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 화가’였던 석현 박은용(1944-2008) 선생의 삶과 예술세계를 후배 화가인 석주 박종석 작가가 글과 그림이 담긴 평전으로 출간해 눈길을 끈다.

광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화가인 석주 박종석 작가는 최근 석현 박은용 선생의 평전인 ‘검은 고독-푸른 영혼’(조인출판사)을 펴냈다. 석현 박은용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11년 만이다.

호남정신을 오롯이 담고 있는 석현 박은용 선생의 작품들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광주시립미술관에서 특별전으로 다루면서 지역 미술계에서 다시금 회자된 바 있다.

석현 박은용 선생은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의 화가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형, 친척과 이웃이 학살당해야만 했고, 참혹한 가매장 현장을 목도하면서 오랜 기간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었다. 정신적 불안 증세와 가정불화, 경제적 빈곤이 맞물려 그의 삶은 날로 피폐해져 갔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에게 유일한 탈출구가 돼 줬던 것은 바로 그림. 남종화의 산실인 진도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부터 그림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오지호부터 소정 변관식, 최영림, 안상철, 장리석, 유촌 김화경, 소송 김정현, 천경자에 이르기까지 좋은 스승들을 둬 기초를 튼튼히 할 수 있었다.

특히 그는 스승의 화풍을 받아 옮기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업세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농경사회에서 흔히 봐 온 풍경들을 화폭에 옮기고, 노동과 농촌, 가축,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대동세상’을 독창적인 예술세계로 풀어내 왔다.

석현 박은용 作 ‘들꽃’

석현 선생은 그 자신이 농민들과 똑같이 숨 쉬고 생활하면서 체득한 화제(畵題)를 고스란히 화폭에 옮김으로써 서정적 화풍을 일궈냈다. ‘모내기’, ‘당산나무’, ‘고인돌’, ‘시골장터’, ‘남도의 가을날’ 등 우리가 시골에서 접했던 한가한 풍경과 풍습들을 꾸밈없고 정감 있게 담아내고 있다.

불행한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살아야 했던 고독한 예술가의 삶은 후배작가 박종석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고, 그는 마침내 선배 작가의 삶을 정리한 책을 내게 됐다.

석주 박종석 작가는 “1993년 대학원 졸업 이후부터 현재까지 남도서화의 정체성 탐구와 수묵화 발전에 대한 전망을 모색하기 위해 사호 송수면, 근원 구철우, 석현 박은용, 염재 송태회 등 잊혀져가는 작가들의 작품을 선정하고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데 힘쓰고 있다”며 “최근 전통수묵화를 심도 있게 구사하는 화가들이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박은용의 자료 모음집이 남종화의 사의정신(寫意精神)을 새롭게 고취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인식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검은 고독-푸른 영혼’ 평전 출간을 기념해 석주 박종석 작가는 20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광주 동구 소태동 갤러리생각상자에서 개인전을 연다. 20일 오후 4시 전시 개막행사와 출판기념회를 연다. 전시에서는 석주 박종석 작가가 석현 박은용 선생의 일대기를 담은 20m 크기의 대작 ‘비가(悲歌)! 바람이 전하는 말’을 만나볼 수 있어 관심을 모은다./정겨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