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활동가 대회

지난 11월 전국의 문화현장을 누비고 있는 문화 창작자, 연구자, 기획자, 예술인 등을 초대하는 문화활동가 대회를 광주에서 개최했다. 현재 문화활동가들은 세대, 장르, 지역, 직종별로 구획돼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갈수록 자신의 섹터 안에서만 교류하고 활동하는 한계를 보인다.

이런 현실에서 경계를 넘어 소통과 자극을 주고받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나의 10년이 지역의 10년이다’라는 주제로 대회를 기획했다. 그러나 주제와 기획이 아무리 좋아도 ‘자기 돈을 들이면서까지 광주에 가야하나’란 인식을 어떻게 바꾸느냐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방법은 우리가 먼저 찾아가서 활동가들을 만나고 참가단을 조직하는 과정에 공을 들이는 실험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특히 준비를 맡은 청년활동가들이 전국 곳곳을 방문하며 대회 취지를 설명하고 문화활동가를 인터뷰하며 광주 대집결을 성사시켰다. 그들은 조직위원이라는 직함을 받긴 했지만 사례비는 받지 않고 자발적 착취를 감내했다. 나는 물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가”라고…. 그들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존해 가고 있는가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오히려 그들을 만나면서 내가 가는 길이 외롭지 않고, 나의 문제가 지역의 문제이고, 대한민국의 현실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또한 광주를 방문한 문화 활동가들은 놀이패 신명의 ‘언젠가 봄날에’ 공연을 보며, 5·18광주민중항쟁의 예술적 승화를 몸소 체감했고, 광주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같은 좋은 시설이 있음을 부러워했으며, 대인시장 음식을 맛보는 등 광주문화의 정수를 속속들이 느꼈다고 했다.

물론 행사과정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기도 했고, 예산이 부족해 후원금을 모집했으며, 조직위원 내부 갈등도 있었다. 그러나 3천만원의 예산으로 전국의 문화활동가 300명을 초대해 광주의 참 모습을 느끼게 했고, 빈틈은 많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청년활동가의 헌신을 봤으며, 묵묵히 후배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과 흔쾌히 지갑을 열어준 선배들의 배려를 경험했다. 이처럼 거대한 변혁은 아니지만 광주문화판에 조용한 변화의 새바람이 불고 있음을 경험했다.

#2. 예술인 복지지원 창구 지원

예술인복지법의 제정(2011년 11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설립(2012년 11월)등 정부차원의 예술인 복지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됐음에도 지역 예술인은 복지정책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예술인 복지지원 혜택을 받으려면 먼저 예술인 활동증명에 가입해야 하지만 장년층 예술가의 경우 온라인 신청절차가 번거로워 가입 자체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광주에 거주하는 예술가가 예술활동 증명을 받기 위해 서류를 챙겨 서울로 올라가지만 미비한 점이 발견돼 다시 서울을 방문해야 하는 비극적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고, 연간 300만원의 창작지원금을 지원 받기 위해 구비서류를 챙긴다고 했지만 누락돼 탈락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즉 지원정책은 있으나 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계가 온라인 신청이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 예술가들에게 전가되는 현실을 알게 됐다.

우리는 몇 차례의 예술인 복지 정책간담회를 통해 정부의 전달체계에 개선을 요구함과 동시에 광주시 예산 4천만원을 편성, 광주문화재단 예술인 복지창구를 운영하게 됐다.

첫 시작은 불만과 하소연을 경청하는 과정이었다.

온라인 등록에 어려움을 겪는 원로예술인, 노력과 열망을 알아주지 못하는 현실적 토로, 지원제도의 문제점 등. 우리 재단은 상담창구를 운영해 애로사항을 경청하고 신청서비스를 대행하며 복지혜택이 지역예술인들에게 확대되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올해 예술활동증명 가입자 수는 995명(2017년 742명), 창작준비금 선정 예술인은 103명(2017년 79명)이 됐다. 전년도에 비해 30% 이상이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증가수치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작고 조용한 정책적 변화가 지역 예술인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보게 된 것이다.

#3. 청년문화 일자리 시범사업

광주에 거주하는 1천명의 청년을 대상으로 청년문화실태조사(2017년)를 수행한 결과 청년문화 정책 수립의 우선적 순위는 문화일자리 창출 및 확대(27.2%), 지속가능한 청년문화생태계 조성(13.6%), 활력이 넘치는 청년도시 조성(11.7%) 순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청년의 삶을 가장 크게 규정하고 있는 ‘취업’과 ‘경제적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청년문화 정책을 논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청년세대의 고유한 문화를 고양하고 발전시켜 청년 스스로의 자기정체성과 행복감을 높이는 이상적인 방향 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으면서 문화 활동을 유도하는 등의 현실적 정책을 선택하는 것이다. 문화정책이 문화영역의 사회적 자원을 배분하고 관리함으로써 이념과 비전, 제도와 관행, 그리고 행위자들을 생산해내는 국가 혹은 지방정부의 행위라고 한다면 청년문화 정책의 개입은 문화일자리를 늘리고,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1차 목표를 설정했다.

그렇다면 목표는 정해졌고 방향이 중요하다.

문화일자리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문화현장에 있었다.

문화예술계에 종사하고 싶은 청년은 있지만 수입의 불안정성 때문에 젊은 예술가들이 지역을 떠나고 자신의 전공분야와 무관한 진로를 선택함으로써 현장 예술가가 재생산되지 않고 있었다.

지역문화를 이끄는 버팀목은 문화예술 단체이고, 이들의 활동이 지역문화를 풍요롭게 하지만 신규직원이 재생산되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이 반복되고 있었다. 결국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향, 즉 청년은 문화예술단체에서 일경험을 획득해 경력을 쌓아가고, 문화예술단체는 부족한 인력을 지원받아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시작된 것이 청년문화 일자리시범사업이다.

시범사업은 시비 5천500만원으로 4명의 청년을 문화예술 단체에 배치하고 인건비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진행됐다.

박경동 <광주문화재단 정책연구교류팀장 직무대리>

사업 추진결과 청년인력은 고용의 안정성과 현장 활동 경력을 쌓을 수 있어 만족했고, 단체는 인력지원을 통해 창작 여건이 좋아지고 사업규모를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시범사업으로 끝나지 않고 국비예산이 확보되며 2년 연속 10명의 청년이 문화일자리 지원을 받는 사업으로 확대된 것이 나름의 성과이다.

소규모 예산이 마중물이 돼 규모는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낸 것이 문화일자리 사업의 조용한 변화다.

정책은 미래의 비전을 설계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과 같다. 그러나 너무 멀게 느껴지는 그랜드플랜 보다는 오히려 현재의 한계를 직시하고, 현장의 요구를 수용해 정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작업, 작지만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조용한 변화와 개선안을 찾는 과정도 중요하다.

올해 광주문화재단의 정책사업은 조용한 변화의 새바람을 불도록 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