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발견, 한국 고고학 역사를 바꾸다

1971년, 그해 한국 고고학계의 큰 변화를 준 두 가지 큰 사건이 일어났다. 공주 무령왕릉이 발견돼 신문 지상을 뜨겁게 달궜고, 또 다시 청동국보가 발견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시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에 살던 구재천 노인은 연일 내린 비로 창고에 물을 고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삽을 들고 배수로 작업을 했다. 그러던 중 삽 끝에 금속품이 부딪혀 이상한 소리를 듣고 땅을 계속 파 내려가자 청동으로 만든 물건 11점이 나왔다. 구재천은 이 물건을 집에 두고 있다가 어느 날 지나가는 엿장수에게 한 움큼 엿을 받고 고철로 팔았다.

이 물건은 이를 이상하게 여긴 엿장수는 이 고철을 광주에 있는 전남도청 문화공보실 공무원에게 넘기고 이름도 남기지 않고 홀연히 가 버렸다. 엿장수의 식견으로 운명이 바뀐 것이다. 4개월 후 문화공보실에 들린 조유전 전 문화재청 학예연구사는 이 물건이 엄청난 문화재임을 직감하고 발견된 장소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유물이 발견된 곳은 청동기시대 무덤으로 밝혀지고, 짝을 이룬 청동유물의 확실한 출토지를 알게 됐다.

이것은 일제강점기부터 한반도에 청동기시대가 존재하지 않다는 오류를 수정하는 근거가 됐고, 청동유물의 정확한 출토지를 알 수 없었던 고고학계에 커다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11점에 달하는 다양한 청동유물이 함께 발견되고 출토지역을 알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1972년에 국보 제 143호로 지정됐다.

청동거울 일러스트.

▶이어진 인연, 청동국보 비밀을 풀다

2008년 국립광주박물관은 국보유물 출토지에 대한 정확한 위치와 규모를 밝혀내기 위해 유적 재조사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청동검 2점을 찾아내 세상을 놀라게 했으며,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정보자료를 확보했다.

대곡리 유적은 330×280㎝의 규모로 무덤자리를 판 후, 다시 널을 넣기 위해 길이 233㎝, 너비 98㎝, 깊이 70㎝의 규모의 구덩이를 판 2단 구조의 무덤이었다. 널을 안치한 후에는 다시 돌로 덮은 이른바 적석목관묘(積石木棺墓)였다. 또한 관 아래에 부장품을 넣었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시기의 유적에서 아직 확인되지 않는 새로운 부장풍습이었다.

한편, 조사단은 조그마한 정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유구의 바닥부분은 물론 진흙과 함께 수습해 보존과학실에 정밀조사를 의뢰했다. 보조과학실은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정보를 확인했다. 먼저 통나무관의 재료는 세포 요소의 특징과 조직학적 특성을 밝히는 조사를 통해 굴피나무로 밝혀졌다. 그리고 청동검의 날 부분에서 나무칼집을 확인했으며, 청동검의 끝부분에서 검은 칠이 확인됐다. 이 칠은 청동검의 날과 손잡이를 결합시키는 접착제 사용됐는데, 청동기시대부터 이미 칠을 사용했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였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제사장 실체 확인

우리는 세상이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 가운데 하늘과 땅의 신을 연결해 주는 사람을 제사장으로 부른다. 무당을 뜻하는 한자 ‘무’(巫)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사람을 형상화 한 것이다. 신령스런 ‘영’(靈)은 무당이 입으로 주문을 외어 비를 내리게 하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다.

선사시대 제사장은 신과 사람을 어떻게 통하게 했을까? 제사장은 독특한 복장을 하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사람들을 신비한 세계로 이끈다. 요즘도 제사장인 샤먼이 머리에 새의 깃털을 꽂고, 거울을 가슴 위에 매달고, 옷에 작은 방울을 달고, 계속 춤을 추며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그 현혹의 중심은 빛과 소리이며, 이러한 전통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제사장 신물(神物), 칼 그리고 거울과 방울

선사시대에도 신과 하늘을 연결해주는 실체가 바로 청동유물이다. 인간이 처음 사용한 금속은 자연 상태의 구리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에 주석이나 아연 납 등을 섞어 합금의 단단함과 구리의 넓게 펴지는 성질을 이용해 간단한 도구나 장식품을 만들었다.

구리가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금속인 된 이유는 자연 상태의 동이 존재하고, 구리는 펴지는 성질이 좋고, 800도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도 잘 녹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구리 광산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청동기는 대부분 상징적으로 권위를 나타내는 무기나 거울 등 특정한 신분을 나타내는 도구로 제작됐다. 그런데 정교하고 다양한 문양이 있는 청동기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광물을 녹여서 부을 수 있는 거푸집과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러한 이유로 분업과 함께 신분의 계층화가 나타나게 됐다. 그래서 이전 시대의 석기를 사용하던 사회를 평등사회로 본다면, 청동기를 사용하던 사회는 불평등사회로 볼 수 있다.

또한 청동기의 사용은 이전 시대의 석기나 골각기·나무연장 등의 단순한 물리적인 변형으로 만들어진 것과 비교한다면 화학적 작용을 응용해 광물을 녹여 합금한 도구라는 점에서 인류역사의 큰 진보라 하겠다.

이러한 청동제품 가운데 제사장의 권위를 나타내는 물건으로 추정되는 것이 바로 청동검, 그리고 청동거울과 청동방울이다.

청동검은 인간을 위협하던 간돌검보다 위력적 무기로 강한 힘을 상징한다. 청동거울은 빛의 반사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하늘의 조화를 이루는 매혹의 물건이었다. 오목한 거울 면은 사람이나 형체를 작게 만들고, 볼록한 면은 대상을 크게 하는 등 신비로운 환영을 연출하며 사람을 매혹시킨다. 청동거울에는 천둥과 번개 등의 자연현상과 빛의 발산이 표현되는 상징적 무늬가 베풀어졌다. 원은 하늘을 뜻하고, 그 원이 여러 개로 퍼지면, 그것은 빛의 확산이 된다. 원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시간의 변화이며, 더 나아가 4방향의 원 무늬와 십자무늬 등은 사계절의 흐름을 나타낸다. 빗금은 비를 뜻하고, 지그재그 무늬는 번개를 뜻한다. 자연의 현상을 문양으로 디자인한 선사인들의 미술적 감각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청동방울은 내부에 혀가 달려 소리를 내는 청동탁과, 내부에 구슬모양의 물건으로 소리를 내는 청동방울이 있다. 청동기시대 방울은 형태에 따라 간두령(竿頭鈴), 쌍두령(雙頭鈴), 팔주령(八柱鈴) 등으로 나눈다.

간두령은 지팡이 머리 위에 하나의 방울이 있는 수직 구조로, 방울 소리가 위에서 둥글게 돌아가는 형태의 문양이 배치된다. 쌍두령은 가지기둥의 양쪽 머리에 2개의 방울이 있는 수평의 구조로, 소리의 진동을 나타내는 문양 역시 가로 방형으로 진행된다. 반면에 팔주령은 몸체에서 8개의 기둥가지가 뻗어 나가고 그 끝에 방울이 있는 구조로 형태 역시 수평이 아닌 굴곡진 반원 모양이다. 흔히 팔은 평면의 동서남북과 입체의 동서남북이 모인 모든 방향 즉 입체를 상징하며,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풍요를 의미한다. 또한 팔주령의 가운에 거대한 햇살의 움직임을 표현한 하늘의 중심 태양이 있고, 8개의 곁가지에는 새로운 생명의 싹을 이미지화 해 시선을 끌고 있다. 수직과 수평 그리고 입체 구조가 모인 다양한 방울은 하나의 소리를 넘어 음이 어우러지는 음률의 조화를 만드는 매개체로 신비감이 극대화된다.

▶선사인의 울림, 감동의 여운으로 남다

제사장의 의식도구는 초기의 물리적 위협을 나타내는 칼에서,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하는 빛의 발산으로 발전하며, 분위기의 절정을 고조시키는 소리의 울림으로 확대돼 갔다.

윤종균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관>

아득한 그 옛날, 선사인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예술품을 만들었을까? 자와 컴퍼스 같은 제도 도구가 없던 시절, 무늬는 어떻게 그렸고, 1㎝도 안 되는 공간에 어떻게 27줄이나 되는 선을 그렸을까? 그들의 깐깐하고 섬세한 디자인 감각은 컴퓨터 제도를 하는 우리의 능력을 부끄럽게 한다.

청동 거울은 거푸집에 세밀한 문양을 새겨 청동을 부어 만드는데, 각 문양의 굵기가 머리카락처럼 가늘어 요즘에도 같은 방법으로 만들 수 없을 만큼 청동제작 기술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나노 기술의 환경 속에 사는 우리가 과연 쇳물을 녹여 이처럼 가는 무늬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늘과 자연을 경외하던 선사인, 그들은 우리에게 계속되는 호기심과 궁금함을 불러일으키며, 우리와 또 다른 소통을 하고자 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