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밀레의 전시는 단연 최고였다. 50살 넘어 열린 회고전이었다. 이듬해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까지 수여받았다. 27년 전 수차례 살롱에서 낙방하던 화가 밀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전원파’라 불리는 아류도 등장하며 밀레의 그림을 추종하는 화가들은 넘쳐났다. 하지만 밀레의 그림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오로지 밀레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그림들이었다. 농부를 미화하지도 않고 노동을 찬양하지도 않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려낸 밀레의 그림들. 그들 삶의 진정한 의미를 그려냄은 쉬이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투박하고도 묵직한 힘은 밀레에게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몇 년 후 1874년에는 파리 팡테옹(파리의 핵심적인 신고전주의 건축물)을 장식할 성 주느비에브의 일생을 다룬 주제 벽화를 주문 받았다. 하지만 악화된 건강상태로는 그림을 진행하기가 무리였다. 병이 시달리던 중 1875년 1월3일 교회에서 아내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지만, 애석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은 1월20일 밀레는 아내와 영영 이별하게 된다.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1845년, 힘겹고도 어려운 긴 시기를 지나 명성을 얻고 훈장을 받으며 화가로서 영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지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삶의 종착역에 다다랐다.

바르비종이 속한 샤이 시의 묘지에 먼저 세상을 떠났던 바르비종파 동료화가인 테오도르 루소 옆 나란히 밀레는 잠들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세상과 끝없는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사후 100년이 되는 1975-1976년에는 파리와 런던에서, 1984년에는 보스턴에서는 밀레의 회고전이 열렸다. 세기를 넘어 밀레의 그림은 사람들의 마음에 숨쉬고 있는 것이다.

농촌과 농부, 그리고 정직한 노동. 밀레의 예술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주제이다. 그렇다고 밀레가 고흐나 고갱처럼 독학을 한 것은 아니다. 밀레는 정식 교육을 받았다.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농부의 삶을 곁에서 항상 봐왔다. 라틴어, 근대문학 등을 배우고, 성인들의 이야기에 감명 받아 종교적인 장면의 데생들을 즐겨 그리기도 했다. 아들의 미술에 대한 재능을 인정한 아버지는 밀레에게 정식 교육을 받게 했다. 초상화가 폴 뒤무셸(Paul Dumouchel)에게 배우기 시작해 파리에까지 진출하며 당시 미술교육의 정석 코스였던 에꼴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에서 수학하게 됐다. 타고난 재능과 성실함은 두말할 것 없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로마상(당시 미술 권위 최고상)도 욕심냈지만 실패하고, 파리 살롱에 제출했던 작품마저도 수차례 거절당했다. 유일하게 대중들에게 작품을 알릴 수 있는 살롱전에서 번번이 낙선했던 것이다.

‘빵굽는 여인’ 1854

불확실한 미래와 불안정한 경제사정까지 밀레 홀로 감당해 나가야할 무게는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수차례 낙선 끝 1840년 초상화 한 점이 당선되고, 이에 힘입어 밀레는 초상화가로 본격적인 화가로의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초상화는 지역출신 화가가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고전적이지만 인물의 특징과 성격이 잘 살아나는 그만의 초상화를 뚝심 있게 그려갔다. 정식으로 초상화가로 개업하고 결혼도 하게 됐다. 폴린 비르지니 오노(Pauline-Virginie on o)라는 여인과 결혼했으나 곤궁한 화가의 삶으로 현실을 버텨내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간판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며 겨우 삶을 지속했으나 파리의 살롱전에서 또 작품 전시를 거부당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인 폴린이 결핵으로 사망했다. 그림과 공존할 수 없었던 ‘돈’은 밀레의 소소한 행복마저도 벼랑 끝으로 밀어냈다.

몇 해가 지나고 카페 여종업원이었던 카트린 르메르(Catherine Lemaire)와 두 번째 결혼을 원했지만 밀레의 가족들에게 그녀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밀레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고향을 찾지 않고 그녀와 살며 아홉 명의 자녀를 키웠다.

힘겨운 삶에 밀레를 따라다니는 것은 화려한 예술이 아닌 가난과 질병이 먼저였다. 밀레는 그녀와 함께 새로운 삶을 위해 1849년 바르비종으로 향했다. 파리 근처 퐁텐블로 숲가의 작은 마을이었던 바르비종에는 이미 테오도르 루소와 같은 화가들이 많이들 모여들어 자연풍경을 그리는 화파가 형성된 곳이었다.

바르비종은 밀레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줬다. 알프레드 상시에(Alfred Sensier)라는 후원자(이자 공무원)를 만나게 되고 그는 밀레의 그림을 파는 화상 역할까지도 수행했다. 그리고 훗날 상시에와 밀레가 주고받은 수백 통의 편지는 ‘장 프랑수아 밀레의 삶과 작품’이라는 전기를 탄생케 했다. 덕분에 훗날 고흐, 고갱과 같은 후배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파리 근처 퐁텐블로 숲가의 작은 마을인 바르비종, 1830년대 화가들이 대거 모여들어 자연 풍경을 그리는 바르비종 화파(Barbizon School)에 늦게 합류한 밀레였지만, 바르비종을 대표하는 화가는 단연 밀레를 꼽는다. 그 곳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밀레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생계를 위해 그리던 초상화가 아닌 자신에게 근원적 풍경과도 같았던 농촌의 모습들을 본격적으로 그려가기 시작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쫓는 전원풍경이 아닌 농촌 그대로의 모습은 밀레의 그림에서 생생하게 살아났다. ‘씨 뿌리는 사람’(1850), ‘이삭줍기’(1857), ‘만종’(1859)등 주요한 작품들이 그 곳에서 그려졌다. 밀레는 농촌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과 함께 농촌 사회의 현실도 화폭에 담았다. 밀레를 사실주의(Realism) 화가라 칭하는 것도 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삭줍기’(1857)는 언뜻 보면 그저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랄 수 있지만, 이 그림은 당시 프랑스 사회의 계급을 철저하게 드러내고 있다. 전면에 그려진 세 여인의 뒤로 흐릿하게 그려진 사람들, 바로 지배계층이다. 진짜 곡식은 다 수확되고, 남겨진 이삭을 줍는 농촌의 하층계급, 그리고 이들을 감시하는 자. 아름다운 풍경 이면에 그려진 사회적 진실은 당시 파리 화단의 논쟁거리였다.

앞서 1850년 그려진 ‘씨 뿌리는 사람’(1850)은 보수적인 비평가와 진보적 비평가 양쪽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귀족도 아닌 평범한 농부를 전면으로 내세운 거침없는 행보는 예술이 시대를 그려내는 방식의 전환을 이끌었다.

정치적 목적도 여타의 목적도 없이 그려진 그림이었지만, 밀레는 이처럼 가장 진솔한 방법으로 그가 살아가는 사회를 드러내고 있었다. 영국에서 불어 온 산업혁명의 바람, 대량생산으로 외면돼 가는 농촌의 삶, 여전히 가난하기만 했던 농부들, 그러한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그려냈기에 사회주의자라고 정치적으로 몰아세워지기도 했다. 허나 밀레는 아름답고도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를 그려갔다.

문희영 <예술공간 집 관장>

돈과 타협하지 않은 그림의 의지는 그를 영예롭게 되살렸으며, 현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까지 움켜쥐게 했다.

“고백하건대, 만약 당신이 나를 사회주의자라고 한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진실로 말하자면, 농부는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네. 나 역시 농부이고 나를 가장 감동시키는 것은 바로 ‘인간’이니까.”

밀레가 바라본 인간, 그리고 예술과 돈의 경계에서 그가 택한 예술의 힘은 인간이 인간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가치가 무엇인지 끝없이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