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상님, 내가 그린 바지는 어째 반바지가 돼 부렀단 말이요?”

지난 25일 땅끝마을 미황사 아래 위치한 송지면 서정마을 경로당에서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할머니들의 한글 공부가 한창이다.<사진>

공부를 시작한지 닷새째인 오늘은 ‘ㅂ’을 배우는 날이다. 할머니들은 ‘ㅂ’이 들어간 낱말을 찾아 색칠을 하면 바지 그림이 완성되는 학습지를 풀었다. 그러나 바지는 그려지지 않고 반바지되고 치마가 된다고 푸념을 쏟아낸다.

28일 해남군에 따르면 서정마을 한글 교실은 해남군의 늘찬 배달 교육의 일환으로 이달부터 운영되고 있다.

늘찬 배달은 10명 이상 주민이 신청하면 원하는 장소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강사가 파견된다. 새해 한글 교실은 마을 노인 회장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참여자는 마을 70-80대 어르신들이다. 73세 막내 장옥심 할머니부터 설이 지나면 90세가 된다는 최고령 정상엽 할머니까지 12명이 한 반이다.

장옥심 할머니는 “젊었을 때 먹고 살기 바빠서 글자 배울 틈이 없었다”며 “간신히 읽을 줄만 알고 있다. 연필을 잡고 직접 써보는 것은 처음이다”고 즐거워했다. 이어 장 할머니는 “재밌는 공부 때문에 올해는 농사도 못 지을 판”이라고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집에서도 연필을 놓지 않고 ‘열공’ 중인 정 할머니의 모습을 손주 며느리가 사진 찍어 SNS에 올렸다는 사연까지 공부를 시작한 후 어르신들의 일상에 활기가 넘치고 있다.

한글 교실은 일주일에 두 차례 12회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계획대로 ‘ㅎ’까지 배우면 간단한 단어는 읽고 쓸 수 있는 한글 기초가 마무리 된다.

할머니들은 두 달간 열리는 상반기 늘찬 배달이 끝나면 하반기에는 글쓰기 공부까지 완벽 소화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한글을 지도하고 있는 김미향 강사는 “수업이 10시부터인데 9시부터 기다리시는 어르신이 있을 정도로 열기가 높다”며 “여느 학생들 못지 않은 진지한 할머니들의 모습에 가족들의 응원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해남=김병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