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던 추위가 가고, 온 산에 화사하게 피었던 벚꽂이며 진달래 개나리와 함께 느닷없는 4월의 폭설까지 지나 이제야 봄이 온 것 같습니다.

아무리 기세등등하더라도 역시 자연의 흐름에는 누구든 무엇이든 거스를 수 없는 것이 확실합니다.

추워도 너무 춥던 거리에 이제 삼삼오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따듯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많이 봅니다.

나이와 세대에 따라 대화의 주제가 당연히 다르겠지만, 50대 중반 즈음의 제 주변을 보면 빠지지 않는 주제가 연로하신 ‘부모님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얼마 전 부모님께서 병원에 계시다 퇴원하시고, 약간은 거동이 불편하셔서 제가 모시려 했지만 고향을 떠나 그나마의 친구도 없는 타지에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아는지라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인지 참 막막합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요양병원으로 모시려는데 그마저도 죄짓는 기분이라며 한숨짓는 친구 녀석의 하소연도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부모님의 치매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 녀석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우리 부모님들께서는 치매는 오지 않아서 복 받은 거라고 서로 위안 삼으며 웃습니다.

그런 이유로 당연히 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노인복지와 요양시설에 대해 관심이 많아집니다.

10여년전 농업 연수차 간 독일에서 ‘sejorahaus’라는 60세 이상의 독거노인들을 위한 아파트식 공동주택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욕실이나 거실 등 생활공간에 넘어져도 누르거나 당기기 쉬운 곳에 알람을 설치하고, 청소 표식신호를 만들어 앞집과 교차 청소 후 붙여놓은 청소표시가 자연스럽게 상황을 체크하는 시스템이 되고, 갑작스런 상황에 근처 개인병원과 알람이 연결되어 앰브런스를 바로 댈 수 있는 등 노인들이 적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치밀한 시스템의 공간구성과 운영 매뉴얼 그리고 저렴한 비용의 즐거운 노인하우스가 참 부러웠습니다. 실제 독일의 노인요양표준 설계는 원전설계보다 더 엄격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치매환자들이 가장 행복한 곳을 꼽으라면 단연 네델란드의 호그벡 치매 마을을 꼽습니다.

중증 치매 환자들이 우리들의 일상처럼 쇼핑하고 미용실도 가고, 텃밭에서 채소도 기르고,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극장이나 카페 문화센터도 이용하는, 정신이상자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람으로 대하는 곳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언론과 방송에 소개가 된 곳이기도 합니다.

캐나다도 호그벡 마을을 본따 ‘The village’라는 치매마을을 짓고 있습니다.

독일 뮌헨 근처의 ‘바트 뵈리스호펜’이라는 작은도시는 130여년전 세바스티안 크나이프라는 신부가 ‘자연이 최고의 약국’이라며 물 운동 허브 등을 활용하여 중증환자들을 자연치료하기 시작하면서, 노인요양과 실버관광 그리고 실버산업의 메카로까지 발전되어 많은 곳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방문한다고 합니다.

점점 비어가는 우리농촌에 유럽에서 배우러 올 수 있을 정도의 농업과 함께하는 요양시설을 상상해 봅니다.

복지국가로 가는 것이 예산과 제도 등 여러 문제가 수반되어야겠지만, 그냥 자식의 입장에서, 우리나라에도 부모와 자식이 서로 불안해하거나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아픈 노인들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요양시설을 넘어 작은 활동이나 소일(消日)을 하며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그런 치매마을이나 요양마을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현재의 우리와 미래의 우리를 위해서 꼭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