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 충·의사의 날 수필 고병균
- 재생 준비중
2018. 08. 27(월) 18:40 가+가-
2018년 7월 12일(목)은 음력 5월 29일이다. 그날 10시,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 소재 ‘광주·전남 충·의사 호국충혼탑’ 앞에서 추모제가 진행되었다.
탑은 한가운데 지구모양의 동그란 구조물이 있고 그것을 감싼 물방울 모양의 탑이 높게 서 있으며 거기에 ‘光州全南(광주전남) 忠義士(충의사) 護國 忠魂塔(호국 충혼탑)’이란 글자도 있다. 탑의 뒷부분 가장자리에는 손가락 모양의 다섯 기둥이 있는데, 각기둥에 官民一體 湖南義氣(관민일체 호남의기) 老少合心 救國忠節(노소합심 구국충절) 若無湖南 是無國家(약무호남 시무국가) 無名民草 殉國忠魂(무명민초 순국충혼) 無比義兵 護國精神(무비의병 호국정신) 등 여덟 글자로 이루어진 한자가 보인다. 이 중 이순신 장군이 남긴 若無湖南 是無國家(약무호남 시무국가)를 제외한 다른 말을 이해하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
탑은 장흥고씨 문중의 땅을 제공받아 2015년에 완공되었으며, 이때로부터 추모제를 개최하여 금년으로 제4회를 맞는다.
주관 단체인 ‘사단법인 광주·전남 충의사 현창회’는 행사를 매우 엄숙하게 거행한다. 행사를 진행하는 분들이 ‘조선 5란’이란 말을 자주 언급했는데, 이 말은 조선시대에 일어난 5번의 국난으로 임진(1592년) 정유(1597년) 왜란, 정묘호란(1627년), 병자호란(1636년) 등 3번의 외침과 이괄의 난(1623년), 정희량과 이인좌가 일으킨 무신년(1728년)의 난 등 2번의 내환을 의미한다.
이런 난리가 일어나면 우리 백성 중에는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다 장렬하게 순절한 분들이 많다. 현창회는 이런 분들을 발굴하여 충의사라고 명명하였는데, 광주·전남 지역 출신만 해도 무려 2,149명이나 된다.
추모제는 이들 충의사의 영령을 기리는 행사다. 그런 이유에서 담양군수를 대신하여 부군수가 참석하였고, 국회의원도 세 분이나 참석했다. 특이하게도 군 장병까지 참석하여 조포 대용으로 7발의 공포탄을 발사하였다.
나는 충혼탑 뒤편 벽면에서 충의사의 성명과 본관, 출진 지역 등을 난(亂)별로 정리하여 빽빽하게 새겨 놓은 것을 보았다. 임진 정유 왜란 1,402위, 이괄의 난 195위, 정묘호란 23위, 병자호란 463위, 무신년의 정희량 이인좌란 66위 등 엄청나게 많은 이름 중에 아주 반가운 이름을 보았다. 나의 직계 선조인 임진왜란의 의병장 고경명과 그의 차남 고인후이다. 뿐 만 아니라 그의 동생 고경신, 고경형, 장남 고종후 등의 이름도 보인다. 그 이름을 읽어가다 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난리가 나면 관군이 앞장서서 진압해야 한다. 그러라고 나라에서 녹을 준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우리 관군은 도망가기에 바빴다. 이런 상황에서 고경명은 의병을 일으켰다. 마상(馬上)에서 쓴 격문을 호남 일원에 뿌리며 의병을 모집했는데 무려 6,000여명이 모여들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런 일에는 싸움에 능한 무인(武人), 혈기 왕성한 젊은이가 나서야 한다. 그런데 의병으로 나선 고경명은 문인이지 무인이 아니다. 따라서 병법(兵法)을 알 리 없다. 더구나 당시 나이 60세로 꼬부랑 할아버지다. 이런 분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금산 전투에 나가게 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요, 잘못된 일이다. 한 마디로 비정상적인 사회의 현상이다.
결국 전투에서 패했다. ‘후퇴하자’는 참모의 건의가 있었지만, 고경명은 ‘패군장은 죽는 길 밖에 없다.’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그의 동생 경형, 아들 인후, 가문의 종 봉이와 귀인까지 한꺼번에 순절했다. 그 거룩한 삶이 가슴에 사무친다.
날씨가 무척이나 덥다. 천막 아래 있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사회자는 ‘제2회와 제3회 행사 중에 비가 많이 내렸다.’고 회고하며 그래도 다행이라고 말한다. 왜 하필이면 이런 날을 택하여 ‘충의사의 날’로 정했을까? 현창회는 ‘고제봉(고경명의 호) 선생님께서 담양 추성관에 의병청을 설치하여 창의한 날인 음력 5월 29일을 호국충의사의 날로 정’했다고 설명한다. 나의 입장에서는 기분 좋은 결정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군 장병은 삼일사단의 녹천부대 소속이다. 부대 명칭 ‘녹천’은 고인후의 후손으로 한말에 창평에서 창의한 의병장 고광순의 호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고경명, 인후 부자(父子)가 보여준 충의정신이 핏줄을 타고 300년을 흘러 내려와 후손 고광순에게서 다시 나타났다. 장흥고씨 가문이 진정한 충의사 가문임을 의미한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온다. 뜻하지 않게 참석한 ‘충의사의 날’ 행사가 나로 하여금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게 했다. 또 한편 충의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추모제를 지내는 것도 소중하지만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도 깨닫게 했다. 그것은 이런 국난이 아예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내가 살아온 현대사에서만 해도 피비린내 나는 외침을 당했었고, 국민 상호간에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내환도 수차 경험한 바 있다. 그 요인이 상존한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약력> 1946년 장흥 출생, 전직 초등학교 교장, 월간 한비문학 수필 등단(2015), 계간 동산문학 시 등단(2016), 제8회 가오문학상 수필부문 대상(2016), 광주시문인협회 회원, 저서수필집 ‘학교,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1, 2수필집 ‘소록도 탐방기’.
탑은 한가운데 지구모양의 동그란 구조물이 있고 그것을 감싼 물방울 모양의 탑이 높게 서 있으며 거기에 ‘光州全南(광주전남) 忠義士(충의사) 護國 忠魂塔(호국 충혼탑)’이란 글자도 있다. 탑의 뒷부분 가장자리에는 손가락 모양의 다섯 기둥이 있는데, 각기둥에 官民一體 湖南義氣(관민일체 호남의기) 老少合心 救國忠節(노소합심 구국충절) 若無湖南 是無國家(약무호남 시무국가) 無名民草 殉國忠魂(무명민초 순국충혼) 無比義兵 護國精神(무비의병 호국정신) 등 여덟 글자로 이루어진 한자가 보인다. 이 중 이순신 장군이 남긴 若無湖南 是無國家(약무호남 시무국가)를 제외한 다른 말을 이해하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주관 단체인 ‘사단법인 광주·전남 충의사 현창회’는 행사를 매우 엄숙하게 거행한다. 행사를 진행하는 분들이 ‘조선 5란’이란 말을 자주 언급했는데, 이 말은 조선시대에 일어난 5번의 국난으로 임진(1592년) 정유(1597년) 왜란, 정묘호란(1627년), 병자호란(1636년) 등 3번의 외침과 이괄의 난(1623년), 정희량과 이인좌가 일으킨 무신년(1728년)의 난 등 2번의 내환을 의미한다.
이런 난리가 일어나면 우리 백성 중에는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다 장렬하게 순절한 분들이 많다. 현창회는 이런 분들을 발굴하여 충의사라고 명명하였는데, 광주·전남 지역 출신만 해도 무려 2,149명이나 된다.
추모제는 이들 충의사의 영령을 기리는 행사다. 그런 이유에서 담양군수를 대신하여 부군수가 참석하였고, 국회의원도 세 분이나 참석했다. 특이하게도 군 장병까지 참석하여 조포 대용으로 7발의 공포탄을 발사하였다.
나는 충혼탑 뒤편 벽면에서 충의사의 성명과 본관, 출진 지역 등을 난(亂)별로 정리하여 빽빽하게 새겨 놓은 것을 보았다. 임진 정유 왜란 1,402위, 이괄의 난 195위, 정묘호란 23위, 병자호란 463위, 무신년의 정희량 이인좌란 66위 등 엄청나게 많은 이름 중에 아주 반가운 이름을 보았다. 나의 직계 선조인 임진왜란의 의병장 고경명과 그의 차남 고인후이다. 뿐 만 아니라 그의 동생 고경신, 고경형, 장남 고종후 등의 이름도 보인다. 그 이름을 읽어가다 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난리가 나면 관군이 앞장서서 진압해야 한다. 그러라고 나라에서 녹을 준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우리 관군은 도망가기에 바빴다. 이런 상황에서 고경명은 의병을 일으켰다. 마상(馬上)에서 쓴 격문을 호남 일원에 뿌리며 의병을 모집했는데 무려 6,000여명이 모여들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런 일에는 싸움에 능한 무인(武人), 혈기 왕성한 젊은이가 나서야 한다. 그런데 의병으로 나선 고경명은 문인이지 무인이 아니다. 따라서 병법(兵法)을 알 리 없다. 더구나 당시 나이 60세로 꼬부랑 할아버지다. 이런 분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금산 전투에 나가게 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요, 잘못된 일이다. 한 마디로 비정상적인 사회의 현상이다.
결국 전투에서 패했다. ‘후퇴하자’는 참모의 건의가 있었지만, 고경명은 ‘패군장은 죽는 길 밖에 없다.’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그의 동생 경형, 아들 인후, 가문의 종 봉이와 귀인까지 한꺼번에 순절했다. 그 거룩한 삶이 가슴에 사무친다.
날씨가 무척이나 덥다. 천막 아래 있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사회자는 ‘제2회와 제3회 행사 중에 비가 많이 내렸다.’고 회고하며 그래도 다행이라고 말한다. 왜 하필이면 이런 날을 택하여 ‘충의사의 날’로 정했을까? 현창회는 ‘고제봉(고경명의 호) 선생님께서 담양 추성관에 의병청을 설치하여 창의한 날인 음력 5월 29일을 호국충의사의 날로 정’했다고 설명한다. 나의 입장에서는 기분 좋은 결정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군 장병은 삼일사단의 녹천부대 소속이다. 부대 명칭 ‘녹천’은 고인후의 후손으로 한말에 창평에서 창의한 의병장 고광순의 호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고경명, 인후 부자(父子)가 보여준 충의정신이 핏줄을 타고 300년을 흘러 내려와 후손 고광순에게서 다시 나타났다. 장흥고씨 가문이 진정한 충의사 가문임을 의미한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온다. 뜻하지 않게 참석한 ‘충의사의 날’ 행사가 나로 하여금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게 했다. 또 한편 충의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추모제를 지내는 것도 소중하지만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도 깨닫게 했다. 그것은 이런 국난이 아예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내가 살아온 현대사에서만 해도 피비린내 나는 외침을 당했었고, 국민 상호간에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내환도 수차 경험한 바 있다. 그 요인이 상존한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약력> 1946년 장흥 출생, 전직 초등학교 교장, 월간 한비문학 수필 등단(2015), 계간 동산문학 시 등단(2016), 제8회 가오문학상 수필부문 대상(2016), 광주시문인협회 회원, 저서수필집 ‘학교,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1, 2수필집 ‘소록도 탐방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