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청자와 같이 아름답고 단단한 도자기를 제작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우리나라뿐이었다. 고려청자는 일대 혁신이라 할 수 있는 신소재 기술이었으며, 새로운 문화의 시대를 열었다. 특히, ‘고려청자’는 흙으로 빚었지만, 광택과 색감이 아름다워 도자기의 종주국인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져 ‘고려비색이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는 품평을 받았고, 송나라 황실 청자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최고급의 고려청자는 위세품으로 고려인들 중에서도 개성에 거주하는 최상위 계층이었던 왕실과 귀족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특별한 물건이었다. 여기에서는 고려청자에 보이는 다양한 도자기 중에서도 지금은 이름과 기능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특별함을 담은 청자를 소개하려고 한다.

▶푸른색의 사각형 청자

윗면에 단을 두고 측면은 곡선으로 성형한 사각형의 청자는 청자방형대(靑磁方形臺)라고 부른다. 이 네모난 받침대는 세부적으로는 정사각형의 모서리 부분을 살짝 파내고 갈라지게 만들어 꽃잎처럼 장식했고, 상면은 중심부를 깊게 만들어 안쪽이 오목하다. 단이 진 윗부분과 측면에는 유약이 고여 더 푸른색을 띠며, 더욱더 아름다운 색을 낸다. 청자에서는 이런 색을 가진 최고급 도자기를 ‘비색청자’(翡色靑磁)라고 부른다. 현대까지 사용되고 있는 대접이나 접시 또는 찻잔과도 다르고 독특하게 생긴 청자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이 받침대의 또 다른 이름은 투합(套盒)이라고 부르는데, 거기에 쓰임이 담겨 있다.

‘청자투합’ 국립광주박물관 소장.

▶투합(套盒)이란…

오늘날 서너 개의 그릇을 층층이 포갤 수 있는 음식 그릇인 찬합(饌盒)과 같은 용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음식을 담을 수 있는 구조이면서 여러 개씩 세트로 포갤 수 있다는 의미에서 중국 및 일본 등지에서 일반적으로 ‘투합’(套盒)이라고 부르고 있다. 중국의 투합은 금은기와 같은 금속이나 칠기, 도자기 등으로 제작돼 오랜 기간 동안 사용됐고, 그 형태가 원형, 방형, 오방형, 육방형 등 다양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고려청자로 제작된 예만 전하고 있어 매우 특별하고 독특한 청자라고 할 수 있다.

▶투합의 용도

중국 벽화를 통해 동일한 형태의 그릇 여러 개를 포개어 사용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의례(儀禮)나 다례(茶禮)를 진행할 때 다과를 담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투합은 중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왕릉을 비롯한 무덤과 제사유적 등에서 확인돼 용도 면에서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상면과 측면의 경계 부분의 모서리를 깎아 드림부를 마련하였는데, 턱이 있어 같은 기물을 포갤 때 안정적으로 쌓을 수 있다.

실제로 금속기나 칠기가 아닌 도자기를 포개어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국립광주박물관에는 형태와 크기가 유사한 투합이 2점이나 소장돼 있어 흥미를 끈다.

‘청자투합편’ 강진 사당리 가마터 출토, 국립광주박물관 소장.

▶인종 장릉 출토품 고려청자투합

국내에 있는 고려청자 소비 유적 및 생산 유적에서 투합이 발견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

투합이 출토된 유적으로는 경기도 장단군 장도면의 고려 인종(仁宗·재위 1122-1146)의 장릉(長陵)이 대표적이다.

도굴 후 수습품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인종의 장릉에서 ‘황통 6년’(皇統六年, 1146) 명문이 있는 인종의 시책(諡冊)과 함께 고려청자가 전해지고 있다. 인종 장릉 출토 고려청자는 ‘청자참외모양병’, ‘청자잔’, ‘청자국화모양합’, ‘청자투합’ 등으로 모두 단아한 기형(器形)과 우아한 유색이 고려청자 최성기의 작품임을 확인시켜 주며, 이들 청자는 12세기 대표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인종 장릉 투합은 1점만 소개되고 있으나, 투합의 특징으로 보아 본래는 여러 점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된 2점의 청자투합은 고려고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특히, 눈으로 보기에는 인종 장릉 출토품과 형태와 크기가 거의 유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크기와 제작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인종 장릉 출토품 일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투합은 어디서 만들어졌을까

이러한 청자투합은 일반 생활 유적에서 거의 발견된 바 없고, 생산지에서도 매우 보기 드문 종류의 청자다.

앞서 설명한 인종 장릉을 제외하면 영암의 월출산 산천에 제사를 올렸던 제사터에서 확인됐다. 이러한 최고급의 특별한 청자는 발굴을 통해 강진 사당리 7호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결국, 전남 강진의 최고급 왕실용 청자를 제작하던 사당리 가마터에서 제작돼 국가 관련 제사를 지내던 유적에서 사용되거나, 왕릉급 무덤에 부장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청자투합은 고려초기와 후기에는 제작된 예가 확인되지 않아, 고려 중기에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다양한 고려청자 중에서 청자투합은 제한적인 용도로 사용됐을 뿐만 아니라 제작시기가 매우 짧았던 것으로 보인다.

▶강진 사당리 가마, 고려 왕실 청자 제작

최명지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사>

국립광주박물관에는 고려시대 왕실을 위해 제작됐던 다양한 최고급 비색청자와 이들 청자를 제작하고 공급했던 강진 사당리 가마터의 발굴품이 소장돼 있다.

고려시대 왕실이 자리 잡은 개성에서 멀리 떨어진 강진지역의 흙과 손기술로 제작돼 수도로 이동돼 사용됐을 이 아름다운 비색청자들은 천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아름다운 유색과 광택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강진 일대 가마터의 출토품들은 폐기품으로 버려진 것들이지만, 현재까지도 잘 알려지지 않은 청자들이 실제로 제작됐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산이다.

국립광주박물관에서는 광주·전남 지역의 흙으로 빚어진 도자기들의 아름다움과 문화적인 가치를 알릴 수 있는 좋은 전시를 앞으로 많이 진행할 예정이다. 앞으로 많은 관심과 애정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