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광주 수피아여고 ‘개교 110주년’이고 내년은 3·1만세운동 100주년이다. 수피아는 근·현대사의 중요한 공간이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거라고 믿는다. 1904년 12월25일 양림동에서 광주의 새로운 역사가 움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해 광주에선 근·현대사의 획을 긋는 사건이 많이 일어난다. 바로 남장로교 선교부가 생겼다. 근·현대 병원이 1905년 시작된다. 미신에 의존해 치료하던 이들이 제중병원을 통해 근대적이고 과학적인 치료와 한센병자들을 안았다. 의사와 선교사들은 버려진 아이들을 양녀, 양자로 삼았다. 1908년 2월에는 남학교인 숭일학교, 4월엔 여학교인 수피아여학교를 세워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학교를 통해 생활이 가능하도록 양잠기술, 바느질, 그리고 생활에 도움을 주는 기술들을 가르쳤다. 이들의 삶을 지켜본 광주 사람들도 그대로 본받았다. 선교사들이 살았던 삶, 즉 예수님의 삶을 배워 그대로 행했다.

특히 수피아는 초대 교장으로 엄언라(Miss Ella Graham)선교사, 2대 교장으로 구애라(Miss Anna McQueen)선교사가 취임한다. 또 윌슨(Wilson)선교사 부인과 오웬 선교사 부인(Georgiana W.)도 임시교장을 한다. 교명을 수피아여학교(Jennie Speer Memorial School for Girls)로 했다. 1911년 스턴스 여사가 세상을 떠난 동생 제니 수피아(Jennie Speer)를 기념해 회색 벽돌 3층 건물(Speer Hall)를 지어줬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학생은 68명이었다.

3·1만세운동을 위해 태극기를 만들었던 장소가 바로 수피아홀 지하이다. 1919년 3월10일 기미년 독립 운동에 전교생이 선봉으로 참가하고, 수피아 선생님 2명과 학생 21명 등 23명이 투옥돼 옥고를 치렀다. 광주 3·1만세운동은 수피아 여학교 선생님들과 그의 가족에 의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19년 2월 중순 양림동 지역의 개화된 근대정신과 독립운동가 가족들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수피아여고 선생이었던 김마리아 여사와 큰언니 김함라 수피아여학교 선생, 그 형부인 남궁혁 목사 등 밀사를 통해 어느 지역보다 국제 정서와 국·내외 독립운동 의지를 빨리 읽고 정확하게 만세운동 준비를 완료했지만, 서울과 함께 전국적인 거사를 위해 기다리다 3월10일 작은 장날에 만세운동을 벌였다. 수피아 여학생 윤형숙(윤혈녀)이 일경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한쪽 팔이 잘렸다. 그런데 다른 쪽 팔로 태극기를 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1922년 일본은 조선교육령을 강화해 사립학교에 대한 규제를 심하게 했다. 1927년 한국의 크리스쳔 여학생들을 교육하는 장소로 결정하고 음악실, 가사실, 과학실, 교무실, 체육관 등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바로 윈스브로홀에서 항일민족운동의 전통을 이어가는데 조선십삼도를 말하는 ‘열세집’ 가극을 만들어 공연을 했다. 1929년 학생독립운동당시 수피아도 백의민족 청년이라는 ‘백청단’ 비밀결사를 조직했고 대표는 조아라였다. 학생독립운동은 두 번째로 큰 항일 민족운동이다. 또 2차 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면서 일제가 멸망할 때까지 줄기차게 항일 투쟁을 했고 이는 전국적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됐다. 1937년 모든 사립학교에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수피아여학교 유화례(Florence E. Root, 1893-1995)교장과 김필례 교감은 폐교를 결정했다. 그 이후 수피아 졸업생인 조아라는 광주민주화운동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에 끌려가 6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이때부터 ‘광주민주화운동의 대모’, ‘광주의 어머니’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림동에 조아라 선생님의 기념관이 있다.

필자는 수피아 여고를 다니면서 5·18을 경험하고, 20대에 6월 항쟁의 한복판에 있었다. 10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쭉 훑으며 생각에 젖었다. 졸업 후 20년, 홈커밍데이에 가면서 더욱 수피아 동문임이 자랑스럽다. 자랑스런 수피아 동문들이 110년 역사의 힘을 기반으로 학교사랑,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의 마음을 평화운동으로 전개해 나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