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해를보는마음’은 원작 셰익스피어의 ‘Macbeth’를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이미 많은 맥베스가 있었지만 오페라, 영화와 같이 비교적 대중에게 노출되었던 맥베스와도 많이 달랐다. ‘두드려라, 맥베스’는 비극적인 스토리와 긴장감 있는 전개를 성공적으로 색다르게 연출하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원작에서 맥베스의 탐욕을 부채질했던 세 마녀와 맥베스 부인의 실종이다. 세 마녀는 아예 등장하지 않았고, 맥베스 부인은 그저 권력을 탐하는 악녀가 아니라 전장에서 목숨을 담보로 싸우는 남편을 걱정하는 부인의 역할이었다. 사실 극 초반에 나왔어야 할 세 마녀가 나오지 않아 맥베스의 국왕시해에 어떻게 인과를 부여할지 궁금했다. 그런데 단순한 부채질에 의한 권력욕이 아닌 가족애로 시작해 자신들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타인을 살해하는 타당성을 부여해 관객으로 하여금 맥베스에게 측은지심을 느끼도록 한 것은 참 한국스럽다고 느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삶의 원동력이기도 하고, 야망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최근에 들어서는 남을 끌어내려야 내가 올라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도 맞닿아 맥베스의 잘못된 선택은 그저 악행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맥베스가 죽인 국왕은 방탕한 행실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맥베스 부인의 남편에 대한 걱정도 충분한 이유였다. 국왕이라는 높은 지위까지 올라갔지만 그릇된 과정에 대한 죄책감으로 점점 미쳐가는 맥베스 부부의 모습은 오히려 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원작의 등장인물 중 주요 인물이었던 맥더프의 역할을 뱅코우의 아들인 플리언스에게 넘기면서 짧은 시간 안에 표현하기 위한 스토리에 완성도를 더했다. 뱅코우와 맥더프를 맥베스의 적으로 설정하지 않고 뱅코우와 플리언스로 맥베스와 대척점에 둔 것은 원작에서 뱅코우의 자손이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암시해 원작과 다르지만 원작이 관통하는 맥베스로 훌륭하게 각색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정당한 것은 부정한 것, 부정한 것은 정당한 것’이라는 대사가 극 중심에서 흐르고 맥베스에서 플리언스로 넘어가는 혼란한 마음을 표현하는 주요 문장으로 삼은 것은 정말 효과적이었다고 본다. 국왕시해를 정당화하기 위한 맥베스의 주문과도 같은 이 대사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두드려라, 맥베스’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이 연극에서는 북과 같은 전통악기를 이용해 극에 효과를 더하고 있다. 커튼콜에서 악기 연주자에게 가장 큰 박수갈채가 쏟아질 만큼 전통악기는 극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인 연주자였지만 주요장면에서는 배우들이 직접 북과 징을 치고, 연희장면에서는 사자춤과 검무를 추는 등 관객들의 눈과 귀를 만족시키는 데는 충분했다. 칼군무로 북춤을 출 때는 무대뿐만 아니라 관객석까지 풍성하게 채우는 음향으로 심장까지 두드리는 연극이 됐다.

연극은 극중 인물들의 이름만 원작을 따랐지 극만 봐서는 우리나라의 창작연극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왕권찬탈과 같은 쿠데타는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 할 수 있으며, 무대의상 역시 중세유럽의 복식이 아닌 전통 색상과 복식을 참고한 새로운 의복으로, 컬러풀한 의상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극의 무거운 분위기와 인물의 변화를 한국적으로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되었다.

무대 역시 2층으로 배치해 극 중 배우들의 연기를 위한 동선을 효과적으로 연출했으며, 맥베스 부인과 맥베스의 죽음까지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서사도 축약하면서 타악기를 이용한 전쟁묘사와 전통악기를 이용해 극에 긴장을 불어넣는 방식은 여러모로 새롭고 독특했으며 노래는 없었지만 뮤지컬을 본 듯 신나고 흥겨웠다. 주연부터 조연, 연주자까지 모두 합이 잘 들어맞아 아쉬운 부분 없이 꽉 찬 연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