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국가 통틀어 가장 넓은 면적을 보유한 러시아.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하나의 러시아’를 표방하며 중앙집권적인 리더쉽을 발휘한 결과, 가파른 경제성장세를 보여 미국과 지구촌을 양분했던 옛 명성을 회복하기 위한 힘찬 비상을 하고 있다. 본보는 내년 한·러수교 30주년을 맞아 대문호 푸쉬킨, 도스도예프스키를 배출하는 등 인문학을 비롯 과학기술 분야에서 세계 강국을 건설했던 러시아의 과거, 현재를 재조명하고 한전공대 등 국내 현안과의 협력 관계 모색, 러시아에서 흥행하고 있는 한류, 잘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에서 활동한 한국 독립운동가등 양 국간의 관계에 대해 시리즈로 심층 보도한다. /편집자 주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9 KPF 디플로마 [러시아전문가] 과정 참여 후 제작됐습니다.
IT, 바이오 등 스타트업 2천여개, 일자리 3만개 창출, 매출 1조3천억원, 특허 2천여개 보유.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우수인재들이 모스크바로 속속 모이고 있다. 러시아 최대 과학기술혁신단지 ‘스콜코보(Skolkovo)’가 이들의 전진기지다.

지난 2008-2009년 금융 위기 이후 러시아 정부는 국가 경제를 변화시키고 자원 기반에서 지식 기반 모델로 전환하는 과정을 마련했다. 이후 2010년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주도로 스콜코보는 러시아 전역의 기술 기업가를 지원하고 지적 잠재력을 개발하고 이행하기 위한 가장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는 사명으로 설립됐다.

설립 전만해도 과학기술분야 러시아 우수 인재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국외로 유출 행렬이 이어졌지만, 정부 주도로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 자국내 우수인재뿐만 아니라 해외 전문가까지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전 세계적인 기술 강국이었던 러시아가 인재의 엑소더스(탈출)을 막으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 지구촌 경제판도를 바꿀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

스콜코보는 모스크바 중심가에서 20㎞ 떨어진 오디쵸브스키 행정구 부지 380만㎡에 조성됐다. 또 모스크바시의 ‘신(新)모스크바’ 건설계획에 따라 약 400만㎡의 혁신도시 형태로 개발중이다.

스콜코보는 ‘미국 실리콘밸리’를 롤모델로 지어졌으며 설계 당시 MIT공대의 스타트업, 교수 운영 등 선진시스템을 벤치마킹해 현지에 맞게 각종 규제를 혁파,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고 있다. MIT는 ‘스타트업 공장’으로 불릴 만큼 재학생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기업의 투자를 바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창업 전문가들의 집합소다.

러시아 모스크바 중심가에서 20㎞ 떨어진 오디쵸브스키 행정구 부지 380만㎡에 조성된 스콜코보 전경.

스콜코보의 주가는 대도시 접근성, 다양한 세제혜택, 기업들의 투자 러시 등의 이유로 현재 상종가를 이어가고 있다.

전 세계에서 단일도시 중 최대 인구가 밀집한 모스크바와의 접근성이 우수한 인재와 인프라 활용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스콜코보는 스타트업 지원, 대학, 산업파트너, 벤처투자 등 4개 클러스터로 유기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전략적인 육성분야로 에너지, IT, 의료 바이오, 원자력, 우주과학기술 등 5개 분야가 운영중이다.

스콜코보를 지탱하는 요소는 스타트업, 투자자, 대학, 테크노파크, 도시 등을 꼽을 수 있다.

단지내 혁신을 주도하는 스타트업은 2천개. 일자리는 3만개, 매출은 696억원 루블(1조3천억원)에 달한다. 입주한 스타트업 업체들은 높은 수준의 테스트를 거쳐 기술을 전 세계적으로 상용화가 가능한 제품을 양산할 수 있을 만큼 실력을 검증받았다.

스콜코보가 측정한 자료에 따르면 혁신적인 성장 정책이 자원 의존도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콜코보는 첨단 기술 분야에서 3천개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2천개 이상의 특허를 달성했다. 스콜코보 주민들은 과학기술단지 활성화로 인해 지역경제가 살아나면서 2018년 69.6억 루블의 매출을 기록했다.

국내외 파트너사의 면모도 화려하다. 삼성, 지멘스, 인텔, IBM, MS, SAP 등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입주해있다.

이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신기술을 앞세워 지구촌 경제 판도를 바꾸기 위한 최상위 투자기업들이 스콜코보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기업의 입주 열기도 뜨겁다. 스콜코보는 삼성 인공지능(AI)센터, 분당서울대병원 스마트병원, 현대자동차 차량공유 스타트업 법인 등 대기업과 파트너쉽을 체결했다. 삼성과 LG는 스콜코보에 AI 전담 연구팀을 두고 있다. 지난 10월 러시아 전부는 AI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승인해 국내외 기업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가 첨단기술분야 세계최고 수준을 자랑해 선진기술을 개척하기 위한 인재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다.

스콜코보내 스타트업 업체는 우수한 신기술과 사업화를 할 수 있어야 입주가 가능하다. 사진은 스콜코보내 입주한 스타트업.

이는 대규모 투자자본을 유치해 초대형 과학기술클러스터가 활성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세계 굴지의 기업 유치에 일조하고 있다. 입주기업에 대한 파격적인 세제 혜택 등이 바로 그것.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대외 이미지 제고에 힘쓰고 있다.

우수한 인프라와 인재는 매력적인 투자처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 R&D센터 45개, 연구인력 7천명이 미래먹거리 개척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신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투자자로는 150여 투자자가 330억루블(6천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 벤처자본의 40%다. 투자를 위한 벤처스라는 자회사가 지난 2017년부터 가동되고 있다.

테크노파크에는 컨설팅센터, 사용자센터 33개, 정착 프로그램을 지원중이다.

96명의 직원이 테크노파크에 일하고 있으며 매년 일정액의 교부금을 제공받는다. 스콜코보 혁신 지원의 주요 수단은 보조금이 아닌 전문성, 매치 메이킹, R&D 인프라에 대한 접근성이다. 또 테크노파크에는 어드벤처랜드(Adventureland)라는 ‘커뮤니티’를 설립했다. 수백 개의 신생기업이 커뮤니티 행사에 참가했으며 일부는 자금도 지원받는다.

연구중심 과학기술대학을 표방한 스콜텍은 오픈 대학 캠퍼스, 국제과학고등학교로 구성돼 있다.

스콜코보는 과학기술단지 확대를 위한 혁신도시 건설에 매진하고 있다.

내년 재단설립 10주년을 맞아 다양한 포럼 등 특별행사가 진행된다. 노벨 주간이 조직되면서 물리, 화학, 의학, 경제분야에서 7-10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스콜코보로 초대된다.

설립된 지 10년 남짓에 불구하고 스콜코보의 성장 속도는 가파르다. 이 때문에 세계 여러나라의 벤치마킹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도 그 대상 중 한 곳이다. 국내 지방자치단체와의 기술교류도 활발하다.

스콜코보의 성공 노하우는 2년 후 전남 나주에 둥지를 트는 한국의 에너지특화공과대학인 한전공대에 전수된다.

오는 2022년 개교하는 한전공대 설립을 한전과 공동 추진중인 전남도의 스콜코보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에너지, 농업, 스타트업 등 육성분야에서 공통점이 많은 스콜코보가 롤모델이기 때문.

전남도와 한전, 스콜코보는 지난 9월 한전이 설립하는 한전공대(가칭)와 스콜코보 과학기술대(스콜텍·Skoltech)간 교류협력의향서를 체결했다. 각 기관은 산·학·연 클러스터 활성화를 위해 에너지, IT, 바이오 분야 연구·개발 및 창업, 정보 공유에 힘쓰기로 했다.

‘겨울왕국’으로 알려진 러시아의 밤은 어둡지만 밤낮없이 신기술을 발굴하는 스콜코보의 미래는 밝다.


“스타트업 입주 조건은 우수한 신기술·사업화”

율리아 국제협력 매니저
1만여 신청 기업 중 2천곳 만 입주…선정 기준 엄격
삼성, LG, 현대차 등 파트너십 통해 기술 교류 활발
“스콜코보의 경쟁력은 우수한 신기술을 갖춘 입주 기업 선정과 각종 세제혜택, 기업 기술교류 등 사업화할 수 있는 생태계 환경조성에 있다.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부분에서는 한국 기업과 긴밀한 기술협력을 이어갈 것이다”

율리아 스콜코보 국제협력 프로젝트 매니저는 스콜코보의 존재 목적을 “자원 의존도가 높은 러시아 GDP구조를 과학기술산업 중심으로 바꾸는 데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 2010년 설립된 스콜코보는 스타트업, 스콜텍 대학, 산업파트너, 벤처 등 4개 클러스터로 구성돼 있다.

율리아 매니저는 “스콜코보내 스타트업은 2천개 정도 되는데 입주 신청 기업만 해도 1만여개가 된다”면서 “결국 5개 신청 기업 중 한 곳만 입주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상주기업 선발 과정이 철저하고 엄격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율리아 매니저는 “상주기업 선발 과정이 있는데 모든 기업이 참가신청서를 온라인으로 접수할 수 있고 심사를 거친다. 심사기준으로는 얼마나 신기술인가 라는 점, 인적 능력, 나아가 회사 기술이 과연 사업화할 수 있는 기업인지를 평가한다”고 밝혔다.

선정된 기업들은 각종 세제 혜택을 받고 있다. 상주기업에는 부가세(20%)와 소득세도 면제해준다. 물건이나 장비 해외 반입시 관세도 환급해주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투자자를 구할 수 있는 플랫폼이나 미래 기업 고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들이 제공된다. IP센터의 경우 상주기업 지적 재산을 관리해주고 있다. 센터를 통해 개발된 기술을 등록할 수 있고 다양한 연구랩이 있어 임대할 수 있다.

산업파트너는 약 300여개가 있다. 그 중 100개 정도가 계약을 체결해 확실한 파트너십을 가져가고 있다. 국내든 해외든 협력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하나는 연구실 오픈, 둘째는 단지 내 건물을 세울 수도 있다. 해외 산업파트너들은 스콜코보 상주기업이 개발 중인 기술에 대한 정보가 제공된다. 기술 개발을 소개하고 연결시키는 작업도 하고 있다.

한국 파트너 중에서는 삼성, LG가 있고 현대차 러시아 법인에서 파트너십을 맺고 모빌리티맵을 설립키로 했다.

그는 “스콜코보는 업무뿐 아니라 생활하기도 좋은 환경을 조성한 상태다. 오피스나 연구단지뿐 아니라 각종 생활시설과 교육시설이 있다. 무엇보다 모스크바 국제의료클러스터를 개발하고 있다”면서 “이는 스콜코보 재단과 모스크바 시정부가 같이 협력하는 프로젝트인데 의료종합시설을 설립할 예정이다”면서 “첫 번째 의료 시설이 세워졌는데 이스라엘 기업과 협력하고 있다. 현재 분당서울대병원과 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하는데 두 번째 시설이 완공되면 분당서울대병원이 운영을 맡을 예정이다”고 말했다.

율리아 매니저는 “벤처투자 부문에서는 2017년부터 스콜코보 벤처스라는 자회사가 가동되고 있고 3개 펀드가 운영되고 있다. 스타트업 투자 펀드가 운영되고 있다. 4개 부문이 잘 소통하고 운영될 수 있도록 이노베이션 시티로 경영하고 있다”면서 “상주기업을 위한 서비스시설도 운영 중이다. 스콜코보 IP센터, 벤처스 같은 계열사 통해 지적자산 권리도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과에 대해서는 “사실 수입 대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어려운 숙제로 남아 있다. 빠르게 진행되기는 어렵다고 평가한다. 특히 사업화 과정까지 걸리는 시간, 대기업이 자본을 갖고 제조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최근 대기업들이 개발해 국내 생산 들어가는 기술들을 종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수입 대체 부분에 있어 분야별로 다른 수치를 보이고 있다. 농업에서는 이미 목표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이로 인해 농업 분야에서는 수입대체화가 완전히 이뤄졌고 덩달아 수출까지 늘어난 상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물론 고도 기술을 요하는 분야에서는 아직도 수입 대체가 많이 어렵다. 그 중에서는 마이크로전자 분야를 중요하게 꼽을 수 있는 데 한국기업과 좀더 기술협력을 통해 어려운 현실을 극복해 나갈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모스크바=임채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