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의 산골 마을, 그곳에 사는 한 소년의 이야기로 교수님은 수업을 시작했다. 그 소년은 축구를 좋아하고, 또 잘 한다. 소년의 꿈은 공고를 졸업하고 컴퓨터 회사에 들어가서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순간 묵직한 돌 하나가 마음을 짓누르는 듯 했다. 수업 내내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축구를 얼마나 잘하는지, 어른들과 겨뤄도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실력을 지녔다고 하는 재능 있는 친구다. 꿈이 뭐냐는 질문에, ‘축구선수’라고 대답하지 않는 그 소년, 마음껏 꿈꾸는 것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소년의 현실은 무거운 것이었다. 먹먹해진 마음을 더 짓누른 것은 그 다음에 소개된 만평이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운동장 트랙에서 경주를 하고 있다. 맨 뒤에는 열심히 달리는 학생들이, 그 앞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학생들이, 맨 앞에는 어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옆에서 책을 읽는 학생이 있었다. 이들에게 주어진 자원의 편차가 너무 크다. 달리는 아이에게는 어떤 자원도 없다. 반면 어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탄 아이는 가진 게 너무 많다. 그 아이가 과연 뒷좌석에 다른 아이를 태우고 함께 갈까? 이를테면 해남 산골 마을의 축구를 좋아하는 그 소년과 같은 친구들 말이다.

청소년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 한국. 자살률 세계 1위. 게다가 한국 청소년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라고 한다. 사망 원인이라고 하면 보통은 암이나 백혈병, 교통사고 등 질병이나 사고 등을 떠올릴 것이다. 자살이 사망원인 1위라니….

의학이 그리고 기술이 발달해서 어지간한 병은 치료가 가능하다. 자살한 사람마저도 살려놓는 세상에서, 사망원인 1위라는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하다.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근대’서 카스토리아디스의 말을 인용한다. “만일 사회가 사회에 대한 질문을 멈춘다면 사회는 아픈 것이다.” 질문하지 않는 사회, 아픈 사회가 만들어낸 비극이 너무나도 많다.

요즘은 뉴스가 드라마보다 더 막장이다. 실제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충격적인 사건들이 보도된다. 한숨짓고 분노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무기력하고 싫어질 때도 있다.

교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며 “각자가 만들어야 될 언어와 문법은 다르다”고 하셨다. 전에는 내가 하는 일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지길 바란 적이 있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만들고 싶고, 내가 그 온기가 되고 싶다고 간절히 바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꿈꾸지 않는다.

대신 물음표와 느낌표들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것 나름대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에 물음표를 다는 것, 사소한 일들에 느낌표를 다는 것. 바우만은 “질문을 새로이 던진다는 것, 이는 장기적으로 치료에 한걸음 다가감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아픈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바우만의 말처럼 치료로 한걸음 다가가는 것일까? 내가 던진 물음표와 느낌표들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은 책상 위에 올라서서 학생들에게 말한다.

“내가 왜 이 위에 섰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 이 위에 선 이유는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기 위해서야. 이 위에서 보면 세상이 무척 다르게 보이지. 믿기지 않는다면 너희도 한번 해봐. 어서, 어서.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다른 시각에서도 봐야 해. 틀리고 바보 같은 일일지라도 시도를 해봐야 해.” 그리고 또 덧붙인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뭐라 비웃든 간에….”

나는 이것이 ‘다른 삶’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키팅 선생님의 말처럼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다른 시각에서 보는 건 정말 중요하다. 사람들이 비웃을 수도 있고, 미친 사람으로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다르게 보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이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변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물음표를 달고 사는 호모 콰이렌스(Homo Quaerens·질문하는 인간)다.

질문도 다르게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내 물음표와 느낌표들의 대부분은 답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답을 얻지 못한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다른 삶을 상상하는 것은 어떨까?’ 혼자라면 어렵겠지만,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모인 ‘우리’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우리는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 것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미국 출신의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에서 행복의 중요 요소를 뽑는 연구를 소개한다. 50년에 걸친 연구 끝에 도달한 결론은 ‘인적 네트워크’, 즉 ‘인간관계’가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질문하는 것이 ‘다른 삶을 상상하는 것’의 시작점이라면, 그 시작점을 지나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

미국의 팝 아티스트 키스 해링의 그림에는 유독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장다정 <전남대 문학학과 박사 과정>

이들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양한 모양과 색으로 존재한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각자의 색이 있다. 각자가 자신만의 색을 잃지 않되, 다른 색과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발터 벤야민은 “밤중에 계속 걸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은 다리도 날개도 아닌 친구의 발소리”라고 했다.

내가 친구의 발소리 덕분에 지금까지 계속 걸어올 수 있었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친구의 발소리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내 곁에서 혹은 멀리서, 나의 친구가 되어준 존재들에게 감사하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