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털 화법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연구실장·문화학 박사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연구실장·문화학 박사
- 재생 준비중
2018. 04. 22(일) 18:36 가+가-
가족이 메말라가고 있음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이번학기 모 대학 대학원에 출강하면서 하루에 부모님 특히 아버지와 몇 분쯤 대화하는지를 여섯 명인 수강생 전원에게 물어봤다. 전혀 대화가 없다는 학생이 3명, 나머지 3명은 겨우 1분 남짓이라고 답했다. 딸 셋을 두고 있는 필자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에서 씁쓸한 위안이 되기는 했지만 답답함이 앞선다. 아이들과 대화다운 대화는 물론 아내를 포함해 온 가족이 언제 함께 식사를 해봤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 할 정도니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러다 아이들이 독립이라도 하게 되면 그마저도 끊길 것 같아 불안감이 몰려오곤 한다. 하루에 1분 정도 대화를 한다고 칠 때 1년에 365분, 겨우 6시간이다. 이정도의 시간만이 우리들에게 허락된 것이라니.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초단위인 가정의 위기가 눈앞에 있는 듯하다. 가정의 위기는 핵가족화, 맞벌이, 저녁이 없는 삶을 강요하는 변이된 직장문화, 학교교육의 입시 체제화, 가혹한 취업난, 비싼 대학등록금과 생활비로 아르바이트에 내몰린 대학생들의 처지 등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이를 개선할 대안을 찾기는 쉽지 않는 게 현실이다.
대화가 없다는 것은 곧 단절을 의미한다. 따라서 차선책으로나마 짬나는 시간이라도 주어진다면 가족구성원들 간에 결속을 다지는 어떤 장치를 생각해봐야할 시점이 아닌가한다. 세칭 ‘이벤트’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조차도 절묘한 타이밍에 참신한 아이디어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효과는 물론 다음 기회마저 기약할 수 없어 어려움과 수고가 따름은 물론이다. 그러나 방향과 내용이 무엇이든지 간에 박물관 언저리에서 볼 때 우선은, 이벤트에 유물의 개념이 접목된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유형의 유물은 기억이라고 하는 무형의 자산으로도 연결되어 효과의 극대화와 함께 오래토록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선함과 함께 유물의 개념까지 잘 담아내고 있는 필자의 한 지인 가족이 있어 여기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친구는 아이들이나 가족들에게 소소하지만 기념할 만한 일이 생기면 늘 특별함을 선사한다고 한다.
크리스털 패에 소소함을 담아 주는 것이 그것인데, 예를 들어 졸업하고 상급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면 그 의미를 담아 주기도 한다고 했다. ‘졸업과 입학을 축하하며 이를 수여함’이라는 의례적인 문구가 아니라 학교 다닐 때 있었던 아이의 작은 추억이나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가 보여줬던 잔잔한 감동의 기억을 소급해 담아서 준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에게는 100권 또 200권 완독기념패도 주고 혼자 씩씩하게 외국여행을 다녀온 딸에겐 대견한 딸 상도 준다.
연말 가족모임에서는 그해의 모범 아이상을 주기도 하는데 거창하지는 않지만 가족들만이 아는 작은 모범사례를 담아 칭찬해 준다고 한다. 막내가 주민등록증을 처음 발급 받았을 때는 지인의 아버지이며 아이의 할아버지가 친필로 ‘사랑하는 우리 손녀 ○○아! 네가 성장하는 과정이어서 대견하고 기쁘구나. 치아 교정(○월○○일, ○○치과)과 더불어 축하한다.’는 글귀를 패 위에 싣고 그 아래에는 동사무소에서 보내온 아이의 주민등록발급 통지서를 스캔 받아 그대로 함께 새겨 주었다고 했다. 치아를 교정한 사실과 병원이름까지 담아 아이의 작은 역사까지도 기록하고자 함에서 가족들의 깊은 사려까지 새긴듯해 감동으로 다가왔다.
디지털카메라의 대중화와 카메라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 폰으로 인해 인화된 사진도, 사진관도 사라져가고 있다. 따라서 일상의 타임캡슐인 앨범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오늘날 정착을 허락하지 않는 제반환경은 도시 유목민을 양산하고 있으며, 인스턴트 소비패턴은 상품의 소비주기를 단축시키고 있다. 가족을 기억하는 유물이 쉽게 사라질 수밖에 없는 여건에 놓이게 된 것이다.
‘부모랍시고 변변치 못해 아이들이 시집 장가갈 때 줄게 이것밖에 없다네. 이걸로 먼 훗날까지 가족을 기억해주면 더 고맙고......,’ 크리스털 패는 무엇보다 값진 유산인 셈이다.
10시가 넘어 현관문을 여니 오늘도 아이들 방은 깜깜하다. 아르바이트와 시험 준비로 언제 들어올지도 모르는 아이들. 크리스털 패까지는 아니어도 ‘수고했다. 사랑한다.’는 쪽지라도 아이들 방에 붙여봐야겠다. 애비의 이 작은 마음이 피로에 지친 아이에게 봄 햇살 같이 아늑한 미소로 전달되길 간절히 바라며.
이러다 아이들이 독립이라도 하게 되면 그마저도 끊길 것 같아 불안감이 몰려오곤 한다. 하루에 1분 정도 대화를 한다고 칠 때 1년에 365분, 겨우 6시간이다. 이정도의 시간만이 우리들에게 허락된 것이라니.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초단위인 가정의 위기가 눈앞에 있는 듯하다. 가정의 위기는 핵가족화, 맞벌이, 저녁이 없는 삶을 강요하는 변이된 직장문화, 학교교육의 입시 체제화, 가혹한 취업난, 비싼 대학등록금과 생활비로 아르바이트에 내몰린 대학생들의 처지 등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이를 개선할 대안을 찾기는 쉽지 않는 게 현실이다.
신선함과 함께 유물의 개념까지 잘 담아내고 있는 필자의 한 지인 가족이 있어 여기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친구는 아이들이나 가족들에게 소소하지만 기념할 만한 일이 생기면 늘 특별함을 선사한다고 한다.
크리스털 패에 소소함을 담아 주는 것이 그것인데, 예를 들어 졸업하고 상급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면 그 의미를 담아 주기도 한다고 했다. ‘졸업과 입학을 축하하며 이를 수여함’이라는 의례적인 문구가 아니라 학교 다닐 때 있었던 아이의 작은 추억이나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가 보여줬던 잔잔한 감동의 기억을 소급해 담아서 준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에게는 100권 또 200권 완독기념패도 주고 혼자 씩씩하게 외국여행을 다녀온 딸에겐 대견한 딸 상도 준다.
연말 가족모임에서는 그해의 모범 아이상을 주기도 하는데 거창하지는 않지만 가족들만이 아는 작은 모범사례를 담아 칭찬해 준다고 한다. 막내가 주민등록증을 처음 발급 받았을 때는 지인의 아버지이며 아이의 할아버지가 친필로 ‘사랑하는 우리 손녀 ○○아! 네가 성장하는 과정이어서 대견하고 기쁘구나. 치아 교정(○월○○일, ○○치과)과 더불어 축하한다.’는 글귀를 패 위에 싣고 그 아래에는 동사무소에서 보내온 아이의 주민등록발급 통지서를 스캔 받아 그대로 함께 새겨 주었다고 했다. 치아를 교정한 사실과 병원이름까지 담아 아이의 작은 역사까지도 기록하고자 함에서 가족들의 깊은 사려까지 새긴듯해 감동으로 다가왔다.
디지털카메라의 대중화와 카메라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 폰으로 인해 인화된 사진도, 사진관도 사라져가고 있다. 따라서 일상의 타임캡슐인 앨범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오늘날 정착을 허락하지 않는 제반환경은 도시 유목민을 양산하고 있으며, 인스턴트 소비패턴은 상품의 소비주기를 단축시키고 있다. 가족을 기억하는 유물이 쉽게 사라질 수밖에 없는 여건에 놓이게 된 것이다.
‘부모랍시고 변변치 못해 아이들이 시집 장가갈 때 줄게 이것밖에 없다네. 이걸로 먼 훗날까지 가족을 기억해주면 더 고맙고......,’ 크리스털 패는 무엇보다 값진 유산인 셈이다.
10시가 넘어 현관문을 여니 오늘도 아이들 방은 깜깜하다. 아르바이트와 시험 준비로 언제 들어올지도 모르는 아이들. 크리스털 패까지는 아니어도 ‘수고했다. 사랑한다.’는 쪽지라도 아이들 방에 붙여봐야겠다. 애비의 이 작은 마음이 피로에 지친 아이에게 봄 햇살 같이 아늑한 미소로 전달되길 간절히 바라며.
