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고 미안하다. 그 학생이 다문화가정의 아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필자는 10년전 광주광역시청 여성청소년정책관을 지내면서 다문화 업무를 보았다. 다문화정책 초기 단계였지만 필자는 근본대책을 지금 수립하지 않으면 10년, 20년 후에 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청와대에 인권 차원의 거시정책을 주문하고 그 계획을 직접 가서 설명하기도 했다. 정부는 그 계획을 축소해서 지원사업에 몰두했다.

예언이 틀리길 바랬지만, 늦가을에 다문화가정 학생이 동료 친구들에게 맞아 죽었다. 인천 중학생 추락사 사건은 그 자체로 충격이다. 14살 중학생이 또래 중학생들에게 폭행당했다. 무려 1시간 20여 분간 계속된 집단 폭행이었다. 결국, 피해 학생이 인근 아파트 옥상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여기에 더 가슴이 메어지는 일은 일어났다. 경찰에 체포된 가해 학생들이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위해 법원에 출두했다. 그 중 한 학생이 입은 옷이 숨진 피해 학생의 것이었다. 강제로 빼앗은 옷을 입고 법원에 나타난 것이다. 이게 사람인가. 러시아 출신인 피해 학생의 어머니가 뒤늦게 발견하고 SNS에 “내 아들을 죽였다. 저 패딩도 내 아들 것이다”라고 러시아어로 적으면서 밝혀졌다.

역지사지, 해 보라. 14살이 되도록 다문화가정 아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고 살다가 또래 친구에게 집단으로 맞다가 아파트 옥상에서 추락사하기까지, 이 학생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이었을까. 차별과 냉대, 질시와 폭력, 과연 인간이 사는 나라였을까.

얼마 전에도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강원도 한 고등학교에서 여학생들이 다문화 가정 학생을 7개월간 괴롭혀 왔다. 집단으로 폭행하고, 옷을 벗겨 나체 사진을 찍고, 사진을 공개하겠다며 협박까지 했다. 이를 미끼로 뜯어낸 돈만 155만 원에 달한다. 다문화 자녀들의 고통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다문화 자녀 학생의 11%가 다문화 가정이라는 이유로 차별이나 무시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전남의 한 농어촌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40대 여교사가 다문화가정 자녀인 A양(당시 11세)에게 방과후 지도를 하고 있었다. 교사는 학생들과 ‘마음이 아파서 그래요’라는 제목의 성폭력 예방 도서를 읽던 중 A양이 뭔가 이상한 반응을 보인다고 느꼈다. 이유를 묻자 A양은 “삼촌과 할아버지들이 이런(성폭력) 행동을 했어요”라며 울먹였다. 아홉 살때 평소 삼촌이라고 부르며 따랐던 이가 A양에게 유사 성행위를 하는 걸 보고 엄마는 A양을 데리고 원래 살던 고향에서 가까운 마을로 서둘러 돌아왔다. 하지만 더 큰 악몽이 모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A양이 할아버지라고 믿고 따랐던 C씨(72) 등 동네 50-70대 주민 3명이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1-4차례씩 A양을 성폭행하거나 성추행했다. 엄마가 일을 하기 위해 집을 비운 사이 어른들이 몹쓸 짓을 한 것이다. 경찰은 A양 학교의 신고로 만행이 드러난 B씨, C씨 등 3명을 구속하고 주민 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우리 사회에 다문화 가정이 자리한 것도 30년도 더 됐다. 지난해 초중고교 다문화 학생은 전년보다 10% 넘게 늘어나 최초로 10만 명을 돌파했지만 이들의 학업 중단율은 일반 학생보다 4배 이상 높다. 이들이 편견과 집단따돌림 같은 교우관계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학교와 지역 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이유다.

전남지역 다문화 학생 수는 2014년 5,994명에서 2018년 8,572명으로 해마다 꾸준히 증가해 전체 학생의 4.44%를 차지하고 있고 초등학교는 다문화 학생이 전체 학생 수의 10%에 육박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전국 다문화 가족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다문화 가정 자녀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서(64.7%,복수응답)’,‘학교 공부에 흥미가 없어서(45.2%)’ 순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올해부터 제3차 다문화 기본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은 다문화정책을 각 지역에 맞게 시행하기 위해 많은 부분을 지자체에 위임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정부의 지원정책은 각 부처 지원 내용이 획일적이고 수요자 위주의 지원 대책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이주민들에 따르면 아이 교육 문제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입학 때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자녀가 혹여 외국인이어서 상처를 받을까봐 두려워 어디 한 곳을 선뜻 정하기 힘든 데다, 요즘에는 ‘치맛바람’에 많은 차별을 경험한다고 한다. 정부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을 통해 다문화 가정 자녀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학습 지원, 진로상담 및 진로교육, 한국어 교실 등 교육 분야에만 지원이 집중돼 있다. 특히 예민한 청소년 시기를 보내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다문화 가정 구성원을 두루 살피는 정책과 지원을 하기엔 예산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조금 다른 외모와 말투에서 오는 편견과 따돌림, 다문화 학생들의 고통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 자신이 이민을 갔는데 그 나라 국민이 자신을 무시하고 따돌린다고 생각해보라. 하루빨리 예방대책을 세워야 한다.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부와 교육당국, 지자체는 다문화 학생들이 이들이 꿈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효율적인 교육시스템을 도입하고 맞춤형 진로교육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들도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차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