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人立 一人坐 而立者唱 坐者以鼓節之
한사람은 서고 한사람은 앉아서 연주한다
(윤달선 ‘광한루악부’)

판소리는 ‘판’과 ‘소리’라는 두 말의 복합어다. 그러므로 판소리를 두 말로 나눠 말풀이를 하면 된다. ‘판’이라는 말은 씨름판, 놀이판, 노름판 등의 용어에 나오는 판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그 ‘판’은 씨름·놀이·노름 같은 특수한 행위를 하는 곳을 뜻하는 말이다. ‘소리’라는 말은 전라도 지방의 성악 갈래 가운데 판소리를 지칭한다. ‘소리를 잘한다’, ‘소리 하나 하시오’라고 했을 경우 그 소리는 곧 판소리를 의미한다.

판소리 유래에 관한 학설로는 무가기원설, 육자배기토리설, 판놀음기원설, 광대소리기원설 등이 있다. 판소리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에 대한 정확한 근거자료는 없다. 여러 가지 판소리 기원설이 있지만 판소리 공연과 관련된 최고의 문헌은 윤달선의 ‘광한루악부’이다. ‘광한루악부’의 서문에 나오는 ‘한사람은 서고, 한사람은 앉아서 연주한다’는 기록은 앉은 고수의 북장단에 맞추어 한 가수가 서서 소리하는 판소리의 공연 장면에 대한 묘사이다.

이렇듯 판소리는 앉은 고수의 북반주에 가수가 서서 소리, 아니리, 발림을 섞어가면서 다양한 가락으로 긴 이야기 사설을 장단에 얹어서 노래 부르는 성악의 한 갈래다.

김준근의 ‘기산풍속도첩’ 중 ‘가객 소리하고’

오늘날과 비슷한 형태를 갖춘 판소리의 유래는 18세기 전후의 숙종(1675-1720) 무렵으로 추정된다. 그런 추정의 근거는 유진한(柳振漢)이 지은 ‘만화집’(晩華集)의 ‘춘향가’(春香歌) 한시(漢詩) 사설 200구(句)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18세기 후반에 이미 판소리 ‘춘향가’는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신위(申偉 1769-1845)의 ‘관극시’(觀劇詩)엔 권삼득(權三得)과 모흥갑의 ‘소년득명’을 노래하고 있다.


장안에선 흔히 우춘대를 일컫지만

오늘날 누가 그 소리를 훌륭히 이어갈까

한 곡을 부르면 술동이 앞에 천필의 바단이 쌓이는데

권삼득과 모홍갑이 소년명창으로 이름났네

신위의 ‘관극시’


이 시의 내용으로 보면 우춘대는 이미 널리 알려진 명창이고 후계자는 누가 될 것인지 관심사로 돼있다. 또 하나 해석해 볼 수 있는 것은 판소리의 인기도다. 천 필의 비단이 쌓인다고 하니 그 당시 민중들의 관심사였던 것이 분명하다. 요즘 시대로 말하면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인기 많은 가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810년 간행된 송만재(1788-1851) ‘관우희’(觀優戱)는 판소리 12마당을 기록했으며 괭대들의 재주 부리는 모습과 생활상 등을 종합적으로 담아 읊었다고 한다.


시원한 정자엔 횃불 높이 타오르고

소리꾼과 고수는 동서로 마주했네

당 위보다 아래가 소리 듣기 마땅하니

즐거움이야 뭇 사람과 함께 한들 어떠하리

- 송만재 ‘관우희’ 중


송만재가 이 시를 쓰게 된 연유는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에 급제하면 광대, 재인들을 불러 노래와 재주를 구경하는 풍속이 있었는데 금년 봄 우리 아이가 과거에 급제하고도 집안이 가난해 한 바탕의 놀이를 베풀 수 없으므로”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즉 잔치에 창우를 부를 돈이 없어서 아들을 위해 아버지의 마음을 표현한 시다. 또한 19세기 우리나라에서 행해졌던 놀이 문화를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초기의 판소리는 음악성이나 사설의 내용이 지금에 비해 훨씬 단순하거나 빈약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랬기 때문에 12마당이 모두 불렸을 것이다. 판소리 12마당은 조선 후기에 하나씩 사라져 조선 말기에 활동하던 명창을 마지막으로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 다섯마당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전승이 끊어졌다. 그리해 현재는 판소리 다섯마당 즉 춘향가, 심청가 등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이다.

12마당에서 5마당만 남게 된 이유로는 판소리가 서민들의 애환을 대변해주는 내용들이 주를 이뤘을텐데 양반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양반들의 기호에 맞는 내용으로 변화하게 됐을 것이라는 추정과 그 사설의 내용이 외설(猥褻)하고 황탄(荒誕)해 조잡한 내용을 가진 소리는 차차 안 부르게 됐다고 한다. 또 한가지 더 중요한 이유로는 비가비 광대(학식을 갖춘 한량 출신의 몰락 양반 또는 중인 출신)의 참여다. 판소리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비가비광대는 천인 출신이 아니라서 아마도 판소리 서설을 다듬는 작업에 비가비 광대의 역할이 지대했을 것이다. 향반 출신 권삼득은 비가비 광대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또한 판소리 이론에 특출한 신재효(판소리 이론가)도 중인 출신의 비가비 광대였다.

1826년(순조) 무렵에는 권삼득(權三得)·송흥록·염계달·모흥갑·고수관·신만엽·김제철·황해천(黃海天)·주덕기(朱德基)·송광록·박유전·방만춘(方萬春) 등 뛰어난 명창들이 나와서 판소리 발전에 이들의 더늠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한말과 일제시대에는 강소춘(姜笑春)·김녹주(金綠珠)·이화중선(李花中仙)·김초향(金楚香)·배설향(裵雪香)·박녹주(朴綠珠) 등 수많은 여류명창들이 나왔고, 김여란(金如蘭)·김소희(金素姬)·박초월(朴初月)이 뒤를 이었다.

광복 뒤에는 한때 여성창극이 성행해 판소리는 더욱 쇠미(쇠잔하고 미약함)하게 되고 1960년대에는 창극도 기울어졌다. 1960년대에는 판소리 부흥운동이 일어났고, 박동진(朴東鎭)이 판소리 다섯마당의 전판 공연을 시도한 것을 계기로, 박초월·김소희·오정숙(吳貞淑)·성우향(成又香)·박초선(朴初仙)이 판소리 전판 공연을 가진 바 있어 판소리 명창의 수는 극소수로 줄었으나 한때 판소리는 부흥돼 가는 듯했다. 1960년대에 판소리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뒤 정광수(丁珖秀)·오정숙(吳貞淑)·박동진·성창순(成昌順)·조상현(趙相賢)·한승호(韓承鎬)·김성권(金成權)·정철호(鄭哲鎬)가 보유자로 인정돼 사라져가는 판소리 전승과 후학 양성에 힘을 쓰게 됐다.

김선희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단원>

판소리는 2003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됨으로써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오늘날 판소리 5마당은 1964년부터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 5호로 지정돼서 보존·전승하고 있다.

판소리는 서사적 구조를 가진 사설로 인해 문학영역에 속하기도 하고 소리는 장단 및 가락을 가지고 있어 음악 영역에 속한다. 또한 소리하는 창자(唱者)는 여러 가지 몸짓이나 연기를 하니 연극적 성격도 가진다. 이렇게 판소리는 종합예술형태를 가진 예술세계이다. 판소리로 무대에 서야 하는 창자(唱者)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아주 매력적인 것이기도 하다. 간혹 그 시간과 상황에 맞게 아니리(이야기하듯 줄거리를 설명하는 것)로 표현해 내는 재담 같은 말들이 청중을 웃고 울리기도 하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음악표현 방법인가.

말로서 음악을 표현해 내는 판소리는 인간의 감정을 최대화 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예술세계다.

대한민국에서 판소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판소리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사람들에게 연상되는 그 모습이 어떤 역사를 지니며 현재에 이르렀는지 왜 유네스코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됐는지 그 뛰어난 예술성에 대중의 관심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