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이라는 딱딱한 학문에서, 다소 말랑말랑한 문화예술 분야로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가 있다. 바로 이기진(59)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다. 유명 걸그룹 2NE1의 멤버인 가수 씨엘의 아빠로도 알려진 이 교수는 물리학자 말고도 웹툰 작가, 동화 작가, 화가, 로봇조각가, 수집가, 에세이스트 등 다양한 직함을 지니고 있다. 모두 그의 ‘딴짓’에서 비롯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소주병을 든 자화상’

롯데갤러리 광주점은 여름방학 기획전으로 이 교수의 작품전을 진행한다. ‘과학자의 만물상’을 주제로 하는 이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열린다.

전시는 ‘딴짓 고수’인 이 교수의 머릿속을 전시장으로 고스란히 옮겨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그림, 조형작업, 글, 출판, 골동수집 등 그의 취미와 관심사를 한자리에 모았다.

주로 컴퓨터로 작업한 재기발랄한 그림 70여점과 딸 씨엘의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던 로봇, 금속이나 도자기로 만들어진 크고 작은 로봇 시리즈 500여점, 전 세계 곳곳에서 컬렉션 한 이 교수에게 영감을 준 다양한 골동수집품 등 100여점이 갤러리 안에서 ‘만물상’을 구성한다.

전시는 크게 3개 키워드로 구성된다. ‘수집’과 ‘파리’(Paris), 그리고 ‘로봇’이다

먼저 이 교수가 일상 속에서 모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구둣솔, 빗자루, 기름통 등 골동품과 오래된 그림책, 샐러드 바구니, 버터 담는 통, 시장바구니 등의 잡동사니다.

‘딸과의 여행’

일상의 관찰과 수집이 영감을 제공하고, 기억을 소환해 예술로 변환되는 그의 창작 과정을 전시장에서 느낄 수 있다.

두 번째 키워드는 ‘파리’다. 이 교수는 딸 채린(씨엘)과의 오붓한 파리여행에서 느낀 바를 그림으로 옮겼다.

파리의 일상, 즉 음식, 도구, 사랑, 휴식, 낭만의 에피소드를 그림으로 그렸다. 파리 시리즈에서 도드라지는 이기진의 그림은 단순한 라인과 색으로 그려지지만 의외의 디테일은 작품을 보는 재미를 더한다. 먹고 버린 체리 꼭지 두 개, 한 쪽만 슬리퍼를 신은 발로 조개껍질을 지그시 밟은 신부님, 코 밑 덜 깎인 수염 등 작품에는 위트와 유머가 넘친다.

마지막 카테고리인 로봇은 어린 시절 두 딸의 상상력의 원천이 돼 줬으며 이제는 이 교수의 그림책이나 웹툰 캐릭터, 로봇조형물, 다양한 아트상품으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작가가 도자기로 만든 로봇 조형물과 아트상품들은 최근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아트숍에서 판매되기도 하고, 심지어 2NE1 뮤직비디오에 딸 씨엘과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도자기 로봇’

갤러리 안에서도 로봇을 주제로 한 그림과 함께 초대형 로봇부터 10㎝짜리 소형로봇까지 다양한 로봇 조형물 500여점이 함께 전시된다. (전시 문의 062-221-1807)

/정겨울 기자 jwinter@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