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들불야학 터 바로 옆에는 광천시민아파트가 있다. 고단했던 70년대, 광주 노동자들의 거주지이자 들불야학의 강학들이 살았던 곳이다. 그 역사적인 장소는 이제 ‘그저 오래되고 낡아서 새로 재개발해야 되는’ 정비의 대상이 되어있다. 광천시민아파트는 윤상원, 박기순 열사가 가난한 노동자들과 함께 살았던 곳이고, 함께 공부하고 ‘오월광주’를 버티게 한 대동세상정신의 근원지 중 한 곳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어떤 가치보다도 돈이 먼저다. 건축허가도 심의도 모두 통과되어 이제 곧 밀어버리고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대단지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고 하니, 광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이 장소를 어떻게 기억할까? 생각하게 되었다. 보존 방법이 없다고 하는데,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 의지가 없는 걸까? 나는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 대단지 아파트 내 공원 부지를 설계할 때, 광천시민아파트를 포함시켜서 녹지를 조성하도록 했다면 한 개 동 정도는 보존해서 문화공원으로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무더웠던 지난 여름, 예술게릴라가 되어 토요일 오후에 광천시민아파트에서 예술가 친구들과 퍼포먼스를 했다. 뉴욕에 가기 전에 하루는 윤상원이 되어서 접신을 해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오월 아리랑-광주에서 온 선물’을 주제로 ‘평화’를 표현하기 위해 뉴욕이라는 문화 헤게모니의 중심부로 가는 것! 먼저, 광주에서 없애버려야 한다고 하는 낡은 아파트, 광천시민아파트를 찾았다. 그리고 현장에서 무용가는 춤을 추며 윤상원과 박기순 열사를 기억했고, 음악가는 연주로, 화가는 드로잉퍼포먼스로 윤상원 열사를 기억했다. 그들의 정신을 생각하며 퍼포먼스로 의식을 치렀다. 나는 세 명의 윤상원을 탁본형식으로 먹물을 찍어서 4.5m 흰 천위에 반복해서 그리고, 윤상원이 살아있다면 어떤 말을 할까를 생각하며 붓으로 글을 썼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해서 하루 동안 윤상원이 되어 보았다. 드로잉퍼포먼스로 완성된 세 명의 윤상원은 강렬한 느낌으로 완성되었다. 나는 그 작품을 돌돌 말아서 뉴욕으로 가져갔고, 유니언스퀘어에서 완성했다.

유니언스퀘어는 연합국을 기념하는 공원이다. 그곳에 우리가 평화를 표현하러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공원 풀밭에서 그야말로 느긋한 모습으로 앉아 노닐며 오후를 즐기고 있었고, 달력 사진 속으로 들어온 듯 평화로웠다. 작곡가가 기념탑 앞에서 건반을 꺼내서 연주하자 흰 드레스를 입은 플룻연주자의 공연이 시작됐다. 기념탑 주변으로 공연을 보러 날아드는 새들은 어디서 그렇게 왔을까? 그리고 한 명 두 명 사람들이 모였다. 공원에서 펼쳐지는 독주회! 그 주변에 둘러서 우리들은 천을 펼치고 그림을 그렸으며 춤꾼은 자연스럽게 춤을 췄다. 평화의 메시지를 적고 가는 미국 시민들과 강아지와 산책을 나온 동네 사람들은 이 뜻밖의 공연을 일상의 선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름다운 ‘멈춤’이 이곳에서도 일어났다. 나는 광천시민아파트에서 게릴라퍼포먼스로 그려온 세 명의 윤상원을 펴 놓고 앉아 눈을 감았다. ‘만약 윤상원열사가 살아서 우리 시대에 이곳에 와 있다면 피리를 불었겠지? 그리고 이 그림에 무슨 말을 남길까?’ 나는 붓을 들어 맨 위 여백에 써내려갔다. “아직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이 작품은 이렇게 뉴욕의 유니언스퀘어에서 완성되었다. 독주회와 걸개그림 퍼포먼스가 끝나자 우리는 기념탑이 있는 공원에서 나와 계단이 있는 광장으로 나왔다. 그곳은 지하철 입구가 바로 곁에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으며, 한 쪽에서는 젊은 흑인이 춤을 추고 중앙에서는 광신도처럼 보이는 남자가 싸구려 마이크를 들고 설교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다. 내 눈에는 이러한 모든 행위가 예술로 보였다. 특이한 머리모양으로 지나가는 흑인 소녀까지도 모델의 런웨이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그 시끄러움 속에 자리를 잡았다. 소음 속에서 건반을 꺼내 연주하고 자화상을 잘라 꽃을 만들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손목에 묶어주며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었다. 손목에 장미꽃을 묶은 바이올리니스트는 활을 잡고 연주했고, 손목에 장미꽃을 묶은 플룻연주자는 손에 경련이 일어나는 듯 연주했다. 이번에는 전체가 즉흥이었다. 서로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이 소음을 음악으로 만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나가던 빠른 걸음들이 느려지더니 멈추기 시작했고, 참여 작가들은 연주에 맞추어 유니언 광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플래시몹을 했다. 광장에서 함께 추는 춤은 유니언스퀘어의 시공간을 ‘우연에서 필연’으로 만들었다. 우리가 뉴욕의 광장에서 창조한 광주정신은 이렇게 눈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