’고 요구하며 운동을 펼쳤다. ‘관동 소비조합연맹’은 노동조합, 농민조합과 함께 요구서명과 농림성을 향한 데모 활동을 전개했다. 운동은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됐다.

마쓰다 도키코는 자신이 체험한 이와 같은 ‘쌀 내놔라’ 운동의 풍경, 그리고 일본 엄마들과 조선인 부인들이 연대해 투쟁한 활동상을 42년 뒤 신문에 ‘데모행진’이라는 제목으로 공개한다.

역사적 시점에서 보더라도 일본 내지에서 한일 여성들이 일본제국주의 세력에 맞서 연대한 기록이기에 그 의미가 각별하다. 어떤 데모행진이었는지 그 전개과정과 양상을 살펴보자.

마쓰다 도키코는 “이 계절의 무더운 염천 속에 떠오르는 엄마들과 애들의 데모가 있다”고 일본의 신문독자들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시기는 “1932년 7월 하순”, 장소는 “도쿄 고토구(江東區) 가메이도(龜戶)의 무산자 탁아소를 기점으로(중략) 가메이도 5가의 상점가에서 이웃 오지마(大島) 거리로 향하는” 곳이었다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마쓰다는 고토구 가메이도 내에서 특별고등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거처를 옮겨 다녔다. 그런 까닭에 가메이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모두 꿰뚫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마쓰다는 “모여서 행진을 한 자들은 실업과 빈곤에 완전히 지친 일본의 엄마들과 재일조선 부인들과 그 어린애들이었다. 엄마들은 모두 어린애를 업거나 손을 잡고 천천히 골목에서 상점가로 몰려나왔다”고 소개했다. 주목할 부분은 행진의 주체가 일본의 엄마들과 재일조선 부인들, 어린애들이었다는 점이다.

돌이키건대 식민지시절인데도 마쓰다는 당당하게 조선인 여학생을 사귀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인 여학생이 결혼한 후에도 그들 부부의 집을 방문해 서로 교류했다. 해방 직후에는 조선인 자택에 기거하면서 조선인과 함께 조선인 징용피해자의 진상규명에도 매진했다. 그 이후에도 거리낌 없이 조선인과 관계를 맺은 점을 의식하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조선 부인과 일본 엄마가 함께하는 데모에 참가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을 터.

데모행진의 양상은 어땠을까? 마쓰다는 “그 어머니들과 애들의 행진에는 활기나 속도감은 전혀 없었다. 어린애들의 보폭에 맞춰 잇달아 천천히 행진했다. 소수의 남성도 섞여 있었지만 누구도 명령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엄마들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을 만큼 같은 생각이 배어 있었다. 자본가가 돈을 벌기 위해 가격 인상을 노리고 바다에 버리려는 쌀이 있다면 우리들에게 무상으로 먹게 해달라…”는 외침이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턱 끈과 착검을 한 경관대’가 앞을 가로막은 뒤 오리나 닭을 쫓듯 어머니들을 해산시키려 했고, 일본과 조선의 엄마들이 어린애를 보호하며 다리의 난간에 몸을 기대거나 다리를 건너 몸을 피하는 상황 속에서 이뤄진 대모행렬이었다는 점. 곤봉을 휘두르며 어머니들을 공격하자 일본과 조선의 어머니들이 어린애들을 감싸 안은 채 몸을 피하는 장면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데모는 한일 여성들만의 투쟁에 머무르지 않았다. 마쓰다는 골목에서 회사에 맞서 투쟁 중이던 노동자들이 골목에서 나와 연대의 손을 흔들면서 격려도 해줬다는 사실도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동자들에게 경관들은 쫓아가서 발길질을 했다. 마쓰다는 그들이 또한 엄마들을 발길질로 해산시키려 했지만 몇 분 후에 다시 뭉쳐서 오시마 관청을 향했다고 적었다.

‘쌀 내놔라’ 운동은 ‘수일 후인 8월1일 밤’, ‘5열종대로 정연하게 줄은 선 노동자의 데모’로 확대됐다. 상점가에서 이를 막아선 가메이도 경찰대와 데모대가 격돌했다는 표현에서 그 격렬함을 엿볼 수 있다. 마쓰다 도키코는 이를 ‘반전데모였다’라고 강조했다.

이 기록은 경찰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지에서 한일 여성들과 노동자가 쌀 획득을 위해 연대한 실례다. 마쓰다는 그 데모행진에 직접 참가하면서 목격한 장면을 회고했다. 생존을 위한 데모행진이었다고 보면 그만이다. 하지만 평생 여성운동에 매진하며 조선인 권익향상에도 관심을 보인 작가의 체험기이므로 그 의의를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김정훈 <일본 간세이가쿠인대 문학박사, 주오대 정책문화종합연구소 객원연구원, 전남과학대 교수>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