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가보면 내가 있는 곳이 제대로 보인다. 뉴욕에서 본 광주의 5월정신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순수했다. 뉴욕은 인간욕망이 불타는 자본의 중심이고 특히 첼시는 현대미술에 있어서 세계의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첼시에서의 개인전을 준비하며 ‘나는 뉴욕에 무엇을 가져갈까?’를 생각했다. 내가 주로 하고 있는 샌드애니메이션과 드로잉퍼포먼스 작업 중 ‘얼굴’시리즈의 일부를 갤러리에서 전시하기로 했다.

나는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활동하는 작가다. 그리고 1980년 5월, 죽음의 현장을 목격한 세대다. 그래서 ‘오월 광주’는 필연적으로 내 작업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1년 전부터 ‘오월 광주의 정신’에 그동안 순수하게 함께 한 예술가들에게 뉴욕의 광장에서 걸개그림도 그리고 춤도 추고 연주도 하면서 뉴욕여행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매년 5월이면 광주의 민주광장에서 걸개그림을 그리고 창작퍼포먼스를 하면서 ‘평화’를 꿈꿨듯이 뉴욕의 타임스퀘어나 911메모리얼 파크, 유니언 스퀘어 같은 광장에서 민주광장에서 했던 예술적 발언을 각자 하고 오는 것이었다. 혼자 개인전을 하고 오는 것은 별로 재미가 없으니까. 이 일은 국비나 시비의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후원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받아보려고 했으나 광장에서 하는 행사는 지원 받기가 어려웠다. 티켓을 팔거나 폼이 나는 행사가 아니었기에 더욱 외부의 지원이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각자 비용을 부담하고 함께하게 되었고 게다가 미국 광장에 사용 허가를 받거나 기관의 초대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뉴욕의 한 복판 광장에 ‘광주정신과 평화’를 주제로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초대하고 창작행위를 하는 일이었다. 대부분 가난한 광주의 예술가들이었다. 정말 순수한 열정의 피가 흐르지 않으면 머리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핑계를 대며 ‘내가 왜 돈도 안 나오는 일을 내 돈을 내고 시간을 내서 미국 여행도 아니고 광주와 평화를 이야기 한단 말인가?’하며 접었을 것이다. 일단 함께하기로 한 예술가들이 저렴한 뉴욕 행 왕복권을 구입하고 1년 전부터 돈도 모으고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도 생각했다. 무모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5월, 5·18기념재단에서 주관하는 ‘100인의 오월정신릴레이아트’ 행사에서부터 뉴욕 행을 본격적으로 함께 준비했다. 이 행사는 광장예술퍼포먼스의 모태가 되기 때문에 뉴욕에 가져갈 주제와 맥락도 관통하고 있어야만 했다. 뜨거운 5월 광장에서 비닐을 깔고 행사장을 준비하고 청소하는 고된 일을 용역을 시키지 않고 작가들이 직접 해서 인건비를 모았다. 우리들의 뉴욕 행 공동경비는 이런 식으로 행사장에서 일하고 그 인건비를 모아서 만들어진 것이다. 광주정신으로 뉴욕을 가는 게 도대체 뭐라고 이렇게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고 했는지 함께한 예술가들의 열정과 자발적 힘이 놀랍다. 우리는 모일 때마다 뉴욕광장에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 토론했다. 그림을 그린다면 무엇을 그릴 것이며, 춤을 추거나 행위예술을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연주를 한다면 어떤 악기로 무슨 곡을 할 것인지…. 끝나지 않는 토론을 하며 결국 자기 자신이 왜 뉴욕에 가야하며 그곳에서 창작하고 발표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들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함께 가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의 집합이었다. ‘광장’에서 작업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도 있었고 두세 명을 제외하곤 미국행이 처음이었다. ‘뉴욕 한 복판에서 당신은 거리의 예술가로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건가요?’ 내게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던졌다. 결국 광주정신과 평화다. 그래서 정해진 큰 주제는 ‘오월 아리랑-광주에서 온 선물’로 정했고 각자 평화를 키워드로 어떤 작업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서 각 광장마다 자신의 창작 작업을 하기로 했다. 7월31일 첫 번째 광장은 타임스퀘어.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광장에 가득 모이고 흩어지는 곳, 미디어파사드와 전광판의 광고가 세상에서 가장 현란한 곳이다. 타임스퀘어의 주제는 ‘다름과 평화’였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평화는 오는 것이다. 그래서 평화의 걸음은 다름에서 오는 갈등을 품고 가는 것, 늘 변화하는 상황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며 그것을 긍정의 에너지로 바꾸는 것, 상처를 창조로 바꾸는 내공이 전제되는 것이었다. 도착하자마자 경찰의 저지를 받았고 테러리스트가 아닌 것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연주하고 춤을 추고 그림을 그렸다. 계속해서 경찰이 해산을 요구하자 우리 팀의 한 친구가 “우리는 평화를 표현합니다. 당신에게 평화는 무엇인가요?”하고 질문을 했다. 경찰의 답은 “당신들이 해산하는 것이 내겐 평화다.”라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타임스퀘어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플레시몹을 하고 오히려 경찰은 우리들을 지켜주고 예술가들과 기념촬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