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보츠와나공화국은 열대와 온대를 구분하는 경계선인 남회귀선이 통과하는 아프리카 남부에 위치한 내륙 국가다. ‘아프리카의 심장’으로 불리는 보츠와나는 남쪽으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동쪽으로는 짐바브웨, 북쪽은 잠비아에 둘러싸여 있다. 올해 IMF가 발표한 1인당 국내생산량(GDP)은 8천443달러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다. 인구는 250만명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의 6배가 넘는 넓은 국토에 부시맨으로 잘 알려진 칼라하리 사막과 동물의 왕국 오카방고, 쵸베국립공원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우리나라와는 1968년 수교해 경제, 교육, 기반시설 구축 등 다방면에서 협력하고 있다. 보츠와나에는 140여명의 교민이 살고 있다. 한국 기업에서 파견된 직원들과 가족들, 이민자들이다. 그 중심에 곡성 출신으로, 기업 CEO이자 한인회장을 맡고 있는 김채수 회장이 있다. 김 회장은 ‘가족인베스트먼트’라는 기업을 운영하며 보츠와나를 비롯 아프리카에 한국을 알리고, 한국 기업의 진출을 돕고 있다. 사업차 한국을 찾은 김 회장이 17일 본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회장으로부터 미지의 땅 아프리카에서의 성공스토리를 들어봤다.

▲광주 방문을 환영한다. 방문목적은 무엇인가.

-보츠와나는 넓은 국토면적에 비해 인구가 적다. 그런데도 국방이나 치안에 있어서 아프리카 어느 나라보다 안정적이다. 국방과 치안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츠와나 정부는 한국에서 생산하는 군용트럭이나 전투기 장갑차 등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는 보츠와나와 한국을 오가며 보츠와나 정부가 한국의 우수한 장비를 선택할 수 있도록 주선을 하고 있다.

▲국가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성과는 있었나.

-이미 기아자동차에서 생산하는 군용트럭의 수출이 이뤄졌다. 이밖에도 방사청 등과 협력해 한국에서 만드는 전술장비들을 지속적으로 보츠와나에 소개하고 있으며, 그 중 몇몇 장비는 수주계약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김채수 보츠와나공화국 한인회장과 일행이18일 본보를 방문해 오성수 편집국장과 환담하고 있다.

▲고도의 전문성과 네트워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지난 30년간 보츠와나 교민으로, 또 시민권자로 살아오면서 쌓은 신뢰와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도 하고 어시스턴트도 하고 있다. 비즈니스는 개개인의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 능력의 바탕에는 상호간의 존중과 신뢰가 있어야 한다. 국제 규모의 거래는 더욱 그렇다. 같은 자리에 앉아서 서로의 눈을 보고도 진실성을 읽을 수 없다면 그 거래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기아차의 군용차량도 마찬가지고, 한국형전투기도 마찬가지이다. 제품의 성능을 알리는 프리젠테이션은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이지만 이에 앞서 믿음을 심어주는 일이 저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뢰를 구축하는데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지난 4월27일 보츠와나 방위군(BDF) 소속의 BF5 전투기가 훈련 중 추락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민간의 피해는 없었지만 조종사는 목숨을 잃었다. 그때 교과서에서 배웠던 ‘강재구 소령’ 등 한국의 영웅과 그들의 ‘살신성인’ 정신이 떠올랐다. 그래서 650㎞나 떨어진 조종사의 집을 찾아 조문을 하고, 조종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추모비를 전투기가 추락한 골프장에 건립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공군부사령관이 장례위원장이었는데 지나가면서 절 보고 경례를 했다. 꼭 의도를 가지고 간 건 아니었지만 새로운 관계가 형성됐다. 이 내용이 국방부에도 알려지면서 정부 차원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기업과 보츠와나와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데 어려움은 무엇인가.

-한국 기업이라는 이유에서, 또 한국 사람끼리라는 데서 오는 막연한 믿음이 있다. 그래서 더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는데 이런 믿음이 무너졌을 때 찾아오는 배신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고통이었다. 한국기업으로부터 사기꾼 소리를 듣고, 보츠와나 정부로부터는 산업스파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좌절이 아니라 화가 치밀기도 했다. 외국기업들은 영원한 파트너십을 원한다. 그런데 한국기업들은 파트너가 아니라 잔심부름꾼을 원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수수료 몇 푼 받자는 것이 아니다. 경험과 실적을 쌓으면 우리도 더 큰일을 할 수 있다.

▲보츠와나에 정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1987년 보츠와나 중부의 행정중심도시 세로웨에서 서북방향의 오라파를 잇는 도로건설 현장에 ㈜대우의 정비 기술자로 첫발을 디뎠다. 30년 전의 일이다. 어느덧 60을 바라보는 나이니 인생의 절반을 보츠와나에서 산 셈이다. 물론 저보다 먼저 이 땅을 밟은 사람도 있겠지만 현재 남아있는 교민 중엔 가장 오래 살고 있다. 곡성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배운 정비기술이 운명을 바꿔놓았다. 군대제대 후 곧바로 카센터를 차릴 계획이었지만 피부암으로 실명위기에 처한 어머니의 수술이 급해 모아둔 돈을 수술비로 썼다. 그때 외국으로 나가 돈을 벌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해외 파견근로는 큰 유행이었다. 가난을 탈피할 수 있는 기회로 중동으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자동차 정비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던 데다 군대생활 동안 딴 국가기술자격증도 있었다. 해외파견근로자 선발하는 시험을 봤는데 1주일 만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보츠와나 도로공사 현장으로 나가게 됐다.

▲보츠와나에서 어떤 일을 했나.

-1991년 수도 가보로네에 ‘킴스오토’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막상 사업을 벌여놓고 보니 언어가 큰 문제가 됐다. 관공서를 상대해야 할 일이 많은데 영어 실력은 형편없었다. 보츠와나는 전체 국민의 80%를 차지하는 츠와나족의 고유 언어가 있지만 공용어로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대우에서 과장으로 일을 했던 사람이 영어로 문안을 만들어줬다. 그것으로 광고 전단지를 만들어 자동차가 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직접 돌렸다. 흑인도 아닌 동양인이 광고 전단을 돌리자 호기심을 보였다. 점차 손님들이 늘어나면서 현지인 종업원도 두게 됐다. 많을 때는 종업원이 180명까지 있었다. 현지에서는 2000년까지는 가장 규모가 큰 정비 공장이었다. 현지인들은 솜씨가 달려 정비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토착 백인 몇몇 사람이 정비공장을 하고 있었으나 경쟁상대가 되지 않았다. 손님이 늘어나면서 공장을 확장하고 판금, 도색까지 영업 분야에 추가했다. 식구가 늘어나면서 영업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했다. 직접 차량을 개조해 레커차를 만들었다. 레커차가 생기고 난 뒤 손님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고장난 차량을 수리하는 동안 다른 차를 임시로 대여해주기도 했다. 사고 차량을 사들여 수리한 다음 ‘킴스오토’라는 로고를 새겨 대여용으로 활용했다. 한국의 신용카드 회사들이 많이 쓰는 캐시 백과 같은 영업 방법도 도입을 했다. 손님도 급증했다.

▲보츠와나 진출을 원하는 한국 기업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분야는.

-지금 보츠와나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국민들에게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는 서비스들, 그 가운데에서도 전자정부사업에 특히 관심이 많다. 인터넷으로 민원을 신청하거나 안내를 받고, 정부가 보유한 민원 정보를 인터넷으로 통합해 행정기관끼리 공유하고, 더 나아가서 전자상거래도 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이 시행하고 있는 전자정부 사업에 대해 보츠와나 정부는 매우 매력 있게 보고 있다. 현재 보츠와나에서는 서류 하나를 발급 받기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이 같은 불편을 선진기술 도입을 통해 해결해 보자는 것이 보츠와나 정부의 입장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운전면허 시험제도다. 보츠와나에서는 면허시험 접수를 하면 언제 필기시험을 보게 될지 기약이 없다. 이론시험을 보고 실기, 주행시험까지 보통 1년 이상이 걸린다. 현재 운전면허시험장 건설에는 현재 한국기업이 참여해 공사를 하고 있다. 이 업체는 면허시험장을 건설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스템 구축과 관리 등을 맡게 된다. 보츠와나는 앞으로도 7-8곳의 면허시험장을 추가적으로 건설할 예정이다.

▲보츠와나 한인회장으로서 포부는 무엇인가.

-보츠와나 한인회는 1991년 창립됐다. 단결과 화목을 앞세우는 교민회를 넘어서 우리 교민이 보츠와나에서 생활할 때 권리를 보장받고,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민간 외교 차원의 노력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교민 자녀들이 모국을 알고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모국의 발전상도 직접 보고, 모국애도 키우기 위해 모국 방문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한인회 간부들이 솔선수범을 하고 있고 교민들도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최근에는 앞을 보지 못하는 청소년들과 어린아이들에게 개안 수술비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앞을 보게 된다는 것은 인생을 바꾸는 일이기도 하고, 희망을 만들어 가는 일이기도 하다. 어둠만을 알고 지내던 사람이 빛을 보고, 앞날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미래를 보는 과정이다. 아프리카는 가난, 병마, 내전, 가뭄과 싸우는 곳이 아닌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한국 사람으로서, 보츠와나 시민으로서 한 사람의 희생과 노력으로 두 나라의 관계가 얼마나 돈독해질 수 있는지 증명해 보이고 싶은 것이 마지막 욕심이다./최환준 기자 choihj@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