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해바라기가 좋았다. 뜨거운 태양을 좇는 해바라기, 그 해바라기가 좋았다. 찬란하고 뜨거운 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빳빳이 고개를 쳐든 그 노란 씨앗덩어리가 그저 좋았다. 알 수가 없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관측 이래 올 여름이 가장 덥다고 한다. 이 더위에도 해바라기는 꿋꿋하게 태양을 향한다. 대단하다. 타버릴 것 같은 태양의 기세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해바라기에 존경심을 표한다. 자연이건 사람이건 생명이 있다면 저런 정도의 의지와 에너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의 해바라기 그림 때문이다. 화면 가득 번지는 생명력에 반하기도 했지만 그가 그린 해바라기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나 보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의 열기를 수굿하게 받아들이는 해바라기의 뚝심을 닮고 싶다.

어느 날 물감을 짓뭉개다가 나도 모르게 해바라기를 담았다, 캔버스에다. 그것도 예쁜 형태가 아닌, 짓이겨진 모양으로. 그걸 본 이들은 무슨 이런 해바라기가 있냐고 아우성이었다. 이왕 그릴 거면 나 보란 듯, 예쁜 해바라기를 그릴 것이지 꺾이고 시든 해바라기라니, 혀를 끌끌 차는 이도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의 해바라기였으니. 화가가 상대방의 비위를 맞춰 그려야만 되나 하는 반항심이 일었다. 그리고 줄기차게 시들고 말라비틀어진, 색감도 넣지 않은 흑백의 해바라기를 그렸다.

어느 날인가 작업실에 놀러왔던 어느 컬렉터가 그 해바라기를 주시했다. 그리고 해바라기 그림에 관심을 가졌다. 판매용이 아니라고 했다. 그냥 내가 좋아서 그려본 그림이라고 했다. 팔지 않겠다고 하니 더더욱 관심이 커졌나 보다. 끝내 자신이 소장하겠다고 빼앗다시피 해 가져갔다. 그 후 전시회 때마다 그 컬렉터는 해바라기 그림을 찾았다. 명창은 귀명창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했던가. 나 역시 컬렉터의 반응에 해바라기 그림에 더욱 열성적이었나 모르겠다. 그릴 때마다 해바라기의 일그러진 모양새는 버전을 달리했다. 더불어 해바라기를 좋아해주는 이들이 늘어났다. 박유자는 어느 결에 ‘해바라기’ 작가란 닉네임을 갖게 됐다.

내 안에 가득 찬 일렁이는 생명력이 붓 끝에서 캔버스로 전해져 형태를 찾아간다. 때론 시든 모습으로 때론 지친 모습으로. 사람이건 꽃이건 그렇게 짱짱하게 버티다 보니 저절로 피폐해질 수밖에. 우리네 인생이 그런 거 아닌 가 싶다. 난 해바라기를 포함해 자연이 좋다. 그래서 나무를 담아내고 산을 담아내며 반짝이는 햇살을 보듬어내고자 한다. 자연은 축복의 선물임에 틀림없다. 복닥이는 인간세상에서 지친 사람도 자연에서 위안을 얻고 치유받지 않던가. 그래서 나뭇잎에 반짝이는 햇살을 표현하려 애쓰고 그것을 머금은 해바라기 꽃 이파리를 그려댄다.

일그러지면 일그러진대로 모양새를 갖추면 갖춘 대로 모두 아름답지 않은가. 모든 게 맑고 눈부시다. 그늘은 잠시 내게 쉼을 주며 내게 머물다, 사라진다. 다시 돌아오는 자연의 그늘과 열정, 희망은 늘 내 안에 있어 오늘을 버티게 해준다. 그래서 사람 사이에서의 고통과 힘듦도 날려버리게 한다.

캔버스에 담긴 그림은 솔직한 나의 표현이다. 비록 그것이 이상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일지라도 순전한 나의 노력이다. 그 솔직함이 고개 꺾인 해바라기를 그리게 하고 청량한 숲을 캔버스에 깃들게 한다. 오늘도 나는 기꺼이 시든 해바라기를 주저 없이 담아낸다.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방식이다. 해바라기를 그리는 나는 정말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