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 찰밥은 당신만 싸왔어 수필 장영수
- 재생 준비중
2018. 08. 13(월) 19:21 가+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감기몸살이 따라붙더니 입맛까지 잃어버렸다. 약을 먹어도 듣지 않아 병원을 찾아갔다. 혹시나 하고 산부인과로 가니 임신 3개월이란다. 시간이 갈수록 입덧은 심해져 살아 있다는 것조차도 귀찮았다. 물 한 모금 마시면 하수구에 엎드려 노란 물만 토해내는 일이 내가 하는 일이었다.
퇴근한 남편은 누워만 있는 나에게 내일 체육대회가 있다며 중대 병사들의 점심밥을 준비하라고 했다. 자리보존하고 누웠지만 듣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 몸도 가누지 못하고 냄새 맡기도 힘든데 병사들 밥을 어떻게 하겠냐.”했더니 못마땅한 남편은 화부터 냈다. 다른 중대 사람들은 밥을 가져올 것인데 우리 중대만 굶을 수는 없지 않느냐 쐐기를 박았다. “당신 중대에도 결혼한 가족이 있을 거예요. 그 사람들한테 부탁 해봐요”하니 총각들이 많아 챙겨올 사람도 없거니와 부대 안에는 사 먹을 데도 없다며 준비해주지 않는다면 굶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부대 식당도 그날은 쉰다고 했다. 그 사람의 중대만 굶어야 한다는 말에 누워만 있을 수가 없었다.
체육대회 날 흰밥을 가져갈 수 없어 팥을 삶아 찹쌀로 밥을 지었다. 곤로 불에 조림 반찬을 얹어놓고는 석유 냄새가 역겨워 부엌에서 나와 담장을 등받이 삼아 앉아있었다. 정성을 들여야 할 반찬은 대충 준비를 했다. 몸이 귀찮으니 무엇부터 챙겨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낯선 곳에서 누구를 부른다는 것도 어려웠다. 보이는 대로 챙겨서 오전 9홉 시에 출발했다. 우리 집에서 부대까지는 20분 거리, 하지만 나는 한 시간 넘게 걸어가니, 정문 양쪽에는 군인 아저씨가 총을 메고 서 있었다. 얼굴에 핏기 없는 나는 힘없는 목소리로 “체육대회에 왔습니다.” 하니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서 “오늘 체육대회 하는 부대 없습니다.” 했다. 맑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그럼 이 남자가 나를 놀리려고 거짓말을 했단 말인가. 무거운 걸음으로 집으로 왔다. 요즘 같으면 공중전화도 있고 휴대전화도 있으니 전화하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지만, 그 당시는 일반전화도 없는 집이 많았었다. 집에 도착하니 주인 없는 빈방의 시계는 점심시간을 가리킨다. 선채로 되돌아 가 또 다른 부대가 있느냐고 물었다. 생기 없는 여자의 말이 귀찮았던지 퉁명스레 200m 아래 후문이 있다고만 했다. 고마운 마음보다 서러운 마음에 남편이 많이도 미웠다. 점심밥만 가져오라하지 말고 길도 가르쳐 주었으면 좋으련만. 얼마나 걸었을까 부대 후문이 보였다. 총을 메고 있는 병사는 “어느 부대를 찾으십니까?” 물었다. 부대가 하나인 줄만 알았던 나는 난감했다. 그리고 한없이 부끄러웠다. 친절한 병사는 수화기를 들고 수소문을 하고 있었다. 상무대에 부대가 여러 개 있다는 것은 그날 알았다. 한참을 기다리니 남편이 나왔다. 반가우면서도 왜 그리 서럽던지, 사정을 모르는 남편은 되레 화를 냈다. 얼마나 맛있는 도시락을 만들었냐며 핀잔이다.
사람 많은 곳으로 가니 초췌한 내 모습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겨우 엉덩이만 붙이고 앉아 있는 나에게 인사는 왜 그리도 하라는지, 그날의 부끄러움을 잊을 수가 없다.
앞에 앉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신 두 분이 주고받는 대화에는 병사들이 찰밥을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듣고 있던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른 사람들의 진수성찬 반찬이 눈에 선했다.
체육대회는 끝이 나고 오후에는 부대 식당에서 함께 온 가족들과 다과회를 열었다. 이면수어(생선이름)매운탕과 부대 밥도 함께 나왔다. 집에서는 밥 냄새에 코를 막던 내가 정부미 쌀로 지은 밥과 이면수어 매운탕을 맛있게 먹었다. 얼마 만에 먹어본 밥인가, 지켜보던 남편은 사람들이 쳐다본다며 나를 꼬집었지만, 배를 채운 나는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집에 온 나는 한복 입은 사모님의 대화중에 찰밥 싸온 사람의 칭찬이 대단하시던데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니 “찰밥은 당신만 싸왔어.” 그럼 다른 사람들은? 그냥 왔지, 당신도 식당에서 밥 먹었잖아. 어처구니없는 남편 말에 화가 나서 정문까지 갔다 집으로 되돌아 온 말을 하니, “어쩐지 점심시간이 지나도 안보이더라. 당신 올 줄 알고 점심시간 맞춰 우리 애들 운동복 바람으로 마중 나갔다가 헌병대 붙잡혀서 혼났어.” 했다. 그리고 이런 날이나 부대 밥이 아닌 집에서 해온 밥을 먹이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했다.
남편은 병사들에게 부대 밥이 아닌 집 밥을 먹이고 싶었던 것이다. 부대 병사들이 맛있게 먹었다는 말에 나도 기분은 좋았다.
<약력> 2008년 월간 ‘문학세계’ 수필등단, 충성대 문학상, 우리 가정 알뜰생활체험 수기상, 빛 사랑 한전 문학상, 표어공모 국방부장관상, 노인 학대 예방을 위한 글짓기상, 한국 문인협회 회원. 광주 문학협회 회원, 무진주 수필 문학회 회원, 저서 ‘고동골에 남겨둔 이야기’
퇴근한 남편은 누워만 있는 나에게 내일 체육대회가 있다며 중대 병사들의 점심밥을 준비하라고 했다. 자리보존하고 누웠지만 듣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 몸도 가누지 못하고 냄새 맡기도 힘든데 병사들 밥을 어떻게 하겠냐.”했더니 못마땅한 남편은 화부터 냈다. 다른 중대 사람들은 밥을 가져올 것인데 우리 중대만 굶을 수는 없지 않느냐 쐐기를 박았다. “당신 중대에도 결혼한 가족이 있을 거예요. 그 사람들한테 부탁 해봐요”하니 총각들이 많아 챙겨올 사람도 없거니와 부대 안에는 사 먹을 데도 없다며 준비해주지 않는다면 굶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부대 식당도 그날은 쉰다고 했다. 그 사람의 중대만 굶어야 한다는 말에 누워만 있을 수가 없었다.
사람 많은 곳으로 가니 초췌한 내 모습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겨우 엉덩이만 붙이고 앉아 있는 나에게 인사는 왜 그리도 하라는지, 그날의 부끄러움을 잊을 수가 없다.
앞에 앉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신 두 분이 주고받는 대화에는 병사들이 찰밥을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듣고 있던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른 사람들의 진수성찬 반찬이 눈에 선했다.
체육대회는 끝이 나고 오후에는 부대 식당에서 함께 온 가족들과 다과회를 열었다. 이면수어(생선이름)매운탕과 부대 밥도 함께 나왔다. 집에서는 밥 냄새에 코를 막던 내가 정부미 쌀로 지은 밥과 이면수어 매운탕을 맛있게 먹었다. 얼마 만에 먹어본 밥인가, 지켜보던 남편은 사람들이 쳐다본다며 나를 꼬집었지만, 배를 채운 나는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집에 온 나는 한복 입은 사모님의 대화중에 찰밥 싸온 사람의 칭찬이 대단하시던데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니 “찰밥은 당신만 싸왔어.” 그럼 다른 사람들은? 그냥 왔지, 당신도 식당에서 밥 먹었잖아. 어처구니없는 남편 말에 화가 나서 정문까지 갔다 집으로 되돌아 온 말을 하니, “어쩐지 점심시간이 지나도 안보이더라. 당신 올 줄 알고 점심시간 맞춰 우리 애들 운동복 바람으로 마중 나갔다가 헌병대 붙잡혀서 혼났어.” 했다. 그리고 이런 날이나 부대 밥이 아닌 집에서 해온 밥을 먹이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했다.
남편은 병사들에게 부대 밥이 아닌 집 밥을 먹이고 싶었던 것이다. 부대 병사들이 맛있게 먹었다는 말에 나도 기분은 좋았다.
<약력> 2008년 월간 ‘문학세계’ 수필등단, 충성대 문학상, 우리 가정 알뜰생활체험 수기상, 빛 사랑 한전 문학상, 표어공모 국방부장관상, 노인 학대 예방을 위한 글짓기상, 한국 문인협회 회원. 광주 문학협회 회원, 무진주 수필 문학회 회원, 저서 ‘고동골에 남겨둔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