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원로정치’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어떤 이들은 ‘올드보이의 귀환’이라 꼬집기도 한다. 4개 정당 대표가 모두 60대 중·후반, 70대로 포진하면서 나온 얘기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 평화당 정동영 대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을 두고 한 말이다.

어찌보면 문재인 정부 2기 국정을 입법으로 뒷받침해야 할 여당, 견제세력의 존재감을 보여줘야 할 야당 대표가 ‘새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 중 이해찬·손학규·정동영 대표는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경선에 함께 나선 인연이 있고, 당시 김병준 위원장은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이었기 때문에 참 기묘한 인연들이다.

서민경제가 고통스러운 수준이고 남북관계를 잘 풀어야 할 중요한 시기인지라 ‘올드보이’ 감각으로 되겠느냐는 비판에 대해 ‘정치는 나이가 아니라 정책으로 말하는 것’(이해찬) ‘개혁의지가 올드보이와 골드보이의 가늠자’(손학규) ‘올드보이 아닌 베테랑의 귀환’(정동영)이라고 맞받아친 이들은 과연 경륜이 지배하는 새로운 정치의 장을 열어갈 것인가.

흔히 ‘원로가 필요하다’고 할 때는 우린 오랜 경륜·덕·위엄의 지혜를 빌리고 싶어서다. 덕과 위엄은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 윗사람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덕만 있으면 사람 좋다는 소리야 들을 수 있겠지만, 위엄이 서지 않는다. 위엄만 내세우고 덕이 없으면, 겉으로는 어쩔 수 없이 견뎌도 속으로는 반발한다. 나중에는 잔소리 없이는 되는 일이 없게 된다. 결국 바른 말 하는 사람은 떠나고 아첨하는 사람만 남는다. 어쩌면 ‘올드보이’라고 염려할 때, 위엄만 있고 덕이나 지혜가 없을까봐 우려하는 거다.

미국의 전쟁 영웅인 맥아더 장군이 즐겨 애송한 시 ‘청춘’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젊은이다운 패기와 열정이 있으면 노인이 아니다’는 것을 강조했다.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 그대가 젊어 있는 한 예순이건 열여섯이건 가슴 속에는 경이로움을 향한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과 인생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

특히 네 사람 모두 지난 정치역정이 한국민주화에 앞장섰던 것이라면, 이제 한국민주주의를 살찌우기 위한 ‘경제’에 많은 관심을 갖기 바란다. 경험이 많을수록 신중하며 혜안이 생기는 법이니까. 필자는 4당의 대표가 현재 한국정치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용기와 열정을 가지고 현안을 타계하겠다는 리더십이 있다면, 그들의 충고와 훈계가 ‘몸에 쓴 좋은 약’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철저한 권리와 의무의 철학과 투철한 역사의식 그리고 사심 없는 균형 감각으로 시대를 통찰하는 혜안을 지닌 정치 원로가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에 원로들을 대표로 뽑은 게 아닐까.

국정은 선택과 집중이다. 여론 소통·수렴은 필수적이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과거를 잊지 말되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 정부의 인재도 등용했다. DJ 자신은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국민들에게 통합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들과 국정 경험을 나누면서 국난 극복의 지혜를 얻고자 했다’

필자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20년 집권플랜’을 제시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성장모델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돼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열게 할 것’이라는 말을 눈여겨본다. 이 대표는 ‘제가 생각하기로는 앞으로 20년 정도,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크게 다섯 가지 정도가 있다’며 ‘이 중 핵심은 역시 경제’라고 강조했다. 가장 어려운 과제로 ‘민생’을 꼽고 ‘경제’를 얘기한 것인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점이 다행이다.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한계상황을 맞은 가운데 여당 대표가 ‘경제’에 우선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7월 지난해 동기 대비 취업자 증가가 5000명에 그쳤다. 취업자 증가율이 사실상 0%다.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취업자가 급격히 감소했던 2010년 1월 이후 최저치다. 취약계층의 실업이 많아 2분기 5분위 소득배율이 5.23배로 증가했다. 빈부격차가 10년 만에 최악이다. 정부는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지난해와 올해 무려 54조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했다. 본예산 36조원, 추가경정예산 14조8000억원, 고용안정자금 3조원 등이다. 그러나 고용시장은 거꾸로 마비상태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긴박한 고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내년에 최소 22조5000억원의 예산을 추가 투입할 예정이다.

최근 당정이 570만명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해 7조원 가량 지원을 약속했다. 국세청은 내년 말까지 세무조사를 유예하고 체납액도 소멸시켜주겠다고 한다. 국민이 먹고 살기 힘들면 천하의 누가 정권을 운영하더라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경제를 무시한 정권의 말로는 늘 참담했다는 걸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당 대표가 경제 실정을 청와대와 정부 탓으로 돌리면서 피해가는 것은 하수다. 당정청이 공동운명체다. 야당 대표도 마찬가지다. 경제실패는 모두 정부와 여당 탓이라며 비판할 상황은 아니다. ‘대립정치’를 통해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여당의 경제정책에 발목만 잡는다면 국민의 원망이 야당으로 향할 것이다.

원컨대, 각료로 국정참여 경험이 풍부하고, 동지로도 함께 했던 이해찬·손학규·정동영대표, 김병준위원장의 경륜이 서로 조화를 이뤄, 서민의 경제고통 눈물을 빨리 닦아주시길.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