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광주민주화운동 ‘행방불명자(이하 행불자)’로 신고된 사람은 모두 242명이며, 법적으로 행불자 지위가 인정된 사람은 82명이다. 이 가운데 6명은 지난 2001년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의 무명열사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신원이 밝혀졌다. 나머지 76명의 행방은 말 그대로 흔적조차 사라졌다. 제39주년을 앞두고 행불자에 대한 진상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최근 이와 관련한 육군본부의 비밀문서가 세상 밖으로 공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나긴 세월동안 계엄군에 사살돼 어디에 있는지, 신원조차 파악할 수 없었던 만큼 이번에 그 단초가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라진 행불자, 김해 이송 의혹=5·18 당시 사라진 ‘시신’이 비밀리에 김해로 옮겨졌다는 군 기록이 발견됐다. 행불자로 남은 희생자일 가능성이 크다. 육군본부가 지난 1981년 6월에 작성한 ‘소요진압과 그 교훈’이라는 제목의 군 3급 비밀문건에는 공군 수송기 지원 현황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문건 110쪽에는 5·18 당시 군의 수송기 지원 현황이 ‘공수지원(수송기)’이라는 제목의 표로 작성돼 있다. 일자와 내용(수송품목), 수량, (운항)구간, 비고란으로 나눠 수송한 물품 등이 기록돼있다.

주목할 점은 비고란이다. 5월25일 ‘김해-광주’를 운항한 수송기 기록 옆에 ‘시체(屍體)’라고 적힌 한자가 적혀있다. 김해에서 의약품과 수리부속품을 싣고 광주로 왔던 수송기가 돌아가면서 시체를 운송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5·18 광주소요사태 상황전파’ 자료를 살펴보면, C-123수송기는 당일 김해를 출발해 광주비행장에 도착했다가 다시 김해로 돌아간 것을 알 수 있다. 김해로 옮겨진 ‘시체’는 군 사망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은 3·7·11공수, 20사단으로 영남에 주둔하고 있던 부대는 없었다. 또 계엄군 간 오인 사격 등으로 사망한 군인 23명은 모두 수송기를 이용해 성남비행장으로 옮겨졌다.

◇공군수송기로 옮겼을 가능성=공개된 문건자료를 살펴봤을 때 “행불자들이 군공수송기로 옮겨지지 않았을까” 질문에는 아직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시체’라는 한자어만 표기됐을 뿐 몇 명의 시신이 김해로 옮겨졌다는 기록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공 수송기로 ‘시신’을 운반했다는 가능성은 있다. ‘시체’를 운반했다고 기록(25일)된 하루 전까지의 행불자가 90%에 달한 이유에서다.

76명의 ‘보상신청서’를 살펴보면 5월25일만 유독 행불자가 0명이다. 이 중 69명이 5월24일 이전에 실종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7명 중 2명은 5월25일 이후, 5명은 정확한 날짜가 확인되지 않았다.

1982년 2월 육군본부가 작성한 ‘계엄사’ 기록에도 25일자 ‘광주-김해’ 운항 기록만 누락돼 있다. 이 때문에 5·18 당시 계엄군에 희생된 시신을 군 수송기로 빼돌리고 기록을 지우려 했던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조선대 노영기 교수는 “소요진압과 그 교훈 문건은 군이 소요진압을 한 다음에 재편집한 것이기 때문에 시체를 옮겼다는 자료의 신뢰성이 매우 높다”며 “여러 정황상 운송한 시체는 행방불명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진상조사위 조속히 구성해야=5·18 당시 행방이 묘연해진 사람들의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진상조사위를 조속히 구성해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광주시에 신청된 행불자 수는 242명이지만, 5·18 당시 실종된 실제 행불자는 더 많을 수 있다”면서 “행불자를 옮겼을 것이라고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수송기에 의한 시신 운반 가능성이 제기된 만큼 본격적인 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5·18 진상을 규명할 조사위는 기약 없이 표류 중이다. 조사위는 ‘5·18 망언’과 ‘조사위원 재추천’ 문제가 불거지면서 7개월째 출범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문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군은 여전히 5·18 관련 조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광주에 투입돼 진실을 알고 있는 계엄군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자명예훼손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역시 마찬가지다. /최환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