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독립서점에는 이유가 있다. 저마다의 확고한 방향성과 특색을 갖추고 운영 중이어서다. 그 중에서도 일반적인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것을 넘어, 특정한 소재의 책만을 큐레이션하는, 이른바 ‘이색서점’, ‘장르 책방’이라고 부를 만한 서점들도 다수 있다. 음악 관련 서적을 취급하는 책방과, 자연과학 전문 서적을 만날 수 있는 책방, 시집만을 다루는 책방 등 세 곳의 서점을 방문한 후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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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남동 음악·서점 ‘라이너노트’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핫플레이스’가 한데 모여 있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음악서점 ‘라이너노트’(Liner note·서울 마포구 성미산로29길 4)에 다녀왔다. 지하철을 타고 홍대입구역에서 녹지 인도로 연결된 ‘연트럴파크’(연남동과 센트럴파크의 합성어)를 따라 15분쯤 걸으니 도착했다.

밖에서 봤을 땐 서점인지 카페인지 모를, 작은 입구를 따라 들어서니 책방이 나온다. 아담한 규모의 책방에는 피아노와 기타, 각종 스피커 등이 이곳을 ‘음악서점’이라고 알려준다. 여기엔 나름의 규칙에 따라 분류된 책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서점 ‘라이너노트’는 음악 관련 문화콘텐츠를 기획, 제작, 유통하는 기획사인 ‘페이지터너’가 2016년 문을 열었다. ‘음악서점’으로선 국내 첫 시도로 눈길을 끈다. ‘라이너노트’란 본래 ‘음반에 따라 나오는 음악과 연주자에 대한 해설지’를 의미하는 말이다. ‘음악서점’이라는 이곳의 특징을 잘 대변해 주고 있는 듯하다.

이곳은 ‘독립서점’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굳이 ‘독립출판물’ 만을 다루지 않는다. ‘음악’이라는 큰 틀 아래 책을 큐레이션 하기 때문에 주로 대형출판사와 거래를 한다. 음악가가 쓴 책이나 음악가 평전, 음악 주제의 산문·소설 등의 책을 비롯해 다양한 음반들도 함께 소개한다.

음악이 콘텐츠의 중심인 서점답게 이곳에선 매월 정기적으로 ‘음감회’(음악감상회)가 열린다. 또한 음반 해설지 쓰는 법, 작사 수업 등도 이뤄진다. 관심은 있지만 쉽게 배울 곳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최적의 장소다.

박미리새 페이지터너 이사는 “대형서점에서 음악 관련 책은 귀퉁이에 꽂혀있고,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등 늘 홀대받는 것이 아쉬웠다”며 “좋은 책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 분야의 책을 소개하는 것이 우리 서점이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이사는 “문화는 마치 생물과도 같아서 계속 고민하고 활발하게 움직일수록 그 힘이 점점 커진다”며 “책을 파는 것보다 일반인들에게 ‘음악사랑방’으로서의 문화를 일으키다 보면 서점도 함께 잘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산 망미동 자연과학책방 ‘동주’

아름다운 항구 도시 부산에서도 두 곳의 이색서점을 다녀왔다.

먼저 최근 수영구 망미동 망미번영로 일대의 감성 카페와 식당이 즐비한 ‘망미단길’ 인근에 자리한 자연과학책방 ‘동주’(부산 수영구 과정로15번길 8-1)다. 자연과학서적을 다루는 책방으로는 ‘국내 1호’ 서점이다.

책방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동·식물들의 이야기나 다윈의 진화론, 생물 등 ‘과학’을 주 테마로 운영되며, 그밖에도 이 교수와 동명인 윤동주 시인의 시집들, 고양이, 과학 관련 독립출판물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이곳은 국책연구원 출신인 이동주 신라대 생물과학과 겸임교수가 대표로 있다. 이 교수가 활동하는 숲 해설가 모임 ‘숲올레’ 회원들과 출자해 지난해 과학의날(4월21) 문을 열었다. 일반인들이 어렵게 느끼는 ‘자연과학’에 대해 보다 가깝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책방을 시작했다. 책방이 오픈한 지 갓 1년 정도 됐지만, 입소문을 타고 4-5세 어린이부터 60-7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고객들이 찾아온단다.

책방 ‘동주’의 매력은 바로 서가의 절반 이상이 이 곳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책들이라는 점이다. 공룡이나 꽃, 벌레 등을 집중적으로 다룬 순수과학 교양서적부터, 이 교수가 영국 대영박물관 다윈센터에서 근무하던 시절 런던의 중고서점에서 구해 온 100년 이상 된 책 등이 구비돼 있다.

특히 ‘동주’는 하루의 영업이 끝나는 오후 7시께부터 이 교수의 연구실로 이용된다. 책방 한켠에는 1천만원 상당의 현미경이 자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또한 이곳에서는 자연과학 워크숍이나 강연, 소규모 스터디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특정 과학자를 선정해 조명하기도 하고, 4월 과학의 달, 5월22일 국제생물다양성의날 등 과학과 관련된 날에는 그날 그날 테마에 맞게 행사를 진행한다.

이동주 교수는 “수만권의 책이 있는 대형서점에 가도 ‘자연과학’ 코너는 찾아볼 수 없어서 늘 아쉬웠다”며 “동네 작은 책방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을 쉽게 접근하고 알 수 있었으면 한다. ‘동주’에 오면 현대인들에게 힐링을 전해줄 수 있는 과학책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보수동 ‘낭독서점詩집’

그런가 하면, ‘부산’과 ‘책’을 떠올리면 빼놓을 수 없는 곳,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도 이색서점이 있다. 바로 시집을 테마로 다루는 ‘낭독서점시(詩)집’(부산 중구 책방골목길 8-1)이다.

헌책들이 즐비한 골목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고양이가 지키고 있는 책방을 만날 수 있다. ‘낭독서점시집’이라는 문패 아래 좁은 입구로 들어가니 각종 책이 수북하게 쌓인 새로운 공간이 나온다. 여타 보수동 책방골목의 서점에서 볼 수 있는 비슷한 모습이다.

형태는 비슷할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조금 특별한 의미로 운영되고 있다.

어린 학생들부터 독거노인, 장애인, 노숙자 등 사회배려층이 외모나 복장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학살롱’으로서의 가치를 우선시한다. 또한 이곳에서 다루는 책들은 민주화나 노동 분야에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했던 열사들을 기리는 문학이 주를 이룬다. 제주 4·3이나 광주 5·18민주화운동, 6·10만세운동 등 특정 항쟁기념일에는 관련된 시나 글을 낭독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곳은 ‘신춘문예 3관왕’으로 알려진 이민아 시인이 2015년 문을 연 공간이다. 낭독회도 하고 시인이 직접 머무르며 독서를 하고 시를 쓴다. 제본공방을 서점 안에 두고 있어, 오래된 책을 고치거나 누구나 자신의 자서전을 수제 제본해 만드는 공간을 갖추고 있다. 작가를 초청해 독자와의 대화 시간을 마련하기도 하고, 시즌별 마을 축제에 참여해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도 한다.

2010년부터 3년여간 부경대에서 입학사정관으로 일했던 이 시인은 입학사정관제로 들어온 학생들을 사후관리하는 업무를 맡아 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독서멘토링 프로그램 ‘블루머그’(Blue mug) 클럽을 열고, 책을 매개체로 담론을 형성하고 활동하면서 인문학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절감했고, 그 결과로 ‘낭독서점시집’을 오픈했다. 사회 전 분야로 인문학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알리고 싶어서다.

이민아 시인은 “입학사정관 시절 독서클럽을 통해 자퇴했던 학생들이 다시 학교로돌아오는 등 독서와 인문학의 가능성을 봤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고 사회 속 유대관계를 형성하게 한다”며 “책방 안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들어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지식공유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부산=정겨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