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 추천, ‘영문편지 정신’에 답이…
나의갑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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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8. 19(일) 18:06 가+가-
오래된 시간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얼굴 없는 편지’에선 38년 전 그날의 봄이 쩍, 하고 갈라지는 얼음장 소리를 내고 있었다. 편지는 그걸 ‘위기’라 적는다. 피 흘리는 광주를 편지는 철철 울지 않는다. 편지의 펜이 단아하다는 말이다. “당신과 같은 외국기자들이 우리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의 주요 장면들을 놓쳤을까 두렵습니다”라는 편지의 첫머리는 흡사 수신자의 어깨를 내려치는 죽비 소리 같다. 문맥이 깔끔하게 정렬된 편지는 앞글이 뒷글을 ‘어서 빨리’ 불러온다. 성질 급한 사람은 앞줄을 읽다 뒷줄로 넘어갈 수 있을 만큼이다.
이 글이 편지를 차용한 이유에 관해 말할 대목에 이른 거 같다. 진솔해보자. 그 난리통에 당신 같으면 그런 편지 쓸 수 있었겠나? 무슨 경황이 있다고, 들통 나면 죽을 영금을 볼 것인데…. 보통 영혼이 아니고서는 엄두도 못 낼 상황이지 않은가. 그 커다란 광주의 비극을 A4 용지 6장에 용맹스럽게 담아 ‘외국특파원님께’ 전해지도록 한 것도 탄복이려니와 그 고결한 논조에 압축정리 솜씨는 또 어떤가. 그지없이 청아한 ‘편지정신’에 기대어 위쪽 배지님들께 광주의 심경을 고하기 위해 편지를 끌어왔다.
광주는 지금 하루하루 애가 타고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낼모레면 5·18진상조사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9명) 추천권을 갖고 있는 배지님들한테서 당최 낭보가 들어오지 않고 있어 그렇다. 위원회라는 건 뭣 하는 덴가. 진상조사를 총지휘하는 컨트롤타워다. 지휘봉이 션찮으면 연주를 망칠 수 있듯, 위원 구성이 부실하면 ‘규명’이 아니라 배를 산 쪽으로 끌어갈 수 있다 함에 유의할 일이다. 위원들을 빨리 추천하는 것도 요긴하지만, 기왕에 늦은 김에 에디슨 같은 ‘발명정신’과 노다지를 캐내겠다는 ‘발굴정신’을 가진 이들을 구하라는 것이 광주의 소원이다. 다시 편지를 읽는다. 편지의 ‘결심’ 단락에 이르면 그 엄중함에 압도되어 고개부터 숙여진다. “저는 광주에 사는 여성 시민입니다. 몇 해 전에 서울대학교를 졸업했고, 근년에는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력과 밑에 노출된 제 사진을 걸고 저는 계엄당국이 저를 알아보고 체포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서릿발 같은 편지의 결기 앞에, 광주가 전두환이한테 ‘디지게’ 맞고 있을 때 ‘직업적 구경꾼’(기자를 일컬음)이었을 따름인 나, 이 사람에겐 차라리 수모였다.
지난 5월16일, 두 신문이 ‘1980년 5월23일 오후 6시’에 쓴 편지를 배달해주었다. 처음엔 ‘80년 광주 참상 해외로 알린 시민 영문편지 첫 공개’, ‘5·18 참상 세계에 알린 그 소녀를 찾습니다’라는 두 신문의 주제목만 보고 서로 다른 기사인 줄 알았으나, 제목의 ‘여성 시민’과 ‘소녀’는 동일인이었다. 편지는 일본으로 공수되었고, NHK 공영방송에서 5월26일 ‘계엄령하의 광주’란 제목을 달아 맨 처음 공중에 띄웠으며, 이후 미국으로, 유럽으로 건너가 광주를 알렸다.
편지는 성적으로 치면 ‘우등상감’이다. 그 하나는 5·18 현장에서 광주사람이 쓴 최초의 육필 영문편지라는 것, 그 둘은 ‘참혹한 광주’가 일본 NHK 방송 등 언론매체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로 전파되었다는 것, 그 셋은 그 동안의 5·18 연구물과 편지의 내용을 견주어 볼 때 광주의 ‘실상’(전남도청 앞 광장 집단발포 시각 21일 오후 1시께 등)과 다른 대목이 거의 없다는 것, 그 넷은 전두환을 박정희의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광주의 짓밟힘을 ‘소수 반역자가 벌인 비극’으로 규정한 것, 그 다섯은 “전두환이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는 유일한 길은(…) 철권통치를 하는 것밖에 없다”는 등 5·18 이후의 정세진단이 탁월하다는 것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그 얼굴을 찾아 ‘5·18 공로상’이라도 쥐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낭보가 늦어지고 있는 건 아마도, ‘우등상감’ 위원을 찾느라 그럴 것이다. ‘우수상감 위원’이라야 ‘우수상감 진상조사’를 할 수 있다는 배지님들의 강한 의지 때문 아니겠는가, 광주는 그리 믿어둔다. 그 ‘우수상감 위원’의 모델로 ‘편지정신’을 추천한다. 죽비소리처럼 치열하고, 영혼이 꼿꼿하고, 단호한 결기에, 팩트 파악의 정확함에다, 정세 분석력까지 부족 없이 품고 있음에서다.
광주의 소망은 그걸로 만족하지 않는다. 5·18을 바라보는 시각이 삐딱한 사람은 사절한다는 것이며, 5·18 공부가 안 되어 있는 사람은 망건 쓰다 장 파할 수 있다는 것이고, 열정 없이는 구부러진 5·18을 바로잡을 수 없으므로 ‘결코 끌 수 없는 열정’의 소유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청원서가 과욕을 부리나? 하나 더 있다. 이희성 계엄사령관 뒤에 숨어 5·18을 실제로 지휘한 ‘총사령관’이 따로 있었다는 데 동의한 사람들을 위원으로 추천해주면 좋겠다. 많은 5·18 연구자들은 전두환을 그 총사령관으로 찍는다. 그리고 그가 사령관인 보안사령부가 5·18을 기획·공작·감독했다는 것이며, 공수부대 등 광주 투입 계엄군은 행동부대(조폭 조직으로 치면 행동대원)에 지나지 않았다고 연구 결과들은 증언한다. 광주에서 위원들을 검증하자는 소리가 안 나온다면 ‘잘한 추천’이 될 것이다.
광주는 지금 하루하루 애가 타고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낼모레면 5·18진상조사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9명) 추천권을 갖고 있는 배지님들한테서 당최 낭보가 들어오지 않고 있어 그렇다. 위원회라는 건 뭣 하는 덴가. 진상조사를 총지휘하는 컨트롤타워다. 지휘봉이 션찮으면 연주를 망칠 수 있듯, 위원 구성이 부실하면 ‘규명’이 아니라 배를 산 쪽으로 끌어갈 수 있다 함에 유의할 일이다. 위원들을 빨리 추천하는 것도 요긴하지만, 기왕에 늦은 김에 에디슨 같은 ‘발명정신’과 노다지를 캐내겠다는 ‘발굴정신’을 가진 이들을 구하라는 것이 광주의 소원이다. 다시 편지를 읽는다. 편지의 ‘결심’ 단락에 이르면 그 엄중함에 압도되어 고개부터 숙여진다. “저는 광주에 사는 여성 시민입니다. 몇 해 전에 서울대학교를 졸업했고, 근년에는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력과 밑에 노출된 제 사진을 걸고 저는 계엄당국이 저를 알아보고 체포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서릿발 같은 편지의 결기 앞에, 광주가 전두환이한테 ‘디지게’ 맞고 있을 때 ‘직업적 구경꾼’(기자를 일컬음)이었을 따름인 나, 이 사람에겐 차라리 수모였다.
지난 5월16일, 두 신문이 ‘1980년 5월23일 오후 6시’에 쓴 편지를 배달해주었다. 처음엔 ‘80년 광주 참상 해외로 알린 시민 영문편지 첫 공개’, ‘5·18 참상 세계에 알린 그 소녀를 찾습니다’라는 두 신문의 주제목만 보고 서로 다른 기사인 줄 알았으나, 제목의 ‘여성 시민’과 ‘소녀’는 동일인이었다. 편지는 일본으로 공수되었고, NHK 공영방송에서 5월26일 ‘계엄령하의 광주’란 제목을 달아 맨 처음 공중에 띄웠으며, 이후 미국으로, 유럽으로 건너가 광주를 알렸다.
편지는 성적으로 치면 ‘우등상감’이다. 그 하나는 5·18 현장에서 광주사람이 쓴 최초의 육필 영문편지라는 것, 그 둘은 ‘참혹한 광주’가 일본 NHK 방송 등 언론매체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로 전파되었다는 것, 그 셋은 그 동안의 5·18 연구물과 편지의 내용을 견주어 볼 때 광주의 ‘실상’(전남도청 앞 광장 집단발포 시각 21일 오후 1시께 등)과 다른 대목이 거의 없다는 것, 그 넷은 전두환을 박정희의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광주의 짓밟힘을 ‘소수 반역자가 벌인 비극’으로 규정한 것, 그 다섯은 “전두환이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는 유일한 길은(…) 철권통치를 하는 것밖에 없다”는 등 5·18 이후의 정세진단이 탁월하다는 것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그 얼굴을 찾아 ‘5·18 공로상’이라도 쥐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낭보가 늦어지고 있는 건 아마도, ‘우등상감’ 위원을 찾느라 그럴 것이다. ‘우수상감 위원’이라야 ‘우수상감 진상조사’를 할 수 있다는 배지님들의 강한 의지 때문 아니겠는가, 광주는 그리 믿어둔다. 그 ‘우수상감 위원’의 모델로 ‘편지정신’을 추천한다. 죽비소리처럼 치열하고, 영혼이 꼿꼿하고, 단호한 결기에, 팩트 파악의 정확함에다, 정세 분석력까지 부족 없이 품고 있음에서다.
광주의 소망은 그걸로 만족하지 않는다. 5·18을 바라보는 시각이 삐딱한 사람은 사절한다는 것이며, 5·18 공부가 안 되어 있는 사람은 망건 쓰다 장 파할 수 있다는 것이고, 열정 없이는 구부러진 5·18을 바로잡을 수 없으므로 ‘결코 끌 수 없는 열정’의 소유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청원서가 과욕을 부리나? 하나 더 있다. 이희성 계엄사령관 뒤에 숨어 5·18을 실제로 지휘한 ‘총사령관’이 따로 있었다는 데 동의한 사람들을 위원으로 추천해주면 좋겠다. 많은 5·18 연구자들은 전두환을 그 총사령관으로 찍는다. 그리고 그가 사령관인 보안사령부가 5·18을 기획·공작·감독했다는 것이며, 공수부대 등 광주 투입 계엄군은 행동부대(조폭 조직으로 치면 행동대원)에 지나지 않았다고 연구 결과들은 증언한다. 광주에서 위원들을 검증하자는 소리가 안 나온다면 ‘잘한 추천’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