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이 꽃보다 빛나는 계절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 재생 준비중
2018. 10. 31(수) 19:29 가+가-
온 산하가 아름답게 불타는 계절, 가을이다. 만산이 홍엽으로 아름답게 물들어 간다. 주말에 가을걷이 한창인 남도 고샅길을 친구와 걸었다. 들길, 가로수, 낮은 산 할 것 없이 붉은색 갈색 푸른색 노란색 가을색(秋色)이 너무 아름다웠다. 붉은색은 붉은색대로 노란색은 노란색대로 한껏 예쁘다.
자동차로 추색 만연한 길을 드라이브 하다보면 저절로 탄성을 지르게 된다. 서로 색을 뽐내며 서 있지만 이어서 보면 통일된 색감을 가지고 우리의 눈을 홀린다.
단풍잎 하나를 짚어들고 친구가 말했다. ‘가을색이 이렇게 황홀한 것은 색의 조화 때문인 것 같다’ 여름에서 겨울로 옮겨가는 시간 속에서 자연의 법칙에 철저히 순응하면서 색의 조화를 부리는 나무들의 한결같은 순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나뭇잎 꽃을 연출하는 것이라고···.
단풍이 물드는 과정은 속도의 차이로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가을 날씨가 싸늘해지면서 나뭇잎과 몸통간의 물질교환 속도가 느려지면 잎 속에 있던 여러 색소들이 파괴되기 시작하는데, 이때 밝은 주황색을 띠는 카로틴이나 노란색에서 주황색 계열을 띠는 크산토필과 같은 카로티노이드 계통의 색소들이 엽록소보다 더 늦게 파괴된다. 흔히 말하듯이 엽록소가 파괴되고 카로티노이드 계통의 색소들이 들어나는 것이 아니라, 소멸 속도 차이에 의해 상대적으로 카로티노이드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노란색이나 주황색의 단풍이 드는 것이란다.
걷다가 친구가 문득 ‘분노범죄’와 ‘가정폭력’ 얘기를 꺼냈다. 우리는 툭하면 살인하는 울혈사회를 살고 있다, 인명경시 풍조에 전율을 느낀다, 이 세상에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없는데, 그 목숨을 분노조절 안되는 이에게 빼앗기는 사회라니~.
A씨가 이혼한 아내인 B씨를 10월22일 살해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아빠에게 사형 판결을 내려 달라”고 딸들이 글을 올린 바로 그 사건이다. A씨는 무지막지한 가정폭력을 25년 동안 휘둘러 왔다. 2015년에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A씨는 구속되지 않고 곧바로 풀려났다.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한 B씨는 다섯 차례나 거처를 옮기며 숨어 다녀야 했다. 가정폭력범은 ‘구속률 1%’다. 경찰도, 법원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가정폭력 신고는 지난해 경찰에 27만여 건이 접수됐다. 검거된 폭력범도 4만여 명에 이르는데 구속된 사람은 고작 384명이다. 우리나라 형법은 폭행·협박·존속폭행범에 대해 ‘반의사 불벌 규정’을 두고 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이다. 수사·기소·재판을 하다가도 “용서해 주세요”라고 한마디만 하면 하루아침에 ‘없던 일’이 되고 만다. ‘가정폭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도 문제다. 이 법률 제1조는 ‘가정폭력범을 보호 처분함으로써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 피해자와 가족 구성원 인권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가정폭력범 보호와 가정 유지’가 ‘피해자 인권’보다 우선이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올해 3월 “이 법의 목적을 피해자와 가족 안전 보장에 두라”며 가해자 형사처벌 보장 등도 권고했지만 변한 건 없다. 여성계가 국회에 관심을 촉구하는 이유다.
이 살인사회를 어찌해야 하나.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들판도, 수채화 물감을 확 뿌려놓은 캔바스같은 저 산도 자연의 순리대로 받아들여 저리 예쁜데, 인간은 역리, 거스르고 생채기내고, 때리며 마음에 쌓인 분노를 어쩌지 못하고 가족과 남을 해치는 데 쓰고 있다.
친구는 우리 인간이 단풍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단풍은 내일 떨어져 죽을 줄 알면서도 혼신의 힘을 짜내어 미소 한 모금 머금고 임종을 고하는 사람처럼, 떨어질 잎사귀의 마지막 낙엽미소를 우리에게 보여준단다. 낙엽귀근(落葉歸根), 잎은 뿌리에서 생긴 것이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낙엽은 뿌리를 감싸줘 추위를 막아주고 썩어문드러져 거름되어 선뜻 자양분이 되어준다. 만약 가을나무들이 이파릴 떨어뜨리지 않는다면 한겨울 추운 날씨에 아래 발치의 물이 얼어버려 끄트머리 잎에서부터 나무는 말라죽을 것이다.
희생과 양보. 우리가 바라볼 때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나무에게 있어서는 성장기를 마감하는 인간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 단풍이다.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을 남에게 해서, 남의 목숨을 빼앗고, 물욕이나 명예욕, 성욕으로 삶을 추하게 하는 것은 단풍을 붙들어 뿌리가 얼어 죽는 꼴이다.
단풍이 지극히 아름다운 것은 자연에 순응하여 새 생명의 잉태를 위해 온몸을 붉게 물들여 태우기 때문이다. 사람살이에서 고귀한 단풍은 희생이 아닐까한다. 자신만 생각하며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고 한다면 결국 겨울을 거치면서 한줌 흙으로 묻혀 다시는 봄을 볼 수 없는 참담한 지경에 이를 수 있다.
걸핏하면 때리고 찌르고 죽이고 자르고 버리고 빼앗는 세상에 살면서 바라보는 가을단풍은 슬프다. 잎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 계절에 오래 쌓여온 분노에서 발생한 순간적이고 우발적인 충동 살인은 곧 내릴 서리보다 더 서늘하다. 내가 소중하면 남도 소중하다. 남의 생명과 자신의 목숨을 어찌 이리 쉽게 빼앗고 버리는가.
봄과 여름 내내 무럭무럭 자라던 나무는 낮이 짧아지면서 자라는 것을 잠시 멈춘다. 수분과 영양분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나뭇잎을 떨어뜨릴 준비를 한다. 나무도 제 몸을 살리기 위해, 나무 숲을 살리기 위해 준비하는 지혜가 있거늘~. 살인사회, 울혈사회를 살면서 바라보는 이 가을의 저 찬란한 잎!
자동차로 추색 만연한 길을 드라이브 하다보면 저절로 탄성을 지르게 된다. 서로 색을 뽐내며 서 있지만 이어서 보면 통일된 색감을 가지고 우리의 눈을 홀린다.
단풍잎 하나를 짚어들고 친구가 말했다. ‘가을색이 이렇게 황홀한 것은 색의 조화 때문인 것 같다’ 여름에서 겨울로 옮겨가는 시간 속에서 자연의 법칙에 철저히 순응하면서 색의 조화를 부리는 나무들의 한결같은 순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나뭇잎 꽃을 연출하는 것이라고···.
걷다가 친구가 문득 ‘분노범죄’와 ‘가정폭력’ 얘기를 꺼냈다. 우리는 툭하면 살인하는 울혈사회를 살고 있다, 인명경시 풍조에 전율을 느낀다, 이 세상에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없는데, 그 목숨을 분노조절 안되는 이에게 빼앗기는 사회라니~.
A씨가 이혼한 아내인 B씨를 10월22일 살해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아빠에게 사형 판결을 내려 달라”고 딸들이 글을 올린 바로 그 사건이다. A씨는 무지막지한 가정폭력을 25년 동안 휘둘러 왔다. 2015년에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A씨는 구속되지 않고 곧바로 풀려났다.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한 B씨는 다섯 차례나 거처를 옮기며 숨어 다녀야 했다. 가정폭력범은 ‘구속률 1%’다. 경찰도, 법원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가정폭력 신고는 지난해 경찰에 27만여 건이 접수됐다. 검거된 폭력범도 4만여 명에 이르는데 구속된 사람은 고작 384명이다. 우리나라 형법은 폭행·협박·존속폭행범에 대해 ‘반의사 불벌 규정’을 두고 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이다. 수사·기소·재판을 하다가도 “용서해 주세요”라고 한마디만 하면 하루아침에 ‘없던 일’이 되고 만다. ‘가정폭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도 문제다. 이 법률 제1조는 ‘가정폭력범을 보호 처분함으로써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 피해자와 가족 구성원 인권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가정폭력범 보호와 가정 유지’가 ‘피해자 인권’보다 우선이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올해 3월 “이 법의 목적을 피해자와 가족 안전 보장에 두라”며 가해자 형사처벌 보장 등도 권고했지만 변한 건 없다. 여성계가 국회에 관심을 촉구하는 이유다.
이 살인사회를 어찌해야 하나.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들판도, 수채화 물감을 확 뿌려놓은 캔바스같은 저 산도 자연의 순리대로 받아들여 저리 예쁜데, 인간은 역리, 거스르고 생채기내고, 때리며 마음에 쌓인 분노를 어쩌지 못하고 가족과 남을 해치는 데 쓰고 있다.
친구는 우리 인간이 단풍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단풍은 내일 떨어져 죽을 줄 알면서도 혼신의 힘을 짜내어 미소 한 모금 머금고 임종을 고하는 사람처럼, 떨어질 잎사귀의 마지막 낙엽미소를 우리에게 보여준단다. 낙엽귀근(落葉歸根), 잎은 뿌리에서 생긴 것이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낙엽은 뿌리를 감싸줘 추위를 막아주고 썩어문드러져 거름되어 선뜻 자양분이 되어준다. 만약 가을나무들이 이파릴 떨어뜨리지 않는다면 한겨울 추운 날씨에 아래 발치의 물이 얼어버려 끄트머리 잎에서부터 나무는 말라죽을 것이다.
희생과 양보. 우리가 바라볼 때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나무에게 있어서는 성장기를 마감하는 인간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 단풍이다.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을 남에게 해서, 남의 목숨을 빼앗고, 물욕이나 명예욕, 성욕으로 삶을 추하게 하는 것은 단풍을 붙들어 뿌리가 얼어 죽는 꼴이다.
단풍이 지극히 아름다운 것은 자연에 순응하여 새 생명의 잉태를 위해 온몸을 붉게 물들여 태우기 때문이다. 사람살이에서 고귀한 단풍은 희생이 아닐까한다. 자신만 생각하며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고 한다면 결국 겨울을 거치면서 한줌 흙으로 묻혀 다시는 봄을 볼 수 없는 참담한 지경에 이를 수 있다.
걸핏하면 때리고 찌르고 죽이고 자르고 버리고 빼앗는 세상에 살면서 바라보는 가을단풍은 슬프다. 잎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 계절에 오래 쌓여온 분노에서 발생한 순간적이고 우발적인 충동 살인은 곧 내릴 서리보다 더 서늘하다. 내가 소중하면 남도 소중하다. 남의 생명과 자신의 목숨을 어찌 이리 쉽게 빼앗고 버리는가.
봄과 여름 내내 무럭무럭 자라던 나무는 낮이 짧아지면서 자라는 것을 잠시 멈춘다. 수분과 영양분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나뭇잎을 떨어뜨릴 준비를 한다. 나무도 제 몸을 살리기 위해, 나무 숲을 살리기 위해 준비하는 지혜가 있거늘~. 살인사회, 울혈사회를 살면서 바라보는 이 가을의 저 찬란한 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