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전라도 정명 천년을 기념하는 날이다. 전라남도·전라북도·광주광역시가 한마음으로 ‘전라도 천년 기념식’을 갖고 새로운 전라도 천년의 비전을 약속한다고 한다.

전라도가 천년의 역사를 무궁하게 지켜온 뒤에는 수많은 선조들의 희생이 있었다. 지역을 위해,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정의를 위해 무참히 죽어간 이들이 있었다. 역사사건에 의해 희생된 억울한 원혼들이 전라도에는 유독 많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원혼들도 아직 다 달래지 못했지만, 필자는 전라도 천년을 기념하며 유독 ‘여수 순천 10·19사건’의 희생자들이 마음에 걸린다. 이들의 억울함을 달래주지 않고 전라도 천년 역사를 기념할 수 있을까.

‘여수 순천 10·19사건’은 1948년에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하던 군부대의 군인들이 제주4·3사건 진압을 거부하며 일으킨 사건이다. 8·15광복 이후 좌익과 우익이 대립하는 어지러운 정치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 이 비극적인 현장이 여수와 순천이었다.

1948년 4월3일 제주도에서는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민중 봉기가 일어났다. 군과 경찰이 봉기를 강경 진압하자, 봉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한라산으로 들어가 저항했다. 이승만 정부는 1948년 10월에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4연대를 제주4·3 사건 진압을 위해 파견하기로 했다. 그러나 제14연대의 일부 군인들은 출동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친일파 처벌과 남북통일 등을 주장하며 들고일어나 여수와 순천을 장악한 뒤, 주변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했다. 정부는 여수와 순천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미 군사 고문단의 협조 아래 반란군을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반란군은 물론이고 많은 민간인이 죽거나 다쳤다.

‘여수·순천10·19사건’은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를 남겼다. 대략 2,000-5,000여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재산 피해도 약 100억원, 가옥소실 2천호 가량으로 집계되었다. 이 사건은 정부 차원에서 정치적 위기감을 갖게 했고, 결과적으로는 이승만 대통령의 철권통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여수 순천10·19사건’을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일어난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라고 비난하며, 반란 주동에 직·간접적으로 관계되어 있던 좌파 계열에 대한 공세에 나섰다. 이에 더하여 김구를 비롯한 반이승만 계열의 우파도 사건의 주동자로 몰려 공격받았다. 국회에서도 위기감을 느껴 ‘국가보안법’을 1948년 12월1일에 제정하였는데, 이 법은 이승만 대통령의 권력 강화에 이바지하였다.

‘여수·순천 10·19사건’이 발생한 지 올해로 70년이 됐다. 그러나 70년 세월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실체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제주4·3사건이 없었다면 여순사건도 발생하지 않았을 터인데, 제주4·3은 특별법이 제정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여수·순천 10·19사건’의 원혼들은 아직도 억울해서 잠 못 들고 있다.

잘 알다시피 ‘여수·순천 10·19사건’은 여수와 순천에서 발생한 지엽적인 사건이 아니다. 제주4·3과 더불어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이다. 현대사의 질곡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 정부는 계엄령을 시행하고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 모병제는 징병제로 바뀌었다. 역사적 의미가 적지않다. 따라서 제주4·3의 연장선상에서 봐야한다. 제주4·3은 이미 2000년 1월에 특별법이 제정됐다.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기 위한 법이다. 특별법 제정으로 위령 묘역과 공원이 조성되고 위령탑, 기념관이 세워지는 등 정부 지원으로 다양한 사업이 진행됐다.

반면 ‘여수·순천 10·19사건’은 진상조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별법은 2001년 16대 국회 때 처음 발의됐으며 18대와 19대 국회에서도 각각 발의됐으나 임기만료로 자동폐기 됐다. 20대 국회 들어서는 작년 4월 민주평화당 정인화의원이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계류 중이다. 17년째 표류하고 있는 셈이다.

70년 되는 올해는 꼭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전남 동부 지역 시민사회단체 100여 개로 구성된 ‘여순항쟁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지난 8월 출범했다. 이 모임은 지난 5월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을 묻는 서면 질의를 했다. 국방부는 ‘여순사건에 대한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존중하며, 과거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해방 후 한국현대사는 갈등과 희생으로 점철했다. 정쟁으로 인해 산하 처처에 원통한 주검들이 널렸다. 아직도 신원되지 않은 혼령들은 유족들의 포원을 앞세워 배회하고 있다. 이제 국가가 이들을 위로할 때가 되었다. 먼저 원혼들에게 용서를 빌고 화해를 청하고 그 희생을 제대로 조명해야 한다. 학살의 원인과 경과, 학살자들을 찾는 것,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는 것, 곧 시작해야 한다.

전라도 정명 천년을 맞으면서, 지역민들이 가장 관심 가져야 할 아픈 손가락은 바로 ‘여수·순천 10·19사건’이다.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라도 꼭 특별법이 제정돼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반도 평화에 전 세계인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2018년이다. 남북화해라는 큰 길로 나기기 전에, 우리 안의 상처 싸매는 일 먼저 해야 하지 않겠나.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